출처 :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789021.html

“가짜 뉴스, 문제는 SNS가 아니라 우파야”
등록 :2017-04-03 08:24 수정 :2017-04-03 08:35

[미래] 하버드대 연구팀, ‘가짜 뉴스’ 원인 분석
‘좋아하는 뉴스만 보여주는’ SNS 때문, 가짜뉴스 활개친다는 기존 분석 반박
진보층은 다양한 매체 오가며 읽지만 보수층 <브라이트바트> 주변서 고립
공격적 행태가 ‘비대칭적 양극화'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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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잘 모르던 사람과 서로 의견을 나누고 소통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목소리를 거듭해서 듣는 ‘거울의 방’ 구실을 하기도 한다.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인터넷 기술의 책임은 어느 정도일까?

인터넷 기술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스러운 느낌’을 추구하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불러온 주동자 가운데 하나로 지목돼왔다. 소셜네트워크가 정치적 견해나 사고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해, 보고 싶은 정보만 돌려 보는 행동을 강화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집단극화(동종 집단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수록 의견이 더 극단화되는 현상)의 최근 폐해가 사실 전달이 목표인 뉴스의 형식까지 훔쳐와 만든 ‘가짜 뉴스’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짜 뉴스의 ‘기술 책임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 법학과 교수 요하이 벵클러와 동료들이 지난달 3일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 발표한 ‘<브라이트바트>가 이끄는 우익 미디어 생태계가 미디어의 담론을 변형시키다’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다. <브라이트바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스티븐 배넌이 세운 극우 매체로,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친트럼프 여론 왜곡의 선봉에 섰다고 비판받았다. 보고서는 우파 미디어 생태계가 좌파보다 심각하게 진영에 갇혀 있음을 보이면서,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우파야’라고 주장한다.

진영에 갇힌 우파 미디어 생태계

하버드대 ‘인터넷과 사회를 위한 버크먼 클라인 센터’의 공동책임자이기도 한 벵클러 교수의 연구는 2015년 4월1일부터 2016년 11월8일 미국 대통령 선거날까지 나온 총 125만개의 온라인 기사를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진은 이들 기사가 대표적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서 어떻게 공유되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왼쪽 그래픽은 이 데이터를 평면에 나타낸 그림이다. 여기서 동그라미는 하나의 매체를 뜻하는데, 클수록 해당 매체의 기사 공유량이 많다는 뜻이다. <뉴욕 타임스>나 <시엔엔>(CNN)같이 공유량이 많은 큰 매체만 한글로 표시했지만, 모두 2만5000여개의 매체가 이 그래픽에 점처럼 들어가 있다. 여기엔 논란이 되는 가짜 뉴스 사이트들도 포함돼 있다.

동그라미 색깔은 정치 성향을 뜻한다. 붉을수록 도널드 트럼프 지지(보수)에 가깝고, 푸를수록 힐러리 클린턴 지지(진보)에 가깝다. 녹색은 중도 성향이다. 정치 성향은 트위터를 이용해 정의했다. 예를 들어 클린턴의 트위터 글을 리트위트(인용해서 트위터에 다시 올리는 것)하는 사람들이 해당 매체를 많이 공유했으면 푸른색이 된다. 반대로 트럼프 글을 리트위트 한 사람이 해당 매체를 많이 퍼갔으면 붉은색이 된다. 녹색은 퍼간 사람이 양쪽 진영에 고루 분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동그라미 사이 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두 매체를 같은 날 공유했는가를 뜻한다. 예를 들어 <허핑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의 거리는 <허핑턴 포스트>와 <브라이트바트>의 거리보다 훨씬 가까운데, 이는 <허핑턴 포스트> 기사를 공유하고 같은 날 <뉴욕 타임스> 기사도 공유한 사람이 <허핑턴 포스트>와 <브라이트바트>를 공유한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다.

그래픽을 살펴보면 좌파 성향 매체와 우파 성향 매체의 구도가 상당히 다르다. 좌파 성향이 강한 것으로 분류되는 <허핑턴 포스트>를 비롯한 여러 진한 푸른색의 매체는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같은 전통 매체, <더 힐> 등 녹색의 중도 성향 매체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뒤섞여 있다. 반면 우파 성향 매체의 경우 <브라이트바트>를 중심에 두고 뻘겋게 뭉쳐 있는 모습을 보인다. 연구진은 이를 핵심 근거로 “인터넷이 여론을 조각 내고, 의견의 양극화를 만들어내는 주원인”이라는 분석이 맞지 않는다고 제시한다. 만약 인터넷이 사람들을 비슷한 사람끼리 뭉치게 만들고, 서로 가짜 뉴스를 공유하며 자족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면, 같은 인터넷을 쓰는 좌파와 우파의 미디어 생태계가 이렇게 서로 다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뉴스 사이트의 정치 성향 스펙트럼상 분포(오른쪽 그래픽)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그래프에서 세로축은 각 매체의 페이스북 공유량, 가로축은 정치 성향을 뜻하는데, 왼쪽 그래픽과 마찬가지로 트럼프와 클린턴의 글을 리트위트 한 사람과 독자가 얼마나 겹치는지를 기준으로 분류했다. 중앙의 0.0을 기준으로 왼쪽은 친클린턴, 오른쪽은 친트럼프의 영역이다. 진보매체 영역을 보면 <폴리티쿠스 유에스에이(USA)> 같은 극좌 성향의 매체부터 <에이비시>(ABC) 같은 중도 성향 매체 사이에 <뉴욕 타임스>, <시엔엔> 같은 몸집 큰 매체들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친트럼프 영역을 보면 <더 힐> 이후 중도-보수라 할 수 있는 매체 영역은 거의 비어 있고 오른쪽 끝에 압도적 공유량의 <브라이트바트>를 비롯한 극우 매체만 몰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런 비대칭적인 양극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와 문화”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정부의 백악관으로 옮기기 직전까지 극우 매체 <브레이트바트>의 대표를 맡았던 스티브 배넌. 하버드 연구진은 보수 미디어 생태계가 <브레이트바트>를 중심으로 가짜 뉴스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의 백악관으로 옮기기 직전까지 극우 매체 <브레이트바트>의 대표를 맡았던 스티브 배넌. 하버드 연구진은 보수 미디어 생태계가 <브레이트바트>를 중심으로 가짜 뉴스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AFP/연합뉴스

“우파 매체, 공격성 강해”

연구진은 이런 우파(친트럼프) 매체의 특징으로 역사가 짧다는 점과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성이 강하다는 점을 들었다. 우파 매체 가운데에선 1980년 이전부터 있었던 매체는 <뉴욕 포스트>가 유일하다. 2007년 창간된 <브라이트바트>를 비롯해 대부분 21세기 들어 생겨났다. 반면 진보 쪽에는 100년이 넘은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해 오래된 매체들이 많다. 이런 신생 매체들은 선거 기간 “상대 후보뿐 아니라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매체까지 모두 공격 대상으로 삼아 여론을 왜곡시켰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연구진은 그 근거로 분석 대상 언론 기사들의 문장 단위 의미 분석을 진행했는데, 트럼프와 연관해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이민’이었고, 클린턴은 ‘이메일’이었다. 연구진은 “트럼프에 대한 기사는 그의 정책 어젠다였던 이민이 많은 반면 클린턴은 스캔들 이슈였던 이메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상호 링크와 페이스북·트위터 공유로 극단적인 의견과 가짜 뉴스를 공유·재생산하는 <브라이트바트>의 ‘미디어 성채’가 전체 여론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들 극우 미디어 네트워크에 대해 “이들은 맥락에서 벗어난 사실과 반복적인 거짓, 논리의 비약을 통해 근본적으로 세상을 보는 관점을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존재”라고 비판했다. 끝으로 “전통 미디어가 인터넷 바이럴이나 낚시 기사가 아니라 프로파간다(정치 선전)와 거짓 정보가 난무하는 인터넷 환경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대책을 제안했다.

최근의 데이터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이 보고서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지만, 주장을 그대로 따르기에는 추가적인 규명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6일 “기존 연구를 보면 진보가 보수보다 인터넷을 통한 의견 표명이나 공유가 활발한 편이다. 이번 연구에도 이런 요소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진보가 보수보다 집단극화 경향이 적어서가 아니라 단지 여러 매체를 활발하게 공유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디어 연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2014년 보고서를 보면, 보수 이용자가 페이스북에서 자신과 비슷한 의견만 듣는 경향이 진보에 비해 높다고 밝혀 이번 보고서와 비슷했는데, 반면 진보 이용자는 보수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의 친구를 ‘차단’하는 경향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와 진보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인터넷 동종 집단을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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