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12633

페트병에 쌀 담아 북으로 보냈다
강화도에서 보낸 쌀, 입쌀밥이 되고 한 솥 죽이 되거라
17.04.03 20:05 l 최종 업데이트 17.04.03 20:05 l 글: 이승숙(onlee9) 편집: 김대홍(bugulbugul)

작년 11월엔가 한 일간신문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새터민들이 쌀을 페트병에 담아 바다에 띄운다는 내용이었다.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져나갔다가 밀려들어오는 물때에 맞춰 강화도의 한 바닷가에서 이루어지는 이 행사는 벌써 스무 번도 넘게 진행되었는데, 참여자들 대부분이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물때 맞춰 북한으로 쌀을 보낸다는데...

이 기사를 본 아는 사람이 신문사로 연락해서 행사를 주관하는 담당자와 선이 닿았다. 함께 하고 싶다는 의향을 전했더니 다음 번 물때에 맞춰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3월 28일이 마침 물때가 좋을 때라 쌀을 보낼 계획이라는 연락을 해왔다. 

그 말을 들은 지인은 사발통문을 돌렸고, 하루 사이에 약 90킬로그램에 달하는 쌀을 얻었다. 농사를 짓는 어떤 분은 선뜻 반 가마니(40킬로그램)나 주셨다. 배가 고픈 사람은 먹어야 한다며 농사지은 쌀을 내어주셨는데, 건네주는 쌀자루에 그 분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는 듯했다.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모은 쌀.
▲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모은 쌀. ⓒ 이승숙

약속한 장소에 가보니 인근 각지에서 오신 분들이 여럿 계셨다. 멀리 경상도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다. 새벽 참에 집을 나와 강화도까지 달려왔다니, 그 분들의 정성이 참으로 대단했다. 

탈북난민들의 인권을 돕는 단체에서 주관하는 이 행사는 햇수로 벌써 2년째 진행되고 있다. 원래는 약 7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그때는 동해안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보냈다고 한다. 그렇게 하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 바닷가에서 바로 보낼 수 있는 강화도로 장소를 옮겼다고 그랬다. 동해안은 오가는 거리도 멀 뿐만 아니라 배를 빌리는 삯도 많이 들었는데 강화도는 그런 비용이 들지 않아 아낀 돈만큼 쌀을 더 보낼 수 있게 되었다며 흐뭇해 했다. 

강화도는 북한의 황해도 옹진군, 연백반도 등과 인접해 있다. 그곳 출신 탈북자의 말에 의하면 남한에서 떠밀려온 해양 쓰레기들을 황해도 바닷가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더구나 바닷가에서 고무 튜브를 주운 어떤 사람이 그것을 몸에 두르고 바다를 헤엄쳐 남한으로 건너왔다고도 한다. 그러니 강화도에서 페트병에 쌀을 넣어 바다에 띄우면 틀림없이 황해도 해안에 도착할 것이라며 관계자들은 힘주어 말했다. 
   
쌀 1킬로그램에 한 달치 월급이라니... 

물이 빠진 바다는 먼 곳까지 갯벌이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한 강화도의 갯벌은 뻘 흙이 그대로 있어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갯벌은 천연의 자연 정화장치일 뿐만 아니라 바다에 깃대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고마운 생산처이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낙지며 조개 같은 먹거리들이 수두룩하다. 썰물이 들어 바다가 길을 열어주면 사람들은 갯벌로 나간다. 그리고 밀물이 들 때까지 조개 따위를 채취한다.

 북녘 땅 배고픈 동포들을 생각하며 한 톨의 쌀알도 소중히 다룹니다.
▲  북녘 땅 배고픈 동포들을 생각하며 한 톨의 쌀알도 소중히 다룹니다. ⓒ 이승숙

그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이리라. 드넓은 갯벌은 황해도 바닷가에도 펼쳐져 있을 테고, 그곳 사람들도 조개를 따러 갯벌로 나갈 것이다. 그렇게 채취한 해산물들을 요리해 먹기도 하겠지만 밀가루며 쌀로 바꾸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루 종일 허리 굽혀 뻘밭에서 일해 봐야 고작 몇 줌의 밀가루와 바꾸면 그만일 그들에게 쌀이 들어있는 페트병을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심 봤다'와 같은 것이지 않을까.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쌀이 귀해서 노동자의 한 달 월급에 맞먹는 돈을 줘야 겨우 쌀 1킬로그램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쌀 1킬로그램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다. 보통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20킬로그램 한 포대 쌀값이 약 4만 원 가까이 하니, 1킬로그램이면 우리 돈으로 2천 원 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한 달 치 월급을 줘야 구할 수 있다니, 과연 이 말이 진짜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먹을 게 넘쳐나는 지금 우리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말이지만 살길을 찾아 남한으로 온 새터민들이 직접 한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입쌀밥이 되고 죽이 되는 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남한으로 온 탈북이주민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일이라서 그런지 우리와 달랐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안다고, 그들은 내 일인 양 걱정하였다.

 빈 페트병에 약 1킬로그램의 쌀을 넣어 보냅니다.
▲  빈 페트병에 약 1킬로그램의 쌀을 넣어 보냅니다. ⓒ 이승숙

"이거이 무사히 잘 가서 그쪽 사람들이 받았으면 좋겠네. 그래서 입쌀밥도 해먹고, 쌀 한 줌 넣고 죽도 끓여 먹고 그랬으면 좋겠네."

함경북도 무산에서 온 아주머니는 연신 그렇게 말하며 페트병에 쌀을 넣었다. 한 톨의 쌀도 아까운지 바닥에 떨어진 쌀알까지 알뜰하게 주웠다. 

저만큼 빠졌던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갯벌 안까지 깊숙이 뻗어있는 선착장에도 성큼성큼 물이 차올라왔다. 배를 묶어두는 곳까지 물이 찼을 때 페트병을 띄워 보내면 북한까지 가장 잘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또 얼마간을 기다리다가 마침맞게 물이 들어왔을 때 띄워 보내기 시작했다. 이번에 보낼 쌀은 모두 합해 480킬로그램 정도 된다. 한 번 할 때마다 이 정도씩 보냈다고 하니 쌀을 구입하는 비용도 엄청 날 것 같다.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도와주는 후원자들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바닷물은 달의 힘을 받아 하루에 두 번 드나들기를 반복한다. 음력 보름과 그믐 때면 물이 최고로 빠지고 또 밀려들어온다. 바닷가 사람들이 말하는 '사리'가 그때인데, 사리는 말 그대로 곱배기를 뜻한다. 즉 물이 보통 때의 곱배기로 많이 들어온다는 말이니, 쌀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때는 '사리'때라고 볼 수 있다.  

 "쌀아, 잘 가거라. 배고픈 우리 동포에게."
▲  "쌀아, 잘 가거라. 배고픈 우리 동포에게." ⓒ 이승숙

"이것 해보면 참 재미있어요. 쌀을 담은 페트병들이 마치 오리 떼가 줄 지어 가듯이 물을 따라 북으로 가는데, 참 흐뭇하고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던 어떤 분이 그러셨다. 내가 보내는 이 쌀 한 줌이 북한 땅의 배고픈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빌며 쌀을 넣은 페트병을 띄워 보냈을 그 분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다.

쌀아, 부디 잘 가거라, 우리 동포들에게

저 멀리 부옇게 북한 땅이 건너다 보였다. 우리가 보낸 이 쌀들은 오늘 저녁 무렵이면 그곳 바닷가에 닿을 것이다. 

"쌀아, 북녘 땅 동포들에게 부디 무사히 잘 가거라. 잘 가거라."
"이 다음에는 물길이 아닌 땅 길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빈다."

우리는 저마다 그런 소망을 담아서 400개가 넘는 페트병을 바닷길로 보냈다. 우리의 소망을 아는지 쌀을 담은 병들은 북으로 올라가는 물길을 따라 줄 지어 가기 시작했다. 하늘 길로도 땅 길로도 갈 수 없는 북녘 땅, 그러나 이렇게 물길이라도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그 물길로 따뜻한 마음이 간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이 되기 위한 우리의 마음이 간다.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모아진 우리의 마음이 북으로 북으로 올라간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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