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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인물들 <전성기>

고구려의 인물들 <초기> - 역사탐구  http://tadream.tistory.com/175
고구려의 인물들 <중기> - 역사탐구  http://tadream.tistory.com/566
고구려의 인물들 <전성기> - 역사탐구  http://tadream.tistory.com/176
고구려의 인물들 <후기> - 역사탐구  http://tadream.tistory.com/177



17. 소해주류태왕(소수림왕) : 백제와의 전쟁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 전성기를 준비한 왕

 

아도(승려) :  전진에서 보낸 승려.

소수림왕은 아불란사를 지어 아도를 머무르게 했다.

그는 순도와 함께 불교를 전파하는데에 큰 공헌을 끼쳤다.

 

순도(승려) :  전진에서 보낸 승려.

소수림왕은 성문사를 지어 순도를 머무르게 했다.

그는 아도와 함께 불교를 전파하는데에 큰 공헌을 한다.

 
 

18. 국양태왕(고국양왕) : 전연과 공방전을 치뤘으며, 신라와 우호관계를 수립하여, 광개토태왕이 후에 백제를 치는데에 큰 도움을 준다. 


- 관련된 인물이 없다.

 

 

19. 광개토태왕(영락대제) : 연군을 기습한 사실로 보아서, 난하 이북의 모든 땅들을 점거한것으로 보인다. 삼국의 최강자로 군림하였으며, 비려, 동부여, 북연을 복속시켰고, 남연을 아우렀다.


모두루(장군) :  북부여의 수사의 관직을 받았다.

대사자의 관등을 받았다.

광개토태왕이 죽자, 크게 슬퍼하였다.

 

돌노(장군) :  요동땅을 빼앗긴 것에 대하여 분노한 모용희가 요동을 침공하였을때에 전략을 세운 사람이다.

겨울바람을 등지고 싸우도록 지시하여 모용희의 군대를 크게 패퇴시켰으며, 광개토태왕의 장군이었다.

 

고운(제후 왕) :  모용희가 피살되면서, 옹립된 북연의 왕이다.

난하 이북의 땅을 점거한 고구려는 고운이 왕이 된것에 대하여 기뻐하며 친하게 지내자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후 북연은 고구려에 복속되었으나, 북위의 공격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진(제후) :  광개토 태왕때에 유주자사에 임명되었다.

여러 기록이 분분하지만 그의 출신은 중국의 산서성 부근이라고 나와있으며,

당시의 고구려는 유성과 숙군성등 연나라의 동부요충지를 다수 빼앗아 난하 이북의 땅을 거느렸으며, 그것은 유주의 1/2의 면적과 동일하므로, 진은 망명후 고구려 중앙에 진출하였다가, 익숙한 지방인 유주땅에 파견되어 그곳을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 

 

고승평(왕자)  광개토태왕의 차남

 

염모(장군) :  고구려의 장군이며, 모두루의 할아버지이다.

모성태왕지세에 반란을 진압했다는 기록이 보이는것과 숙신등의 부족을 진압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것에 근거하여, 외부 세력의 공격을 막아내었다는 공을 통해, 모두루 묘지에서는 그를 중요히 여긴다.

 
 

20. 장수태왕 : 한반도 남부를 경영하며, 북으로 북위를 견제하는 높은 외교술과 지두우를 분할점령하는 강력한 힘을 자랑한 왕


갈로(장군) :  북위로부터 나라를 잃은 풍홍을 구출하기 위해 파견된 장군.

왕은 맹광과 함께 풍홍을 구하고, 북연땅을 접수하기 위해 갈로를 파견하였다.

 

맹광(장군) :  북위로부터 나라를 잃은 풍홍을 구출하기위해 파견된 장군.

왕은 갈로와 함께 풍홍을 구하고, 북연땅을 접수하기위해 맹광을 파견하였다.

 

도림(승려) :  백제의 내부를 흔들기 위해 고구려에서 파견한 승려.

도림은 개로왕의 폭정을 부추겨 백제의 내부를 혼란에 빠트렸으며, 고구려는 이를 계기로 한강유역을 완벽하게 차지하였다.

 

걸루(장군) :  재증걸루로 불리며, 백제출신이었으나,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한편으로는 학계에서는 그를 왕권강화를 반대하는 반대파였으나, 실패하자 고구려로 투항한 장수로 본다.

 

만년(장군) :  고이만년으로 불리며, 백제출신이었으나,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한편으로는 학계에서는 그를 왕권강화를 반대하는 반대파였으나, 실패하자 고구려로 투항한 장수로 본다.

 

고구(장군) :  손수와 함께 송으로 도망하려는 풍홍을 쫓아 죽였다.

그러나 송의 사자 왕백구한테 죽임을 당했다. 

 

손수(장군) :  고구와 함께 송으로 도망하려는 풍홍을 쫓아 죽였다.

그러나 송의 사자 왕백구한테 사로잡혔다.

이후 장수왕이 다시 군사를 파견하여 왕백구를 공격해 사로잡고 송으로 환송하였다.

이후의 기록은 없다.

 

고익(대신) :  동진에 고구려의 사절로 갔다.

자백마를 바쳤으며, 고구려왕 낙안군공으로 봉하는 조지를 가지고왔다.

 

조다(대신) :  고추대가의 벼슬을 지냈다.

장수왕의 아들이며 21대왕 문자명왕의 아버지이다.

일찍죽었다.

 

여노(대신) :  북위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남제에 사절로 보내졌다.

그러나 사로잡혔다.

이에 북위는 고구려에 불만을 표하는 한편, 견제당하기가 두려워 고구려와 친선을 유지하기위해 여노를 돌려보냈다.

 

제우(장군) :  고구려의 백제대침공때에 활약한 지휘관이다.

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잡아 죽였다.

이후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21. 명치호태왕(문자명왕) 부여의 세력을 통합하였으며, 나-제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태왕. 그러나 자료의 인멸로 그 기록을 알 수 없다. 
 

노(장군) :  고구려의 장군

말갈의 병사와 함께 한성을 쳤으나 횡악과 싸워 물러났다.

 

예실불(대신) :  북위의 효문제를 만난 고구려의 대신.

그는 왕의 뜻을 전하여, 부여는 물길에 병합되었고 섭라는 백제에 병합되었으니 스스로가 이 두 역적을 치겠다는것을 윤허받기 위해 갔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는 남하정책을 펴기위해 북방을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있으려는것으로 보겠다.

 

안정(대신) :  왜에 파견된 고구려의 대신.

같은 때에 백제의 사신을 만났다.

이를 통해, 양국은 외교적으로 우위에 있기위해 경쟁하였던 것으로 보임.

 

승천(왕족) :  문자명왕의 종숙이다.

당시 효문제는 왕을 작위에 봉하고, 세자를 파견하라하였다.

이에 왕은 승천을 대신 파견하였다.

 

숭간(대신) :  고구려의 대신이다.

북위에 친선대사로 파견되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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