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단어] 가카
김향미·박은하·이종희 기자 sokhm@kyunghyang.com  
입력 : 2011-12-26 22:14:46ㅣ수정 : 2011-12-26 22:16:58

“ ‘가카’요? 일단 들으면 한숨만 나오는 절망의 상징입니다.”(직장인 문학동씨·32) 

“ ‘가카’는 불통의 반어법이죠. 대통령의 권위를 비꼬면서 우리의 의견도 소중하다는 의미로 쓰는 것 같아요.”(대학생 김모씨·24)

올해의 유행어 중 하나가 ‘가카’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물론 블로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현직 판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SNS 검열을 비판하며 ‘가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가카’란 물론 이명박 대통령을 뜻한다.
‘가카’란 말이 쓰인 것은 이 대통령 집권 초기부터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 촛불집회 때 과잉진압을 풍자하면서 ‘가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시작한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는 ‘가카’가 대중화되는 데 기름을 부었다. 출연자들이 내건 구호가 ‘가카 헌정방송’이었기 때문이다. <나꼼수>가 한 달에 다운로드 2000만건을 기록할 만큼 인기를 누리면서, ‘가카’도 보통명사처럼 쓰이게 됐다.

권력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데 수많은 단어들이 있을 텐데 왜 유독 ‘가카’일까. 여기에는 올해 잇따른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초 이 대통령이 아들 시형씨 명의로 내곡동에 사저 부지를 사들인 사건이 터졌다. 그러자 인터넷에서는 찬송가를 패러디한 ‘내곡동 가까이’가 유행했고, 나중에는 ‘내곡동 가카집’이란 캐럴이 나왔다. 

현재 수사 중인 주요 사건도 ‘가카’와 관련이 있다. 이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 보좌관 박배수씨(46)가 SLS그룹 등에서 7억5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이 의원실에서는 뭉칫돈 차명계좌까지 나왔다. 대통령의 사촌 처남인 김재홍 KT&G복지재단 이사장도 영업정지된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4억여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시민사회 의견을 듣지 않고 4대강 사업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것도 ‘가카’의 유행에 큰 몫을 했다. ‘가카’란 결국 불통정권에 대한 ‘비꼼’인 셈이다. 불통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부의 무능을 탓할 때도 시민들은 ‘가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이 대통령의 생일인 지난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발표가 나오자 누리꾼들은 “가카 생일파티 하느라 김정일 사망을 몰랐느냐”며 비꼬았다.

이 대통령이 ‘공정사회’ ‘친서민 정책’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같은 화려한 ‘수사(修辭)’를 구사해왔지만 실제로는 그에 반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역설적으로 ‘가카’의 인기 요인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43)는 “원래 ‘각하’라는 말이 이승만 전 대통령 때부터도 존경의 의미보다는 풍자의 의미가 강했다”며 “이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소통이 안되는 사람이고 권위주의 시대 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가카’라는 풍자적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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