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3627.html
파파이스 PD의 김어준 외줄타기
“김어준과 다시는 방송하지 않을 거야“
최대 1500만 다운로드 한겨레TV <파파이스>
<한겨레> 최고 킬러 콘텐츠의 탄생 비화
제1164호 등록 :2017-06-02 15:16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공개방송 모습. 한겨레
메마른 찬 공기가 무겁게 내린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벤치, 저는 쓴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 PD(만 8년을 함께해온 동갑내기 김어준 총수는 지금도 저를 ‘이 PD’라고 부릅니다) 이쪽으로….”
수척한 얼굴에 긴 머리카락 사이로 초봄의 햇살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화장길 쇳대박물관을 지나 어느 집 담벼락에 선 김어준은 돌아서며 입을 열었습니다.
“잘 지냈어? 휴대폰 끄고 배터리도 빼야 돼.”
“…….”
울컥했습니다. 멘털 갑, 김어준도 어둡고 긴 터널 속에 있었던 것이지요.
“쉬고 싶어, 곧 돌아올게”
2009년 6월23일 한겨레TV 개국 프로그램의 하나인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이하 <김뉴타>)가 제작·편성됐고, 2012년 대선 후 그는 “쉬고 싶어. 곧 돌아올게”라는 짧은 문자를 던지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반드시 총수의 클로징 멘트로 <김뉴타>를 마치게 해줘.” 담당 PD의 마지막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대타로 나선 <한겨레> 김외현 기자(현 베이징 특파원)가 김용민 PD와 그의 빈자리를 지켰습니다.
인터넷방송 프로그램으로 4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편성된 <김뉴타>는 한겨레TV 구성원에게는 첫 도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부조리와 비상식에, 비루했던 시민들의 일상에 통쾌한 대자보였습니다. 이 정권은 반드시 교체될 것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상하는 김어준의 ‘검은 넥타이’가 2012년 12월에는 반드시 풀어헤쳐질 것이라고 제작진은 믿었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싫습니다. 국민은 대통령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오늘부터 편파방송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최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하겠습니다”라는 김어준의 오프닝 멘트처럼 비록 정권 교체의 꿈은 좌절됐지만, 더 당당한 클로징 멘트를 연출자인 저는 보고 싶었습니다. 함께해온 시청자 시민들도 그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2013년 3월15일 211회를 끝으로 김어준이 부재한 <김뉴타>는 ‘페이드아웃’됐습니다. <한겨레> 사옥 스튜디오, 마지막 녹화를 마치고 시민 방청객 20여 명은 김외현 기자,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보협 기자, 김용민 PD와 함께 조촐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무대 조명은 꺼졌습니다. 저는 그날 만취 상태에서 “김어준과 다시는 방송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좌절은 때때로 타인에게 책임을 덧씌우기도 하지요.
배터리 빼고… <파파이스> 시작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1년이 지날 때쯤 2014년 초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김어준이 제게 배터리를 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과 눈빛에서 저는 방송 제작자가 아니라 동지애 또는 우정에서 나오는 ‘짠한’ 마음이 처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의 휑한 눈동자는 그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을지 모릅니다. 그 후 우리는 서너 번 더 만난 것 같습니다. 신규 프로그램 논의보다 실없는 이야기와 무심한 줄담배만 피웠습니다.
공허한 시간이 지나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김뉴타>가 종방된 지 만 1년 후 2014년 3월15일, <김어준의 케이에프시(KFC)>(13회부터 <김어준의 파파이스>로 타이틀이 변경됐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기회에)가 방송됐습니다. 첫 공개방송 현장에 모인 시민들의 열기, 신규 프로그램 제작 준비 부족, 여러 변수들에 직면했습니다. 편집감독과 이틀 밤을 꼬박 새웠으나 예정 편성 시간을 지나 방송됐을 때 시민과 타 언론사의 반응을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김어준의 파파이스>(이하 <파파이스>)는 현재도 한겨레TV 유튜브 채널로 회당 평균 100만 조회수, 그리고 팟캐스트 오디오와 비디오를 합해 평균 9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5월5일 방송된 144회 ‘올타임 올스타 올투표’는 팟캐스트만 1500만 다운로드로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자신이 연출한 영상 이미지를 글이라는 서사로 다시 재현하는 것은 오히려 사족이 되거나 오해를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가 <한겨레21>의 ‘파파이스 PD의 김어준 외줄타기’를 통해 한겨레TV <파파이스> 등의 프로그램 제작 뒷얘기를 쓰게 된 것은 요즘 저널리즘과 미디어, 특히 진보언론 수용자들의 반응 현상 때문입니다. 특히 <한겨레>의 주주와 독자, 네티즌 그리고 시청자의 비판에 겸허한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소통하고 싶은 공간을 마련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 가운데 이처럼 많은 시민이 <파파이스>를 시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주도, 미국,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공개방송 현장으로 오는 시민들은 <파파이스>의 어떤 점에 끌리는 것일까요. <한겨레>의 한 선배는 <파파이스>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돈다. 보이는가? <한겨레> 둘레를 도는 프로그램이다. 모양과 공전주기는 제각각이지만. 몇 년째 (<한겨레> 주변을 돌면서도 <한겨레>의 존재 의미와 가치에 대해) 몰라주면 섭섭하다.”
“<파파이스>는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 저널리즘과 시민 사이의 경계에서 ‘외줄’을 타는 프로그램”이라고 의미 있는 말씀을 해준 아무개 교수도 있습니다.
방송 제작 노동자로,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한겨레> 구성원들은 요즘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 속에서도 자본과 정치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고, 부족하지만 당당히 보도할 수 있었던 <한겨레> 구성원의 버팀목은 시민들의 따듯한 시선과 언어였습니다.
누군가에겐 꽃이 되는
이제 겸허히 시민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성찰하며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는 이런 생각으로, 이런 과정으로 영상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제작자의 손을 떠난 ‘레디메이드’ 영상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게는 ‘꽃’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괴물’이 될 수 있는 현실을 아파하며, 이런저런 제작 과정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현실의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일상에 대해 독자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제 첫 프로듀서 ‘사수’께서 늘 “무릇 프로그램은 즐겁고 유익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처럼 유쾌한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일 밤 ‘빛고을’ 광주에서 열리는 <파파이스> 특집 공개방송 준비를 마치고 이 글을 쓰는데 한겨레TV 공식 페이스북 메신저에 한 시청자의 글이 올라왔네요.
“안녕하세요. 공개방송에 참석하고 싶은데 같이 가는 분께서 다리가 불편하시네요.ㅜㅜ”
“넵. 도착하시면 연락주세요^^.”
이경주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PD
*인터넷 방송의 최고 대박 콘텐츠인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제작하는 이경주 PD가 3주에 한 번씩 독자를 찾아갑니다. 이 PD는 그동안 방송에 담지 못했던 파파이스의 다양한 뒷얘기와 여러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할 예정입니다.
파파이스 PD의 김어준 외줄타기
“김어준과 다시는 방송하지 않을 거야“
최대 1500만 다운로드 한겨레TV <파파이스>
<한겨레> 최고 킬러 콘텐츠의 탄생 비화
제1164호 등록 :2017-06-02 15:16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공개방송 모습. 한겨레
메마른 찬 공기가 무겁게 내린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벤치, 저는 쓴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 PD(만 8년을 함께해온 동갑내기 김어준 총수는 지금도 저를 ‘이 PD’라고 부릅니다) 이쪽으로….”
수척한 얼굴에 긴 머리카락 사이로 초봄의 햇살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화장길 쇳대박물관을 지나 어느 집 담벼락에 선 김어준은 돌아서며 입을 열었습니다.
“잘 지냈어? 휴대폰 끄고 배터리도 빼야 돼.”
“…….”
울컥했습니다. 멘털 갑, 김어준도 어둡고 긴 터널 속에 있었던 것이지요.
“쉬고 싶어, 곧 돌아올게”
2009년 6월23일 한겨레TV 개국 프로그램의 하나인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이하 <김뉴타>)가 제작·편성됐고, 2012년 대선 후 그는 “쉬고 싶어. 곧 돌아올게”라는 짧은 문자를 던지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반드시 총수의 클로징 멘트로 <김뉴타>를 마치게 해줘.” 담당 PD의 마지막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대타로 나선 <한겨레> 김외현 기자(현 베이징 특파원)가 김용민 PD와 그의 빈자리를 지켰습니다.
인터넷방송 프로그램으로 4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편성된 <김뉴타>는 한겨레TV 구성원에게는 첫 도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부조리와 비상식에, 비루했던 시민들의 일상에 통쾌한 대자보였습니다. 이 정권은 반드시 교체될 것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상하는 김어준의 ‘검은 넥타이’가 2012년 12월에는 반드시 풀어헤쳐질 것이라고 제작진은 믿었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싫습니다. 국민은 대통령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오늘부터 편파방송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최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하겠습니다”라는 김어준의 오프닝 멘트처럼 비록 정권 교체의 꿈은 좌절됐지만, 더 당당한 클로징 멘트를 연출자인 저는 보고 싶었습니다. 함께해온 시청자 시민들도 그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2013년 3월15일 211회를 끝으로 김어준이 부재한 <김뉴타>는 ‘페이드아웃’됐습니다. <한겨레> 사옥 스튜디오, 마지막 녹화를 마치고 시민 방청객 20여 명은 김외현 기자,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보협 기자, 김용민 PD와 함께 조촐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무대 조명은 꺼졌습니다. 저는 그날 만취 상태에서 “김어준과 다시는 방송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좌절은 때때로 타인에게 책임을 덧씌우기도 하지요.
배터리 빼고… <파파이스> 시작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1년이 지날 때쯤 2014년 초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김어준이 제게 배터리를 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과 눈빛에서 저는 방송 제작자가 아니라 동지애 또는 우정에서 나오는 ‘짠한’ 마음이 처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의 휑한 눈동자는 그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을지 모릅니다. 그 후 우리는 서너 번 더 만난 것 같습니다. 신규 프로그램 논의보다 실없는 이야기와 무심한 줄담배만 피웠습니다.
공허한 시간이 지나고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김뉴타>가 종방된 지 만 1년 후 2014년 3월15일, <김어준의 케이에프시(KFC)>(13회부터 <김어준의 파파이스>로 타이틀이 변경됐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기회에)가 방송됐습니다. 첫 공개방송 현장에 모인 시민들의 열기, 신규 프로그램 제작 준비 부족, 여러 변수들에 직면했습니다. 편집감독과 이틀 밤을 꼬박 새웠으나 예정 편성 시간을 지나 방송됐을 때 시민과 타 언론사의 반응을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김어준의 파파이스>(이하 <파파이스>)는 현재도 한겨레TV 유튜브 채널로 회당 평균 100만 조회수, 그리고 팟캐스트 오디오와 비디오를 합해 평균 9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5월5일 방송된 144회 ‘올타임 올스타 올투표’는 팟캐스트만 1500만 다운로드로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자신이 연출한 영상 이미지를 글이라는 서사로 다시 재현하는 것은 오히려 사족이 되거나 오해를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제가 <한겨레21>의 ‘파파이스 PD의 김어준 외줄타기’를 통해 한겨레TV <파파이스> 등의 프로그램 제작 뒷얘기를 쓰게 된 것은 요즘 저널리즘과 미디어, 특히 진보언론 수용자들의 반응 현상 때문입니다. 특히 <한겨레>의 주주와 독자, 네티즌 그리고 시청자의 비판에 겸허한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소통하고 싶은 공간을 마련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 가운데 이처럼 많은 시민이 <파파이스>를 시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주도, 미국,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공개방송 현장으로 오는 시민들은 <파파이스>의 어떤 점에 끌리는 것일까요. <한겨레>의 한 선배는 <파파이스>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돈다. 보이는가? <한겨레> 둘레를 도는 프로그램이다. 모양과 공전주기는 제각각이지만. 몇 년째 (<한겨레> 주변을 돌면서도 <한겨레>의 존재 의미와 가치에 대해) 몰라주면 섭섭하다.”
“<파파이스>는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 저널리즘과 시민 사이의 경계에서 ‘외줄’을 타는 프로그램”이라고 의미 있는 말씀을 해준 아무개 교수도 있습니다.
방송 제작 노동자로,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한겨레> 구성원들은 요즘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 속에서도 자본과 정치권력에 고개 숙이지 않고, 부족하지만 당당히 보도할 수 있었던 <한겨레> 구성원의 버팀목은 시민들의 따듯한 시선과 언어였습니다.
누군가에겐 꽃이 되는
이제 겸허히 시민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성찰하며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는 이런 생각으로, 이런 과정으로 영상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제작자의 손을 떠난 ‘레디메이드’ 영상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게는 ‘꽃’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괴물’이 될 수 있는 현실을 아파하며, 이런저런 제작 과정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현실의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일상에 대해 독자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제 첫 프로듀서 ‘사수’께서 늘 “무릇 프로그램은 즐겁고 유익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처럼 유쾌한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일 밤 ‘빛고을’ 광주에서 열리는 <파파이스> 특집 공개방송 준비를 마치고 이 글을 쓰는데 한겨레TV 공식 페이스북 메신저에 한 시청자의 글이 올라왔네요.
“안녕하세요. 공개방송에 참석하고 싶은데 같이 가는 분께서 다리가 불편하시네요.ㅜㅜ”
“넵. 도착하시면 연락주세요^^.”
이경주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PD
*인터넷 방송의 최고 대박 콘텐츠인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제작하는 이경주 PD가 3주에 한 번씩 독자를 찾아갑니다. 이 PD는 그동안 방송에 담지 못했던 파파이스의 다양한 뒷얘기와 여러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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