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사 김문순데" 8번, 미국이면 체포감?
[해외리포트] 미국, 응급 전화 방해하면 경범죄 적용되기도
11.12.30 09:14 ㅣ최종 업데이트 11.12.30 10:10  한나영 (azurefall)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 White House

"다코타, 내 전화를 받아줘서 정말 고마워."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9월 15일 백악관에서 해병대 영웅인 다코타 마이어 병장에게 미국 최고의 명예 훈장인 'Medal of Honor'를 수여한 뒤 이렇게 말했다.
 
켄터키 출신의 23살인 마이어 병장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집중포화가 쏟아지는 가운데 36명의 병사를 구한 공로로 미국 최고 훈장을 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메달을 수여한 뒤 마이어 병장에게 "전화를 받아줘 고맙다"고 특별 인사를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마이어 병장을 가리켜 아주 철저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했었다. 마이어 병장이 전역을 한 이후에도 자신의 일에서 완벽했기 때문에. 훈장 수여식이 있기 전, 백악관 참모들은 마이어 병장과 통화를 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통화를 하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전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말 떨어지기 무섭게 대통령과 통화를 했을 것이다. 또한 대통령 참모들도 대통령 편리한 시간에 맞춰 통화 시간을 밀어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민간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마이어 병장은 "일을 해야 한다"며 대통령과의 통화를 점심 시간으로 미뤄줄 것을 참모들에게 요청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기다렸다가 마이어 병장의 점심 시간에 맞춰 통화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마이어 병장에게 소원을 물었고, 마이어 병장은 "대통령과 단둘이서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흔쾌히 이 소원을 들어준 오바마 대통령은 훈장 시상식이 있기 전날, 대통령 집무실 밖 테라스에서 마이어 병장과 맥주를 마셨다.
 
몇 달 전에 벌어진 일이지만 나는 마이어 병장의 뉴스를 보면서 오바마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마이어 병장이 요구한대로 대통령이나 참모들이 그 시간을 맞춰주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통령 앞에서 알아서 기는(?) 참모들이 대부분일 테고, 대통령 역시 최고 권력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마구 휘두르려고 할 테니 말이다.
 
하긴 대통령도 아닌 일개 도지사가 지금처럼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가 "내가 도지사인데..."를 수도 없이 외치고 있는 현실을 보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완장 두르고 목소리 높이는 정치인들의 오만방자함을.
 
"내가 도지사"만 8번... 어쩌라고요!
 
▲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11월 7일 오후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미래한국 국민연합 창립 1주년 기념 지도자포럼'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 권우성

경기도청에 따르면 김문수 지사는 지난 19일 남양주시의 한 요양병원을 방문했고 요양원내 암환자 응급 이송 관련 문의를 위해 남양주소방서 119 상황실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김문수 지사는 자신의 이름을 수 차례 밝히며 전화를 했고, 상황실 근무자는 이를 장난전화로 오인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직원 둘은 인사 조치를 당했고, 큰 논란을 겪은 29일에야 원대복귀가 이뤄졌다.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자신의 관등성명(아직도 이런 어려운 말을 쓰는가)을 밝히지 않은 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인가?
 
뭐가 적절한 조치인가. 119 상황실에서의 적절한 조치는 전화를 건 사람이 어떤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묻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119 전화의 성격을 안다면 말이다. 즉,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는지를 묻는 게 적절한 조치일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문제가 된 김문수 지사의 119 상황실 통화에 대해 서울시의 한 현직 소방관은 "원래 상황실 전화는 긴급 전화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냥 119입니다"라고 말할 뿐이라며, 김 지사의 무지를 반박했다고 한다.
 
하여튼 문제가 된 그날의 김문수 지사와 911 상황실 간의 전화 녹취록을 자세히 읽어 보시라. 그리고 판단해 보시라. 김문수 지사가 과연 국민의 공복으로 제대로 처신하고 있는지를.
 
또한 이번 사건으로 문책 당한 소방관의 인사조치(현재는 철회됐지만)도 과연 정당했다고 생각되는지 여러분이 판단해 보시라. 이 녹취록에는 "나는 도지사"라는 말이 무려 8차례나 반복된다. 그래서 지루하고 솔직히 할 말도 없다. 황당해서.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시라. 그래야 나중에 제대로 심판을 하지 않겠는가.
 
 
 
 
119: 네, 남양주 소방서입니다.
김문수 : 어 그래, 여보세요.
 
119: 여보세요?
김문수 : 나는 도지사 김문숩니다. (1)
 
119: 여보세요?
김문수 : 여보세요?
 
119: 예, 소방섭니다. 말씀하십시오.
김문수 : 어, 도지사 김문숩니다. (2)
김문수 : 여보세요?
 
119: 예예.
김문수 : 경기도지사 김문숩니다. (3)
 
119: 예예, 무슨 일 때문에요?
김문수 : 거기 119 우리 남양 소방서 맞아요?
 
119: 예, 맞습니다.
김문수 : 이름이 누구요?
 
119: 무슨 일 때문에 전화하신 건데요?
김문수 : 어, 내가 도지산데 거 이름이 누구요? 지금 전화 받은 사람이? (4)
김문수 : 여보세요?
 
119: 예예.
김문수 : 이름이 누구냐고?
 
119: 여보세요?
김문수 : 지금 전화 받은 사람이 이름이 누구여?
 
김문수 : 여보세요?
119: 예,예. 무슨 일 때문에 전화하셨어요?
 
김문수 : 이름이 누구냐는데 왜 말을 안해?
119: 무슨 일 때문에 전화를 하셨는지 먼저 말씀을 하십시오.
 
김문수 : 어, 아니 지금 내가 도지사라는데 지금 그게 안들려요? (5)
119: 선생님, 무슨 일 때문에 여기다 전화를 하셨는데요? 소방서 119에 지금 긴급 전화로 하셨잖아요?
 
김문수 : 그래요, 119했어요. 그래요, 엉.
119: 예, 그러면 무슨 일 때문에 전화를 하셨는지 얘기를 하셔야지요.
 
김문수 : 아니 도지사가 누구, 누구냐고 이름을 묻는데 답을 안해? (6)
119: 여기에다 그렇게 전화를 하시는 분은 일반전화로 하셔야지, 왜 긴급전화로, 그렇게 얘기를 하시면 안되죠.
김문수 : 어.
 
119: 여보세요??
김문수 : 누구냐고 이름을 말해봐, 일단.
 
(전화 끊음)
 
잠시 뒤 다시 이어짐.
 
119: 예 소방섭니다.
 
김문수 : 예, 내가 저 경기도지사 김문숩니다. (7)
119: 예예.
김문수 : 아까 전화 받았던 사람 관등성명 좀 얘기해 봐요.
김문수 : 지금 받는 사람 맞아?
 
119: 아닙니다 제가 받은 게 아닌데요?
김문수 : 지금 누구요 그럼?
 
119: 저요?
김문수 : 예.
 
119: 저는 윤ㅇㅇ입니다.
김문수 : 윤ㅇㅇ 소방위인가?
 
119: 예?
김문수 : 소방사?
 
119: 예, 소방교입니다.
김문수 : 소방교.
 
119: 예 그렇습니다.
김문수 : 방금 좀 전에 받은 사람 누구요?
 
119: 여보세요?
김문수 : 지금 받은 사람 이름이 누구?
 
119: 아니, 지금 119로 하셨잖아요?
김문수 : 119. 윤ㅇㅇ
 
119: 예,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김문수 : 도지삽니다. (8)
 
119: 예예.
김문수 : 어, 그래. 알겠어. 끊어.
 
위 통화내역을 보면 김문수 지사는 동문서답의 왕이다. 무슨 일 때문에 전화를 했냐는 질문에 "도지사"라는 엉뚱한 대답을 한다. 그것도 무려 8차례나 도지사 직위를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어떻게 해달라고? 과시할 신분도 못 되는 신분을 과시하면서 직원을 마치 피의자 다루듯 고압적으로 말하는 김 지사의 오만한 태도가 불쾌하다. 또한 상황실 직원도 얘기했듯이 119 응급 전화는 이런 경우에 거는 한가한 전화가 아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해요"... 응급전화는 이럴 때 거는 것
 
#1. 아빠가 피를 흘려요 (3살 아들인 AJ 통화. 2011년 1월)
 
"여보세요. 911입니다."
"아빠가 도움이 필요해요."
"앰블런스가 필요한가요?"
"지금 당장이요. 아빠가 다쳤어요. 빨리 와야 해요. 아빠는 정말 도움이 필요해요."
 
#2. 아빠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숨을 못 쉬어요 (5살 딸인 사바나 통화. 2010년 10월)
 
"911입니다. 무슨 일인가요?"
"아빠가 거의 숨을 쉬지 못해요."
"전에도 이런 일이 아빠에게 있었나요?"
"(아빠,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아니요."
"가슴이 아픈가요?"
"(아빠, 지금 가슴이 아파요?) 네. 하지만 이번이 처음이래요."
"아빠가 괜찮아요?"
"네, 지금까지는 괜찮아요. (아빠, 걱정마세요. 진정하세요.)"
 
우리나라 119에 해당되는 미국의 응급 전화 911이다. 3살, 5살 밖에 안 된 아이들이 의젓하게 911에 응급 전화를 걸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미국 TV에는 이런 얘기들이 종종 등장한다.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아빠를 구한 얘기는 언제 들어봐도 감동적이다. 이런 911의 응급 상황은 FOX-TV의 리얼리티 쇼인 '캅스(Cops)'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나도 경험한 미국의 911... 김문수는 체포될 수도?
 
미국 사람들 역시 비상 응급 상황에서 911에 도움을 요청한다.
 
"911입니다. 무슨 응급상황인가요? 뭘 도와드릴까요?"
 
911 요원들이 친절하게 묻는다. 나 역시 두 차례 911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그들의 고마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11월 7일 오후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미래한국 국민연합 창립 1주년 기념 지도자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자료사진) ⓒ 권우성

지난 2006년 여름, 뉴욕에서였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 정지하고 있을 때 바로 뒤에 서 있던 큰 트럭이 우리 차를 덮쳤다. 뒷창문이 다 깨지고 차 안이 온통 유리밭이 되었던 교통사고였다. 천만다행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다. 바로 그 때 우리는 911을 불렀고 그들은 친절하게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주고 사고 처리를 도와주었다.
 
또 한 번은 지난 1월, 대서양이 보이는 버지니아 비치로 가던 중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인도하는 대로 비치를 찾아가던 중, 그만 모래밭에 빠지고 말았다. 날은 어두워졌고 우리 차는 모래밭에 박혀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어른 네 명이 나서서 바퀴 아래 버팀대를 놓고 차를 밀어보았지만 꼼짝도 안 했다. 결국 911을 불렀고 경찰이 견인차를 불러 모래밭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바로 이런 긴급 상황에서 911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119 역시 미국의 911과 마찬가지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적절하게 도움을 주는 '생명의 전화' 역할을 하지 않는가.
 
이렇게 중요한 응급 전화 업무를 방해하면 미국에서는 경범죄로 체포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11월 17일, 일리노이에서는 마이클 스코팩(48)이라는 남자가 체포되었다. 스코팩은 자신의 아이폰이 작동되지 않는다고 911에 전화를 했다. 술을 마셔 횡설수설했던 이 남자는 무려 다섯 차례나 911 전화를 걸어 결국 법원 출두 명령을 받았다.
 
김문수 지사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는 119 상황실의 응급 상황이나 생명 구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름이 뭐냐"는 '트집잡기'로 피 같은 시간을 보냈다. 김 지사와의 통화 중 다른 데서 걸려온 전화벨 소리를 흘려듣지 못하는 건 어디 나 뿐이겠는가.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공무집행 방해가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119 상황실에서 '도지사를 알아보지 못한' 부하 직원과 한가하게 '이름 대기' 말장난을 했으니 말이다. 도대체 김 지사가 그 통화에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심으로 나는 김 지사에게 묻고 싶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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