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0329.html?_fr=mt1
대통령 지시’…김종덕은 있었고 문형표는 없었다, 왜?
지시도 부탁도 없었다면, 왜 그랬을까
등록 :2017-09-10 09:03 수정 :2017-09-10 11:25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국민연금공단의 삼성 합병 찬성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사진은 지난 5월22일 문 전 장관이 재판 출석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오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토요판] 법정 다큐-수인번호 503
⑧ 법정에 선 국무위원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대통령의 합병 지시 없었다” “삼성 부탁도 없었다”고 진술, 법원 판결문에도 ‘왜’는 빠져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블랙리스트 지시 있었다”며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 피고 박근혜 선고는 11월 예상
“블랙리스트가 무슨 뜻인지 아나?”(유영하 변호사)
“사전상 의미로 해석하면 검은 명단 아닙니까.”(오진숙 문화체육관광부 서기관)
“정확한 블랙리스트의 사전적 의미를 잘 모르나?”
“통상적으로 이해하기로는 배제해야 할 사람들, 좀 찍힌 사람들, 이렇게 이해했다.”
“사전적 의미는 블랙 요원이라고 정보기관의 공개되지 않은 요원이 대테러 업무, 간첩 업무 하며 작성된 게 블랙리스트다. 이 사건 터지기 전에 문체부에서 블랙리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나.”
“공무원들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예술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사용했다.”
“블랙리스트 용어는 언론에서 네이밍한 거다. 그런데 사전적 의미도 모르고 용어를 사용한 적도 없는 사람에게 검사님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업무 수행한 적 있냐’고 했다.”
“그 정도로 하시죠.”(김세윤 부장판사)
8월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의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유 변호사는 때아닌 ‘블랙리스트 용어 논란’을 들고나왔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오 서기관은 “공무원 입장에서 비에이치(BH·청와대) 지시는 가장 강력하고 거부할 수 없다. 청와대에서 내려온 배제 명단은 꼭 배제해야 하는 거였다”고 진술했다.
“대통령이 직접 호출해…”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7일 오 사무관의 상관으로 ‘블랙리스트 업무’를 했던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박 전 대통령 앞에 섰다. 김 전 장관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일하다 2014년 8월 박 전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고 장관으로 취임했다. 김 전 장관의 취임 배경에 대해 고영태씨는 검찰에서 “최순실씨가 차은택씨를 만나 ‘문체부 장관에 앉힐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차씨가 얼마 뒤 김 전 장관을 추천했고, 최씨가 대통령에게 추천한 것으로 안다”고 진술한 바 있다. 하지만 2년 뒤 두 사람은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현 문체부 제2차관)의 사직 요구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피고인으로 법정에서 만났다.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정을 심의한 국무위원이었던 김 전 장관은 박 전 대통령과 ‘잘못된 만남’ 탓에 지난 7월27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오전 수의 대신 양복을 입고 법정으로 들어오는 김 전 장관을 박 전 대통령이 빤히 쳐다봤다. 김 전 장관은 재판부 맞은편에 있는 증인석에 선 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박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반가운 인사’와 달리 과거 박 전 대통령의 ‘수족’이었던 김 전 장관은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냈다.
“2015년 1월9일 대통령이 소환해 김종 당시 문체부 제2차관과 함께 대면 보고를 했는데, 대통령은 ‘영화 제작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데 정치 편향 영화에 지원되면 안 된다, 문체부에서 잘 관리해달라’고 얘기했죠?”(특검)
“네.”(김 전 장관)
“증인 업무 수첩에 ‘건전 콘텐츠. 정치권에서 영향 ×’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요약해 기재한 건가.”
“네.”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7월27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됨)은 2015년 1월1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만나 ‘대통령이 향후 있을 문체부 예술지원과 관련해 건전 콘텐츠를 철저히 이행하라고 지시했다’고 전달했죠?”
“네.”
“대통령은 1월9일 증인을 직접 호출해 ‘정치 편향적인 것에 지원돼서는 안 된다, 관리 잘해달라’는 취지로 지시하고, 이틀 뒤 김 전 수석을 통해 건전 콘텐츠를 철저히 이행하라고 지시한 건데 그 이유가 뭔가.”
“잘 챙겨보라고 한 거밖에 없겠죠.”
“다시 한번 말해달라.”(김 부장판사)
“제가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지시한 건 잘 챙겨보라는 지시로 이해했다.”
“김 전 수석은 노태강 전 국장을 빨리 퇴직시키라고 했죠.”
“네.”
“증인은 국민체육진흥공단 사무총장으로 내보내겠다고 보고했는데, ‘대통령이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느냐’고 했다’는 김 전 수석의 말을 듣고 다시 알아봐 결국 명예퇴직하고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총장으로 갔죠?”
“네.”
김 전 장관이 진술한 박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와 노 전 국장의 사직 지시는 이미 한번 법적 판단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는 김 전 장관의 판결문에서 “2014년 12월28일께 김상률 수석을 통해 김종덕 장관에게 <국제시장>과 같은 건전 애국영화 발굴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은 2015년 1월9일께 김종덕 장관에게 ‘보조금 집행이 잘 되어야 된다, 정치 편향적인 것에 지원이 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지시도 하였다”고 인정했다. 또 “김 전 장관은 김상률 수석으로부터 대통령의 사표 제출 지시를 전달받고 노 전 국장을 내보낼 자리를 알아본 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김 수석은 ‘그렇게 좋은 자리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고 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김 전 장관은 자신의 재판에서 “상관인 대통령의 지시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것뿐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국예술위원회의 문예기금 지원 심의 등에 개입하여 좌파 또는 정부에 반대하는 개인·단체를 선정에서 배제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위법·부당한 지시임이 명백하다. 노 전 국장을 사직시키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직업공무원제도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지시임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위법·부당한 상관의 지시에 따랐다면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법적 책임은 노 전 국장 사직 강요에만 인정됐다. 김 전 장관의 입장에선, 블랙리스트라는 ‘위법·부당한 지시’를 한 박 전 대통령만 빠져나간 셈이다.
그 탓인지 모르겠지만 김 전 장관은 이날 오후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의 증인신문 중 “워낙 여러 차례 조사와 재판을 받다 보니 제가 기억하는 건지 진술서에서 본 건지 혼돈돼 자칫하면 의도치 않게 위증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이 시간 이후 제가 기소된 사건 관련해서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검찰 측 주신문에 대해 증언했는데, 반대신문권 보장을 위해 변호인 반대신문에도 증언해야 한다”고 말하자 다시 증언을 이어갔다.
반면 또 다른 국무위원이었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8월29일 증인으로 나와 국민연금공단의 삼성 합병 찬성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도, 자신의 지시도 모두 없었다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2015년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을 1 대 0.45로 하는 합병 계약 체결을 알고 있었나.”(특검)
“언론에서 본 것 같긴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문 전 장관)
“국민연금공단에서 (내부) 투자위원회가 아니라 (국민연금기금 주식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서 심의 가능성이 높았죠?”
“잘 몰랐다.”
“조남권 국장은 증인이 자신에게 직접 삼성 합병 건이 찬성이 돼야 한다고 말해 합병 찬성 지시로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도 조 국장에게 합병이 성사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고민 끝에 저는 기억이 없기 때문에 직원들이 그렇게 얘기했다면 인정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나중에 직원들 진술이 국장, 과장 다 다르다.”
“백진주 복지부 사무관은 합병건이 통과돼야 한다는 조 국장 말에 따라 (투자위와 전문위 중) 어떤 위원회를 활용하는 게 합병 가능한 건지 검토했다고 했는데, 보고받거나 알지 못했나?”
“네. 제가 하라고 한 적이 없다.”
“백 사무관과 조 국장은 증인이 ‘100% 슈어(sure)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는데.”
“그렇게 말한 기억 없다.”
“증인의 판결문에는 왜 삼성 합병에 찬성하라는 지시를 했는지 설명이 없다. 합병에 개인 이해관계 없나?”(유영하 변호사)
“네.”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받은 적도, 대통령에게 보고한 적도 없죠?”
“네.”
“삼성으로부터 합병 관련 논의를 부탁받은 적 있나?”(최순실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
“없다.”
문 전 장관의 주장을 모으면, 자신은 삼성 합병에 관심도 없었고 청와대의 지시나 삼성의 부탁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조의연)는 지난 6월8일 문 전 장관이 “국민연금기금 보유 주식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하여 기금운용본부가 개별 합병 안건에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며 “국민연금공단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하였고, 국민연금기금에 주주 가치의 훼손이라는 손해를 초래하였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과 불법성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문 전 장관은 항소이유서에서 “대통령이 당시 안종범 경제수석과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에 합병을 지시했다”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문 전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국민연금공단의 삼성 합병 찬성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필요했고 문 전 장관은 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유 변호사의 말처럼 ‘왜?’가 빠져 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필요했던 삼성 합병, 그 삼성 합병과 아무런 개인적 연결고리가 없는 문 전 장관의 적극적인 찬성 압력. 그 사이의 진실은 박 전 대통령의 1심 판결문에서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이르면 11월에 선고
지난 4월17일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은 다섯달째 진행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구속된 피고인의 1심 구속 기간은 기소된 날부터 6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의 1심 구속 기간은 10월16일 밤 12시 끝난다. 일반적으로 검찰의 구형과 변호인·피고인의 최종변론이 이어지는 재판의 마지막 단계인 ‘결심’을 하고 2주 있다가 선고하기 때문에, 10월16일 선고하려면 추석 연휴 전에는 결심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7일 박 전 대통령의 재판부는 10월10일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 등 5명의 증인신문을 열기로 했다. 이날 김 부장판사는 “케이티(KT)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관련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11월26일 구속 만기라 그 전에 선고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공범’ 중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1심 구속 기간이 11월16일로 가장 빨리 끝난다. 차 전 단장 등의 구속 기간까지 고려하면 박 전 대통령의 선고는 이르면 11월로 예상된다. 실제 재판부는 차 전 단장과 송 전 원장 등의 선고 예정일 하루 전인 5월10일 “차은택 피고인과 박근혜 피고인이 공범 관계로 기소돼 공소사실이 똑같은 이상 차은택 피고인에 대해서만 먼저 선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똑같은 하나의 결론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리가 마쳐질 때까지 선고를 미뤘다. 다만 재판부는 1심 구속 기간이 끝날 박 전 대통령을 석방할지,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할지 결정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추가 기소된 혐의는 없지만, 에스케이(SK)에 뇌물을 요구한 혐의는 구속영장에 포함되지 않아 재판부 직권으로 구속영장 발부가 가능하다. 영장이 다시 한번 발부되면 구속 기간도 6개월 연장돼 내년 4월까지 심리가 가능하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대통령 지시’…김종덕은 있었고 문형표는 없었다, 왜?
지시도 부탁도 없었다면, 왜 그랬을까
등록 :2017-09-10 09:03 수정 :2017-09-10 11:25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국민연금공단의 삼성 합병 찬성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사진은 지난 5월22일 문 전 장관이 재판 출석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오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토요판] 법정 다큐-수인번호 503
⑧ 법정에 선 국무위원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대통령의 합병 지시 없었다” “삼성 부탁도 없었다”고 진술, 법원 판결문에도 ‘왜’는 빠져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블랙리스트 지시 있었다”며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 피고 박근혜 선고는 11월 예상
“블랙리스트가 무슨 뜻인지 아나?”(유영하 변호사)
“사전상 의미로 해석하면 검은 명단 아닙니까.”(오진숙 문화체육관광부 서기관)
“정확한 블랙리스트의 사전적 의미를 잘 모르나?”
“통상적으로 이해하기로는 배제해야 할 사람들, 좀 찍힌 사람들, 이렇게 이해했다.”
“사전적 의미는 블랙 요원이라고 정보기관의 공개되지 않은 요원이 대테러 업무, 간첩 업무 하며 작성된 게 블랙리스트다. 이 사건 터지기 전에 문체부에서 블랙리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나.”
“공무원들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예술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사용했다.”
“블랙리스트 용어는 언론에서 네이밍한 거다. 그런데 사전적 의미도 모르고 용어를 사용한 적도 없는 사람에게 검사님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업무 수행한 적 있냐’고 했다.”
“그 정도로 하시죠.”(김세윤 부장판사)
8월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의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유 변호사는 때아닌 ‘블랙리스트 용어 논란’을 들고나왔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오 서기관은 “공무원 입장에서 비에이치(BH·청와대) 지시는 가장 강력하고 거부할 수 없다. 청와대에서 내려온 배제 명단은 꼭 배제해야 하는 거였다”고 진술했다.
“대통령이 직접 호출해…”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7일 오 사무관의 상관으로 ‘블랙리스트 업무’를 했던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이 박 전 대통령 앞에 섰다. 김 전 장관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일하다 2014년 8월 박 전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고 장관으로 취임했다. 김 전 장관의 취임 배경에 대해 고영태씨는 검찰에서 “최순실씨가 차은택씨를 만나 ‘문체부 장관에 앉힐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차씨가 얼마 뒤 김 전 장관을 추천했고, 최씨가 대통령에게 추천한 것으로 안다”고 진술한 바 있다. 하지만 2년 뒤 두 사람은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현 문체부 제2차관)의 사직 요구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피고인으로 법정에서 만났다.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정을 심의한 국무위원이었던 김 전 장관은 박 전 대통령과 ‘잘못된 만남’ 탓에 지난 7월27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오전 수의 대신 양복을 입고 법정으로 들어오는 김 전 장관을 박 전 대통령이 빤히 쳐다봤다. 김 전 장관은 재판부 맞은편에 있는 증인석에 선 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박 전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반가운 인사’와 달리 과거 박 전 대통령의 ‘수족’이었던 김 전 장관은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냈다.
“2015년 1월9일 대통령이 소환해 김종 당시 문체부 제2차관과 함께 대면 보고를 했는데, 대통령은 ‘영화 제작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데 정치 편향 영화에 지원되면 안 된다, 문체부에서 잘 관리해달라’고 얘기했죠?”(특검)
“네.”(김 전 장관)
“증인 업무 수첩에 ‘건전 콘텐츠. 정치권에서 영향 ×’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요약해 기재한 건가.”
“네.”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7월27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됨)은 2015년 1월1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만나 ‘대통령이 향후 있을 문체부 예술지원과 관련해 건전 콘텐츠를 철저히 이행하라고 지시했다’고 전달했죠?”
“네.”
“대통령은 1월9일 증인을 직접 호출해 ‘정치 편향적인 것에 지원돼서는 안 된다, 관리 잘해달라’는 취지로 지시하고, 이틀 뒤 김 전 수석을 통해 건전 콘텐츠를 철저히 이행하라고 지시한 건데 그 이유가 뭔가.”
“잘 챙겨보라고 한 거밖에 없겠죠.”
“다시 한번 말해달라.”(김 부장판사)
“제가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지시한 건 잘 챙겨보라는 지시로 이해했다.”
“김 전 수석은 노태강 전 국장을 빨리 퇴직시키라고 했죠.”
“네.”
“증인은 국민체육진흥공단 사무총장으로 내보내겠다고 보고했는데, ‘대통령이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느냐’고 했다’는 김 전 수석의 말을 듣고 다시 알아봐 결국 명예퇴직하고 스포츠안전재단 사무총장으로 갔죠?”
“네.”
김 전 장관이 진술한 박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와 노 전 국장의 사직 지시는 이미 한번 법적 판단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는 김 전 장관의 판결문에서 “2014년 12월28일께 김상률 수석을 통해 김종덕 장관에게 <국제시장>과 같은 건전 애국영화 발굴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은 2015년 1월9일께 김종덕 장관에게 ‘보조금 집행이 잘 되어야 된다, 정치 편향적인 것에 지원이 되면 안 된다’는 취지의 지시도 하였다”고 인정했다. 또 “김 전 장관은 김상률 수석으로부터 대통령의 사표 제출 지시를 전달받고 노 전 국장을 내보낼 자리를 알아본 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김 수석은 ‘그렇게 좋은 자리는 안 된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고 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김 전 장관은 자신의 재판에서 “상관인 대통령의 지시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것뿐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국예술위원회의 문예기금 지원 심의 등에 개입하여 좌파 또는 정부에 반대하는 개인·단체를 선정에서 배제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위법·부당한 지시임이 명백하다. 노 전 국장을 사직시키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직업공무원제도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법·부당한 지시임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위법·부당한 상관의 지시에 따랐다면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법적 책임은 노 전 국장 사직 강요에만 인정됐다. 김 전 장관의 입장에선, 블랙리스트라는 ‘위법·부당한 지시’를 한 박 전 대통령만 빠져나간 셈이다.
그 탓인지 모르겠지만 김 전 장관은 이날 오후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의 증인신문 중 “워낙 여러 차례 조사와 재판을 받다 보니 제가 기억하는 건지 진술서에서 본 건지 혼돈돼 자칫하면 의도치 않게 위증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이 시간 이후 제가 기소된 사건 관련해서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검찰 측 주신문에 대해 증언했는데, 반대신문권 보장을 위해 변호인 반대신문에도 증언해야 한다”고 말하자 다시 증언을 이어갔다.
반면 또 다른 국무위원이었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8월29일 증인으로 나와 국민연금공단의 삼성 합병 찬성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도, 자신의 지시도 모두 없었다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2015년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을 1 대 0.45로 하는 합병 계약 체결을 알고 있었나.”(특검)
“언론에서 본 것 같긴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문 전 장관)
“국민연금공단에서 (내부) 투자위원회가 아니라 (국민연금기금 주식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서 심의 가능성이 높았죠?”
“잘 몰랐다.”
“조남권 국장은 증인이 자신에게 직접 삼성 합병 건이 찬성이 돼야 한다고 말해 합병 찬성 지시로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도 조 국장에게 합병이 성사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고민 끝에 저는 기억이 없기 때문에 직원들이 그렇게 얘기했다면 인정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나중에 직원들 진술이 국장, 과장 다 다르다.”
“백진주 복지부 사무관은 합병건이 통과돼야 한다는 조 국장 말에 따라 (투자위와 전문위 중) 어떤 위원회를 활용하는 게 합병 가능한 건지 검토했다고 했는데, 보고받거나 알지 못했나?”
“네. 제가 하라고 한 적이 없다.”
“백 사무관과 조 국장은 증인이 ‘100% 슈어(sure)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는데.”
“그렇게 말한 기억 없다.”
“증인의 판결문에는 왜 삼성 합병에 찬성하라는 지시를 했는지 설명이 없다. 합병에 개인 이해관계 없나?”(유영하 변호사)
“네.”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받은 적도, 대통령에게 보고한 적도 없죠?”
“네.”
“삼성으로부터 합병 관련 논의를 부탁받은 적 있나?”(최순실씨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
“없다.”
문 전 장관의 주장을 모으면, 자신은 삼성 합병에 관심도 없었고 청와대의 지시나 삼성의 부탁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조의연)는 지난 6월8일 문 전 장관이 “국민연금기금 보유 주식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하여 기금운용본부가 개별 합병 안건에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며 “국민연금공단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하였고, 국민연금기금에 주주 가치의 훼손이라는 손해를 초래하였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과 불법성이 무겁다”고 지적했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문 전 장관은 항소이유서에서 “대통령이 당시 안종범 경제수석과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에 합병을 지시했다”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문 전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국민연금공단의 삼성 합병 찬성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필요했고 문 전 장관은 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유 변호사의 말처럼 ‘왜?’가 빠져 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필요했던 삼성 합병, 그 삼성 합병과 아무런 개인적 연결고리가 없는 문 전 장관의 적극적인 찬성 압력. 그 사이의 진실은 박 전 대통령의 1심 판결문에서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이르면 11월에 선고
지난 4월17일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은 다섯달째 진행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구속된 피고인의 1심 구속 기간은 기소된 날부터 6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의 1심 구속 기간은 10월16일 밤 12시 끝난다. 일반적으로 검찰의 구형과 변호인·피고인의 최종변론이 이어지는 재판의 마지막 단계인 ‘결심’을 하고 2주 있다가 선고하기 때문에, 10월16일 선고하려면 추석 연휴 전에는 결심을 열어야 한다. 하지만 7일 박 전 대통령의 재판부는 10월10일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 등 5명의 증인신문을 열기로 했다. 이날 김 부장판사는 “케이티(KT)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관련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11월26일 구속 만기라 그 전에 선고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공범’ 중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1심 구속 기간이 11월16일로 가장 빨리 끝난다. 차 전 단장 등의 구속 기간까지 고려하면 박 전 대통령의 선고는 이르면 11월로 예상된다. 실제 재판부는 차 전 단장과 송 전 원장 등의 선고 예정일 하루 전인 5월10일 “차은택 피고인과 박근혜 피고인이 공범 관계로 기소돼 공소사실이 똑같은 이상 차은택 피고인에 대해서만 먼저 선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똑같은 하나의 결론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리가 마쳐질 때까지 선고를 미뤘다. 다만 재판부는 1심 구속 기간이 끝날 박 전 대통령을 석방할지,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할지 결정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추가 기소된 혐의는 없지만, 에스케이(SK)에 뇌물을 요구한 혐의는 구속영장에 포함되지 않아 재판부 직권으로 구속영장 발부가 가능하다. 영장이 다시 한번 발부되면 구속 기간도 6개월 연장돼 내년 4월까지 심리가 가능하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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