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에서 정권 눈치보기-줄서기 부활
참여정부도 검찰의 과거회귀 예상 못 해"
[신년 인터뷰] '정치검찰' 비판하며 사표 낸 백혜련 전 대구지검 수석검사
12.01.02 21:46 ㅣ최종 업데이트 12.01.02 21:46 구영식 (ysku) / 황방열 (hby) / 유성호 (hoyah35)
▲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흔들리는 점을 비판하며 검찰을 떠난 백혜련 전 대구지검 수석검사가 지난 2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최근 자신이 개원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주는 것은 정권의 의지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 유성호
검찰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다시 접었다. 주위에서 간곡하게 말려 마음이 약해졌고, 2년 뒤면 부장검사로 승진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 유혹'도 물리치기 힘들었다. 하지만 검찰이 지난해 11월 "SNS상에서 한미FTA와 관련된 유언비어나 괴담을 유포한 사람을 구속수사하겠다"고 밝히자 다시 사퇴 결심을 굳혔다. "검찰 자체개혁 동력이 완전히 소진됐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후 그는 검찰 내부전산망 '이프로스'에 '이제 떠나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2011년 11월 21일). '정치검찰'이라는 단어가 딱 한 번 등장하는 이 글은 10년 검사생활을 끝내려고 작심한 한 현직 검사가 '정치검찰'을 향해 날린 직격탄이었다.
"현재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비판의 대상이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되는 큰 사건,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이 고도로 요구되는 사건들의 처리에 있어 저희 검찰이 엄정하게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며 제대로 된 사건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란 정의로울 뿐만 아니라 정의롭게 보여져야 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검찰의 모습은 국민들이 볼 때 결코 정의롭게 보여지지도,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고 보여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지난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 당시 평검사들이 발표했던 글을 상기시키며 "그때의 들끊던 평검사들의 열정이 그립고, 그때의 반성과 다짐이 가슴에 사무쳐온다"고 썼다. 그의 가슴에 사무쳤던 당시 평검사들 발표문은 이랬다.
"그동안 검찰이 일부 정치적 사건을 투명하고 엄정하게 처리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는 국민의 질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중략) 저희들은 앞으로 정치적 사건을 포함한 모든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어떠한 압력도 거부하고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것이며 수사과정에서 국민의 인권보장을 더욱 철저히 할 것을 국민들에게 약속드립니다."
"사회적 약자 편에 서겠다는 초심을 잃지 말자 다짐"
정치검찰을 비판하며 사표를 낸 백혜련(44) 전 대구지검 수석검사. 그는 '운동권 출신 검사'였다. 고려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졸업한 후에는 안산지역에서 노동운동을 벌였다. "일하는 사람이 정당한 대접을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충만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1989년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한국 운동그룹의 고민이 깊어지면서 백 전 검사의 '인생 전환'도 불가피해졌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혼과 동시에 '사법고시'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1980년대 운동권출신에게 '금기'와 같았던 '고시'를 선택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29일 수원에서 만난 그는 당시의 선택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사회변혁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세 가지 길을 선택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방송 등 언론계에 진출하거나 고시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대학교수를 하려면 연줄이 있어야 했고, 언론계 진출에는 배경과 얼굴이 많이 작용해 저는 불가능했다. 그런 것들에 비해 고시는 자기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것이었다."
백 전 검사는 "(운동 외에) 지식인이 할 수 있는 다른 영역을 생각하게 됐다"며 "나는 고시를 공부해서 법조계에서 역할을 찾아보겠다고 한 것이고, (안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만난) 남편은 시민운동 분야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특히 '검사'를 선택한 이유는 이랬다.
"검사 시보생활을 해보니 검사 직역이 저한테 잘 맞았다. 학생운동을 할 때 (추구한 가치의) 기본골격이 사회정의였고, 검사도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직역이어서 검사가 잘 맞았다. 또 판사는 정적인 반면에 검사는 동적이다. 그런 점이 제 성향에도 맞았다."
그런데 검사 임용 등 인사를 관장하는 법무부 검찰1과에서 백 전 검사의 지도검사에게 '문의'를 해왔다. "운동권 출신인데 검사로 임용되면 문제가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지도검사였던 이경재 현 대구지검장은 "전혀 문제 없다, 검사생활을 잘 할 것"이라고 적극 추천해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 2000년 검사에 임용된 백 전 검사는 첫 근무지인 수원지검에 부임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다는 초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런 초심을 잃지 않았기에 삼성물산 재개발비리나 국세청 비리 사건 등을 파헤칠 수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 검사 시절 <인간극장-8부의 검사들>에 유일한 여검사로 출연했고, TV드라마 <아현동 마님>에 등장하는 여검사 '백시향'의 실제모델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그는 "제가 그 드라마의 실제모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겸손해했다.
"MB정부에서 줄서기-정권 눈치보기 부활했다"
▲ 한 백혜련 전 대구지검 수석검사가 2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최근 자신이 개원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무실 한켠에 백 변호사가 이경재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부터 수여 받은 재직 기념패가 놓여져 있다. ⓒ 유성호
백 전 검사는 첫 부임지인 수원지검과 대구지검 김천지청, 수원지검 안산지청, 서울중앙지검을 거친 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즈음에 미국 연수를 떠났다. 그리고 2009년 초 1년 만에 서울중앙지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검찰 분위기는 참여정부 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참여정부가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한 것만은 확실하다. 참여정부 때는 그렇게 검찰의 독립성이 보장됐는지 몰랐다.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까 검찰이 정권 눈치보는 분위기가 많았다. 특히 평검사들부터 부장검사 이상까지 줄서기 문화가 부활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동기인 검사가 검찰 내부게시판에 노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한다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그런데 부장이 그 글을 내리라고 했다. 그만큼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는 분위기였다."
백 전 검사는 "(그에 비해) 참여정부에서는 검찰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연결을 끊는 등 검찰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최대한 통제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그런 부분을 확 끊겠다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예전의 줄서기 문화가 많이 부활했다"고 지적했다.
백 전 검사는 앞서 언급한 '사퇴의 글'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절차상 공정성의 문제"를 검찰불신의 이유 중 하나로 제시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명숙 전 총리 검찰수사를 염두에 둔 것이다.
"(두 사건에서) 실체적 진실은 별론으로 하고 개인의 사생활이 무차별적으로 폭로됐다. 그것이 결국 노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다. 그런 점에서 검찰수사에 광징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 대통령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일반 형사사건과 다르기 때문에 그런 점을 좀더 엄격하게 판단했어야 했다. 노 대통령과 그의 소환조사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생각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 그런데 검찰의 책임뿐만 아니라 언론도 그 책임을 반분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독립성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것이 백 전 검사의 일관된 문제의식이다. 그는 "입장이 갈리는 여러 가지 사건에서 검찰의 입장은 일관됐다"며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많은 사건들이 한방향으로 치우쳤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한방향으로 치우"친 사건들 중에 "검찰역사상 가장 오욕적인 사건"으로 'PD수첩 수사'를 들었다.
"PD수첩 사건은 기본적으로 기소되어 무죄판결이 나서가 아니라 원수사팀이 법리적으로 기소할 수 없다고 판단 내렸다. 그런데 원수사팀을 교체해 다시 수사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오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권이 원하는 것을 검찰이 수용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MB정부에서 이런 정치검찰 행태가 활개를 치는 것은 '참여정부의 업보'라는 지적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검찰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아 생긴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백 전 검사는 "참여정부에서도 검찰이 이렇게 다시 과거로 회귀할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검찰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 있다는 측면을 예측하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백 전 검사는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지적처럼 기본적으로 검찰은 수사기관이자 행정기관이어서 정치성이나 정권과의 연관성을 완전히 탈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주는 데서 정권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디도스 공격 수사로 국민여론 차버렸다"
백 전 검사가 "검찰 역사상 가장 오욕적인 수사"라고 지적했던 PD수첩 수사의 경우 수사를 지휘했던 임수빈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이 지난 2009년 1월 결국 사표를 냈다. 그로부터 1년 10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백 전 검사도 10년 검사생활을 스스로 끝냈다. 하지만 이렇게 '행동하는 검사'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 검찰조직의 현실이다.
"많은 검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표출하고 행동에 옮길 사람은 극소수다. 하지만 현재의 검찰조직 문화에서 자신의 사직을 결심하지 않고 그렇게 행동하기 힘들다. 인사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내년 2월에 인사가 있는데 제가 이런 글을 쓰면 인사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제 경우 수도권으로 올라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먼 지방으로 발령내버릴 수 있지 않겠나. 그런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백 전 검사는 "인사가 검사들을 통제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라고 일갈하면서 "(주요보직이) 검사들로 이루어져 있는 법무부를 문민화하고, 검찰인사위를 독립적 기구로 구성하고 외부인사를 참여시켜 투명한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줄곧 제기해온 대검 중수부 폐지,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에도 찬성의견을 나타냈다. 다만 검경 수사권 조정에는 굉장히 신중한 견해를 피력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해본 바로는 경찰이 더 청탁수사를 많이 한다. 게다가 경찰은 굉장히 큰 조직이다. 국민들은 경찰 권력이 검찰 권력보다 훨씬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경찰은 엄청난 인원을 가지고 있고, 정보력에서도 검찰을 뛰어넘는다. 그렇게 큰 힘을 가진 경찰이 통제되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폐해를 생각해야 한다. 검찰이 통제되지 않았을 때의 폐해만큼 경찰이 통제되지 않았을 때의 폐해도 크다."
백 전 검사는 "경찰은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국민 여론을 얻었지만 이번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수사로 인해 (국민여론을) 차버린 측면이 있다"며 "검찰은 경찰에 실질적 권한은 주되 마지막 경찰 통제장치로써 (형사소송법상) 수사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어 백 전 검사는 "그동안 검찰이 상대적으로 깨끗한 조직이라며 검사 비리를 안일하게 처리해온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상대적으로 깨끗한 조직이라는 의식에서 탈피해야 하고 검사들이 부패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제식구 감싸주기가 있었다. 특수수사를 많이 했던 한 선배는 제일 하고 싶지 않는 수사가 검사를 조사하는 수사라고 했다. 무슨 사건 때문에 검사를 조사했는데 '대통령을 조사할망정 검사가 검사를 조사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럴 정도로 검사가 검사를 수사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압박이 간다. 그래서 검사비리를 가혹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폰서 검사나 샤넬-벤츠 검사처럼) 문제가 있는 검사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감싸주기보다는 초반부터 색출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될 줄 몰랐다"
▲ 정치검찰을 비판하며 사표를 낸 백혜련 전 대구지검 수석검사. ⓒ 유성호
백 전 검사가 사표를 낸 이후 그의 정치권 진출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5일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지금 제가 정치에 몸을 담는다면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배신하고 왜곡하는 일"이라며 부인한 바 있다.
백 전 검사는 "검찰 자체 개혁 동력이 없고 외부에 의해서 개혁되어야 한다면 결국 사회적 힘, 정치적 힘에 의해서 개혁될 수밖에 없다"며 "그런 점에서 저도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정치는 철저히 국민에게 봉사하고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며 "주변에서 나서야 한다는 얘기도 하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지금은 변혁의 시기다. 이명박 정부가 일군 가장 큰 공로가 있다면 정치에 무관심한 많은 국민들을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도 검사생활을 했던 10년간 비정치적이었다. 그런 제가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될지 몰랐다. 검찰의 현실, 민주주의의 퇴보 등을 보면서 젊은 날 가졌던 변혁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
백 전 검사는 "앞으로 변호사로서 여성과 인권분야에 매진할 생각"이라며 "그와 함께 사회적 화두로 대두한 검찰개혁과 관련해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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