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4448.html?_fr=mt1

박근혜의 ‘조작된 30분’, 그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등록 :2017-10-13 18:07 수정 :2017-10-13 21:37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상황 보고를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상황 보고를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또 잠을 설쳤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에게 상황을 보고한 최초 시점을 30분 늦도록 조작했다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표를 지켜본 뒤, 책장 한쪽에 밀어두었던 세월호 기록과 다시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당시 세월호 참사를 집중 취재했던 정은주 기자입니다.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서를 오전 9시30분에 보고한 것으로 돼 있는데, 6개월 뒤인 10월23일 오전 10시로 바뀌었다”는 임 비서실장의 발표는 ‘세월호 골든타임을 누가 저버린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줍니다. 그들이 조작한 30분은 304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2014년 7월 가천대 초고층방재융합연구소의 세월호 탈출 시뮬레이션을 보면, 마지막 탈출 가능 시간은 5층 갑판이 침수된 ‘10시6분44초’였고, 조타실에 모여 있던 선원들이 도주했던 9시45분에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탑승객 476명은 6분17초 만에 배를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9시30분부터 10시까지는 1분1초가 생사를 가르는 시간이었습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 세월호는 급변침하면서 왼쪽으로 30도 기울어집니다. 8시52분 단원고 최덕하 학생은 119로 구조요청을 했고, 그 전화는 목포해경 상황실로 연결됐습니다. 목포해경은 8시58분까지 통화하며 ‘침몰’ ‘인천항 8시 출항’ ‘세월호’ ‘여객선’이라는 정보를 얻었고, 해경 전체에 이를 전달했습니다. <와이티엔>(YTN) 기자가 경찰 간부한테서 “진도에서 500명이 탄 여객선이 조난당해서 침몰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것이 9시13분입니다.

그러나 박근혜의 청와대는 9시19분 <와이티엔> 첫 보도를 보고 세월호 사고를 인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해경 본청에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9시24분에 내부 문자로 알렸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가 이루어진 것은 36분이나 늦은 오전 10시라고 강조했습니다. “대통령께 그냥 ‘사고가 났습니다’라고 보고만 드려서는 안 되고 그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은 것이 9시50분입니다. 그래서 10시에 대통령께 첫 보고를 올렸습니다.”(2014년 7월 김규현 국가안보실 1차장 국회 발언)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사고 발생 사실을 몰랐다는 점 때문에 비록 청와대는 ‘늑장 보고’ ‘부실 대응’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골든타임’을 놓친 책임에서 한 발 비켜갔습니다. 올해 3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 “(세월호 사건에서 대통령이) 성실 의무(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했지만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낸 이유입니다.

그러나 12일 임 비서실장의 발표대로 첫 보고서가 박 전 대통령에게 이미 9시30분에 전달됐다면, 304명의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골든타임’에 박 전 대통령이 그 직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실제로 법원은 최초 보고 시점이 언제인지로 구조 실패의 책임 범위를 결정했습니다. 초동대응 실패의 책임을 지고 유일하게 형사처벌(업무상 과실치사죄·징역 3년)을 받은 김경일 123정장은 1심에서 승객 304명 가운데 56명의 희생에만 책임을 짊어졌습니다. 김 정장의 첫 현장 보고가 오전 9시44분이라서 이때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56명만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1심은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 김 정장이 9시36분에 이미 현장 보고를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고, 결국 2심은 123정이 도착하기 전 세월호에서 추락해 사망한 1명을 제외한 피해자 전원(303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를 인정했습니다. 최초 보고 시점이 8분 빨라졌기에 ‘생존할 수 있는 인원’이 56명에서 303명으로 늘어난 것입니다.

골든타임 때 1분1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장 잘 알고 있던 이들은 박 전 대통령과 그 시절 청와대였을지 모릅니다. 참사 직후부터 대통령이 사고를 최초로 알게 된 시점을 “오전 10시”라고 줄곧 주장했고, 그 주장에 맞춰 참사 6개월이 지난 뒤에 공문서까지 수정했으니까요. 그 수정 보고서는 헌재 탄핵심판의 주요 증거로도 제출됐습니다.

세월호 골든타임을 저버린 진짜 책임자를 찾아낼 수 있는 희망의 불씨가 켜져 다행이지만, 너무 늦어버린 게 아닌가 걱정이 밀려옵니다.

정은주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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