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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규제모델, 방통위
[한겨레] 등록 : 20120103 20:02
   
≫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현 정부 출범과 함께 2008년 3월에 설립한 방송통신위원회가 벌써 4년이 다 돼간다. 방송통신위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 현상을 맞아 이를 관리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중론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방통위는 그동안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못했으며 디지털 시대에 맞는 산업정책을 선도하지도 못했다. 방송정책으로 “주류 보수 신문사들에 종합편성채널을 허가하고 지원한 것이 전부”라는 비판을 듣는다. 통신정책으로는 ‘아이티(IT)산업 경쟁력 지수’(EIU 측정)가 2007년 세계 3위에서 2011년 19위로 급락한 데서 보듯 한국이 아이티 강국의 지위를 놓치게 하였다.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로서의 방통위 방식은 두 가지 이유로 융합현상을 다루는 데 바람직하지 못하다. 첫째로, 이 모델은 ‘방송 독립성’과 충돌한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방통위는 다른 정부 부처와 함께 당대 정권의 정책을 일관되게 펼쳐야 한다. 통신영역은 특히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중요하다. 반면에 방송영역은 정부의 주도성이 위험하다. 이 때문에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당시 방송 정책 관련 업무를 정부기구였던 공보처에서 떼어내 방송위원회로 옮긴 것이었다. 현 방통위는 ‘합의제’라고는 하지만 여야 추천 위원의 구도가 3 대 2로, 정치적 중립성이 문제가 되는 어떠한 정책도 다수결을 통해 현 정권에 유리하게 추진할 수 있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을 만드는 데 생을 걸다시피 노력”했다는 인물이 위원장이 되었다. 방통위원장은 옛 정보통신부 장관과 옛 공보처 장관의 지위를 함께 지닌 강력한 자리가 됐지만 야당 추천 상임위원 2명은 정부조직 내의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로 전락하였다.

둘째로, 통합 부처는 방송과 통신의 특성 차이를 무시하게 된다. 규제 대상들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려다 보니 양쪽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기준을 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통신 정책은 산업적 특성이 강하므로 사업자 간의 공정경쟁이 주요 이슈가 된다. ‘공정한 가격’과 ‘소비자 접근’이 물리적 차원의 통신 패러다임 키워드다. 반면에 방송 정책은 공공적 특성이 강하므로 시민적 가치의 확대가 중요하다. ‘공정성’과 ‘프로그램 품질’이 정신적 차원의 방송 패러다임 키워드다. 결과적으로는 공무원 조직인 정보통신부가 민간 조직인 방송위원회를 흡수한 셈이 되어 모든 미디어 현상에 통신 규제 방식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윤석민 교수(서울대)도 방통위의 조직 문화를 분석한 논문에서 “방송위원회로 대표되는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의 소멸” 현상을 보고한다. 한편으로는, 통신 쪽에서도 경제원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고 불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 방송통신 정책, 전송수단 규제, 주파수 할당, 내용 규제 모두를 아우르는 ‘슈퍼 규제기구’를 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영국도 방송정책은 문화부, 방송과 통신의 통합 규제는 오프콤(Ofcom)이 담당하지만 공영방송 <비비시>(BBC)의 규제만은 ‘비비시 트러스트’(BBC Trust)가 별도로 담당한다. 필자의 경우, 방송의 공공성을 담보할 기구로 ‘공공방송위원회’를 설치하자고 주장한다. 통신 및 융합 미디어 담당 기구와는 별도로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교육방송>(EBS), 민영 지상파 방송 등 공공적 속성이 강한 방송만을 담당하는 규제기구를 두자는 것이다. 4년간의 실패를 잘 보았으니 이제 새로운 방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 되었다.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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