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장자연 사건, 제2촛불 막으려 국정원 개입 의혹”
“‘신영철 대법관 사법파동’ 물타기 의혹…2차 보도할 것”
민일성 기자 | newsface21@gmail.com 
12.01.05 19:42 | 최종 수정시간 12.01.05 20:06     
 
이상호 MBC 기자는 5일 2009년 당시 정국을 뒤흔들었던 ‘신영철 대법관’ 파동을 막으려고 국정원이 개입해 ‘장자연 문건’ 사건을 터뜨린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영철 대법관’ 사건은 ‘제2의 촛불 정국’을 우려할 만큼 ‘핵폭탄급’ 사건이었다며 이 기자는 그런데 ‘장자연 보도’이후 ‘신영철 보도’가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이날 방송된 MBC의 인터넷 방송 ‘손바닥TV’에서 날짜가 중요하다며 “2009년 3월 7일 분당에서 장자연씨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3월 9일 단순 자살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묻힐 뻔했는데 2009년 3월 13일 KBS가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보도했다”며 이 기자는 “유장호씨가 사무실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서 타다만 문건을 입수해서 KBS에 건네줬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2009년 3월 18일 KBS가 보도한 뒤에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며 “관심이 고조되자 3월 18일 유장호씨는 문건과 관련해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대단히 중요한 말을 했다, 유씨는‘장자연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다. 뭔가 있다. 부당함에 맞서서 싸우려다 죽음으로 말한 것이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되짚었다. 

“이에 또다시 여론이 어마어마하게 증폭된다”며 이 기자는 “두 날짜를 한번 기억해달라, 3월 13일, 18일, 만 5일만이다”고 날짜를 강조했다. 

이 기자는 이후 조선일보와 고위관계자 등 의혹이 제기됐지만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됐고 “SBS가 큰 마음 먹고 진실을 밝히려다가 한국 언론 사상 최대 오보 사건을 기록하고 말았다”고 이후 상황을 지적했다. 

이 기자는 “5일간 무슨 일이 있었나 주목하게 됐고 유장호씨의 당시 직원이었던 분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며 지난 2일 유씨의 직원을 직접 인터뷰한 장면을 보여줬다. 

제보자는 “유장호씨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하루에 한번씩 병원에 갔는데 국정원 직원이 항상 있었다”며 “처음에 인사를 해서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흰색 명함지에 한문으로 이름 세자만 있는 명함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국정원에서 많이 도와준다고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기자는 “이 제보자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분당경찰서의 당시 사건 조서를 입수했다”며 “사건조서에는 국정원 직원이 개입한 사실을 경찰이 인지하고 있었다”고 조서 기록을 공개했다. 

조서에 따르면 경찰은 유장호씨에게 ‘3월 14일 서울대 병원 입원 당시 방문한 모 국가기관 담당자와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고 물었고 유씨는 ‘1주일전부터 알게 됐다. 핸드폰으로 연락이 와서 만나자고 해서 만난 것뿐이다’고 답했다. 

이 기자는 “3월 14일부터 1주일 전이라며 유장호씨가 입원하기 전인 3월 7일이다, 이미 국정원 직원과 7일부터 만나고 있었다”며 “바로 장자연씨가 사망한 날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 보도가 되기도 전인데 국정원이 어떻게 알고 왔을까”라며 “유장호씨를 전화 인터뷰했다. 국정원 직원을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고 또 다른 증거를 제시했다. 

이 기자는 또 앞선 제보자 외에 제3의 제보자로부터 받은 자료도 있다며 세 가지의 증거물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 기자는 “국정원은 간첩을 잡거나 테러를 막는 일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렇게 장자연씨 사건에 관여한 내용을 알고도 경찰은 조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행된 것이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 기자는 “국정원이 공문서와 진술을 통해 개입한 것이 사실로 확인되는데 왜 개입했을까, 한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며 ‘신영철 대법관 파동 무마용’ 의혹을 제기했다. 

이 기자는 “3월 5일은 바로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의혹이 발생했다”며 “제2의 촛불 정국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MB정권의 절체절명 위기가 시작됐다”고 당시 ‘사법 파동’ 정국을 짚었다.

그는 “5월 18일 판사들이 ‘집단 항명’ 조짐까지 보이게 됐다, 촛불 이후에 MB 정부가 계속 갈수 있나, 중도 포기하느냐의 절체절명 시기였다”며 “그런데 장자연씨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신영철 대법관의 보도는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현재까지 국정원은 대변인 공식 발표를 통해 자신은 개입한 적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국정원이 왜 개입했나에 대해 밝히던가, 또는 국정원 직원이 근무하는 곳이 또 있다, 청와대다”며 “제대로 밝힐 수 있는 시간이 1주일이 더 있다, 충분히 밝히지 않는다면 2차 보도로 보다 진전된 내용을 밝힐 계획이다”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신영철 대법관 파동’은 2009년 2월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 중앙지법원장을 맡고 있을 당시 이메일과 전화로 이른바 ‘촛불사건 재판’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던 사건이다. 신 대법관은 보수 성향 판사들에게 사건 몰아주기,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된 야간옥외집회 금지 위반사건의 조속한 심리 진행, 구속 피고인 보석 불허 종용 등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재판에 개입하고 압력을 넣은 사실 등 군사정권에나 있을 법한 재판 개입 행적이 줄줄이 드러났다. 

이에 소장 판사들이 강력 반발 ‘사법파동’ 수준으로 발전했다. 전국 17개 법원의 법관들은 회의를 통해 “재판독립을 침해한 신 대법관이 더 이상 대법관직을 수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사퇴를 요구했다. 이후 법조계는 신 대법관의 처신과 거취를 놓고 ‘사법파동’이라 할 만큼 심각한 내홍을 겪었지만 신 대법관은 버티기로 일관했으며 지금도 대법관 자리에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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