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에버랜드 25살 사육사는 왜 갑자기 죽었을까?
[단독] 산재여부 공방…故人의 미니홈피엔 "동물사 철장에 다쳐"
김윤나영 기자  기사입력 2012-01-13 오전 10:39:49                    

삼성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1년 가까이 일했던 사육사가 지난 6일 25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사인은 균에 감염돼 생긴 패혈증. 유족들은 "고인(故人)이 살이 10kg이나 빠질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고, 사망 직전에 동물원 우리 철창에 찢겨 얼굴과 다리에 흉터가 났었다"며 그의 죽음이 산재라고 주장했다. 고인이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에 남긴 글이 근거다. 패혈증은 상처로 인해 감염되거나 과로로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감염될 수 있다. 반면 에버랜드 측은 고인이 "동료와 회사 밖에서 술을 마시다가 다쳤다"고 맞섰다. 유족들은 "회사가 거짓말을 했다"며 반발했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12일 밝혔다. 사건의 전말을 소개한다. <편집자> 

7일 경기도 수원의 어느 장례식장. 영정사진에는 갈래머리를 한 앳된 여성이 삼성 에버랜드 사육사 근무복을 입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스물다섯 살. 생을 마감하기에는 지나치게 젊은 나이의 사진 속 김유리(가명) 씨는 장례식의 침침한 분위기와 어색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어색한 광경은 또 있었다. 삼성 에버랜드가 보낸 화환이 늘어선 복도에는 삼성 직원으로 추정되는 조문객들이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기자가 조문을 온 박원우 삼성노동조합 위원장에게 다가가자 인파는 홍해가 갈라지듯 양끝으로 갈라졌다. 갑자기 수십 명의 눈이 기자에게 쏠렸고, 누군가가 휴대전화기를 꺼내 기자의 사진을 채증해갔다. 삼성 인사팀 관리자였다.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장례식장 분위기에서 김유리 씨의 큰아버지 김영철(가명) 씨가 삼성노조 조합원들과 마주했다. 김 씨의 주위에 삼성 인사팀 관리자 두세 명이 줄줄이 따라붙었다. 한참 승강이가 벌어진 끝에 관리자들은 자리를 떠났지만, 여전히 문 밖에서 초조한 듯 서성였다. 김 씨가 말문을 열었다. "산재로 해야죠."

▲ 고(故) 김유리 씨(유족의 뜻에 따라 모자이크 처리를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정규직 발탁' 꿈꾸며 동물원 사육사 됐지만…

김유리 씨는 지난해 2월부터 삼성 에버랜드에서 동물원 사육사로 일했다. 유난히 동물을 좋아하던 그는 어릴 때부터 사육사가 꿈이었다.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정규직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김 씨는 졸업 후 바로 장기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면서 1년 이상 근속자에게 주어지는 '정규직 발탁'의 꿈을 키웠다.

근무조건은 열악했다. 유족들은 김 씨가 "동물의 먹이를 칼질하다 베어서 손이 성할 날이 없었고, 비 오는 날에는 우비도 없이 비를 맞으며 일했다"고 말했다. 김 씨의 작업복과 신발에는 항상 동물의 배설물이 묻어있었다. 휴일도 짰다. 주말에 손님이 많은 동물원의 특성상 일주일에 한 번, 평일에만 쉴 수 있었다. 광주광역시에서 경기도 용인으로 올라와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김 씨는 지난 1년간 단 두 번만 집에 갈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생활 1년이 다 돼가던 무렵인 12월 14일. 그는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상사에게 조퇴 허가를 요청했다. 상사는 그에게 화를 내며 "가려면 가라"고 했다. 그는 작업복을 그대로 입은 상태로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고, 간단한 조치만 받고 허겁지겁 기숙사로 돌아왔다. 15일 새벽 쓰러진 그는 결국 구급차에 실려 갔다. 가까운 용인 서울병원에서는 "상태가 심각하다"며 고개를 저었고, 그는 곧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다.

16일 오전, 김 씨의 얼굴과 몸 전체에 새까맣게 멍이 올라왔다. 이후 김 씨는 인공호흡기를 꽂고 열흘 넘게 수면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는 간혹 정신이 들 때마다 "회사에 가야한다"고 말하고 다시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엄마, 무단결근은 안 돼. 핸드폰 갖고 와 제발." 부모는 계속 울었다. 결국 김 씨는 지난 6일 의식불명인 채로 숨을 거뒀다.

고인 얼굴에 난 흉터, "둘이 술 마시다 넘어졌다→ 셋이 밥 먹다 넘어졌다" 

▲ 고인의 얼굴에 난 흉터. ⓒ김유석

사망하기 전 김유리 씨의 얼굴과 다리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었다. 김 씨의 사인은 패혈증. 미생물에 감염돼 전신에 심각한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주치의는 "일반적으로 패혈증은 상처로 인해서 감염될 수 있다"고 유족에게 말했다. 주치의는 소견서 재해경위란에 김 씨의 상처에 대해 기록했다.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 가족들은 김 씨가 동물원에서 일하다가 넘어져서 다친 줄로만 알았다. 문병 온 회사 관리자의 말은 달랐다. 김 씨가 일하다가 작업 현장에서 다친 게 아니라, "동료와 밖에서 술을 먹고 넘어져서 다쳤다"는 것. 김 씨의 어머니 양미희(가명) 씨는 "회사 말이 자주 바뀌어서 회사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동료랑 둘이 술을 마시다가 넘어졌다고 했다가, 갑자기 세 명으로 불어났어요. 셋이 밥 먹다가 식당에서 넘어졌다고 말이 바뀌었어요. 다른 사람과 통화하니까 술은 조금 먹고 셋이 밥 먹다가 넘어졌다고 했습니다." 

유족 "동물원 철창에 찢겨 다친 사실, 에버랜드가 고의로 은폐했다"

새로운 사실은 장례 첫날인 7일, 유족들이 장례식을 준비하다가 뒤늦게 김 씨의 스마트폰을 확인하면서 발견됐다. 김 씨의 오빠 김유석(가명) 씨는 스마트폰 자동 로그인 기능을 이용해 동생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했다. 동생의 지인들에게 장례식 일정을 공지하기 위해서였다.

▲ "동물사 철장문에 당했다"는 댓글. 김 씨가 '투칸'이라는 새의 우리 철창에서 다쳤음을 알 수 있다. ⓒ김유석

그런데 고인이 쓰러지기 바로 이틀 전인 지난달 12일, 김유리 씨는 싸이월드에 '일촌공개'로 자신의 얼굴에 난 상처를 찍은 사진을 올려놨다. 동네 친구가 "어쩌다 다쳤느냐"고 묻자 김 씨는 "동물사 철장문에 당했네"라는 댓글을 달았다. 김 씨와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주고받았다는 동네 친구는 "당시 김 씨가 업무 중 동물원 우리에 들어가다가 문에 긁혀 다쳤다고 밝혔다"고 증언했다.

유족들은 뒤늦게 분노했다. 김 씨의 오빠 김유석 씨는 "우리는 관리자의 말만 듣고 (동생이) 동물원 밖에서 넘어져서 다친 줄 알았는데, 싸이월드에 올라온 글을 보니 거짓이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동물원에 상주하면서 궂은 일을 도맡는 사육사의 업무 특성상, 김 씨의 병이 작업환경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뒤늦게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삼성 관리자가 조문객 신원 캐물어…"여느 장례식과 달라" 

김 씨의 죽음이 산재인가의 여부를 떠나, 회사의 감시하고 통제하는 듯한 태도는 유족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김 씨가 입원한 다음날인 12월 16일부터 사망하기 전인 1월 초까지 삼성 에버랜드 과장은 하루에 두 번씩 면회시간마다 병실을 들렀다. 진단서의 사진을 휴대전화로 찍어갔음은 물론이고, 김 씨를 담당하는 의사, 간호사, 레지던트의 이름까지 적어갔다. 관리자 파견에 대해 에버랜드 관계자는 "직원이 이렇게 크게 다친 전례가 없어서 걱정되는 마음에 그런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유석 씨의 생각은 다르다.

"웃긴 건 싸이월드 게시글을 보여줬더니 에버랜드 과장이 그 사진을 또 휴대전화로 찍어간 거예요. 그리고 한마디 하더군요. '이 상처는 (동물원 우리 철창에) 찍힌 상처가 아니라 바닥에 긁힌 상처네요'라고 변명하듯 말했어요. 그런데 의사가 아닌 이상, 사진 속 상처만 보고 철창에 찍힌 것인지 바닥에 긁힌 것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회사가 자꾸 뭔가를 숨기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당시 작업 환경을 증언해 줄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이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된다. 양미희 씨는 "동료들의 연락이 끊겨서 증인을 구하기 막막하다"고 강조했다. 양 씨는 "(딸과 함께 밥을 먹었다던) 동료가 병문안에 오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서 오라는 날짜까지 받아 줬는데 결국 안 왔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고인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의 만남이 잘 이뤄지지 않는 배경에 회사 측의 압력이 있다는 게 유족들의 의심이다.

하지만 에버랜드 측은 "회사가 병문안을 막은 적이 없고, 오히려 유족이 병문안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유석 씨는 "중환자실 면회시간은 오전 10시~10시20분과 오후 7시40분~8시로 하루 두 차례여서 가족이 면회할 시간도 빠듯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회사 관리자의 면회를 거부한 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어머님이 불러달라고 말했던 직원들(동료)은 오지 않았다"며 "과장을 안 통하고 개인적으로 불렀던 동료도 오지 않았다"며 답답해 했다. 요컨대 유족들이 면회를 원치 않았던 것은 회사 관리자들이다. 관리자가 아닌, 고인과 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면회는 거부한 적이 없다는 게 유족들의 입장이다.

급기야 지난 7일에는 장례식장에 인사팀 관리자들이 여럿 등장했다. 박원우 삼성노조 위원장은 "이전에도 교통사고 등 개인적인 이유로 아르바이트생이 죽은 적이 종종 있었지만, 장례식장에 이렇게까지 많은 삼성직원이 온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유족이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면 인사팀 관리자가 나타나 상대방의 신원을 캐물었다"면서 "인사팀이 순수하게 조문 온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는 잃을 것 없다…산재 신청할 것"

유족들은 김 씨가 "일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질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고, 지난달 초부터 계속되는 감기 증세를 겪었다"고 말했다. 노무법인 현장의 문은영 노무사는 12일 유족과의 면담에서 "김 씨는 체중이 비정상적으로 줄어들 정도로 과중하게 일했고, 사망하기 직전에 동물원 철창에 찢겨 상처가 났던 만큼 (김 씨의 죽음이) 산재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처음 패혈증에 걸린 원인은 아직 확실치 않다. 상처를 통해서 균에 감염됐을 수도 있고, 일하면서 면역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 대해 공유정옥 산업의학 전문의는 "그 상처가 일터에서 생겼다면 해당 질병의 업무관련성(산재일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싸이월드 댓글로 미루어보면 김 씨의 상처가 일하다가 생긴 것은 유력해 보인다.

감염 경로가 상처가 아닌 경우 상황은 좀더 복잡해진다. 공유정옥 전문의는 "쓰러지기 전에 다른 감염이 있었거나, 면역력이 약해졌거나, 감기도 낫지 못할 만큼 일을 무리하게 했을 수도 있다"며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재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업무관련성 여부를 단정하긴 무리라는 게 그의 최종 결론이다. 단, 그는 "젊은 사람이 패혈증에 걸려 그렇게 급작스럽게 사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덧붙였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김 씨의 상처와 관련해 "(김 씨가) 근무 중에 넘어졌다면 내용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데, 밖에서 일어난 일이라 정확하게 원인을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싸이월드 댓글 등을 근거로 근무 중에 다쳤다는 반론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김 씨의 회사 밖 친구가 "(김 씨가) 근무 중 다쳤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김 씨로부터 받았다는 증언도 에버랜드 측은 무시하고 있다.

대신, 에버랜드 관계자는 "알아보니 12월 9일 동료 두 명과 밖에서 저녁 먹고 술 먹고 2차 가서 넘어져서 다쳤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직원끼리 모금 운동을 하는 등 내부적으로 우리도 도와주려고 했는데, (김 씨가) 운 나쁘게 패혈증에 걸려 숨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회사의 책임에 대해 선을 그었다.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인정을 신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울러 "(회사가) 있는 그대로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사실을 조작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습니다. 자식을 잃었는데 얻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돌아설 길도 없고. 그렇게 갑자기 갔으니까 억울한 건 밝혀야 합니다. 아닌 건 밝혀야지요. 우리 딸은 술 먹고 넘어진 게 아닙니다."
 
/김윤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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