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221528001&code=940301
“재판을 미루는, 이런 꼴 보려고 아흔여덟해 산 줄 아나”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입력 : 2018.08.22 15:28:00 수정 : 2018.08.22 21:06:26
ㆍ재판거래 의혹 규탄 기자회견 징용 피해자 이춘식씨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씨가 2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을 규탄하기 위해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13년 지났지만, 대법 판결은 감감…먼저 간 동료들에게 창피
재판거래는 공산국가나 하는 짓…시민단체와 대법에 탄원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씨(98)는 22일 30도가 넘는 폭염에도 노구를 이끌고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 섰다. 일본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을 지연시키려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양승태 대법원이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자리였다.
2012년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한 후 이씨는 2013년 서울고법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은 지금까지도 최종 판결을 미루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이날 아침 일찍 광주에서 올라온 이씨는 마이크를 잡기 전부터 울먹였다. 이씨는 또렷하지 않은 목소리로 “빨리 죽기 전에 (재판을) 해결해주시면 아주 마음이 기쁘겄네. 내일모레라도 내가 죽고 싶은데 이 법원을 보니까 살고 싶네”라고 하다가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1941년 일본 이와테현에 위치한 구일본제철(신일본제철의 전신)의 가마이시 제철소로 강제징용됐다. 화로에 석탄을 넣어 철을 만들고 광산에서 광석채굴을 하는 등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면서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가 목이 메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함께 소송을 낸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신천수씨가 재판 결과를 기다리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실을 기자회견 자리에서 처음 전해 듣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재판을 도와온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는 “이씨가 ‘98세까지 이런 꼴 보려고 살았냐. 먼저 간 동료들한테 내가 살아 있는 게 창피스럽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한 참가자는 이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재판하다가 세월 다 버리신 분들”이라고 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대법원은 언제 결과를 내놓을지 감감무소식이다. 검찰에 따르면, 2013년 12월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만나 강제징용 재판을 연기하고 판결을 뒤집기 위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듬해에는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김기춘 실장과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 등을 만나 재판 진행 방향을 추가 협의했다.
이씨는 ‘대법원이 소송을 강제지연시켰다고 처음 들으셨을 때 마음이 어떠셨냐’는 질문을 받자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씨는 흐릿한 목소리로 20년 전 세상을 떠난 부인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에서 돈이 나오면 마누라랑 잘하려 했는데 (재판 결과를) 못 보고 먼저 떠나 서러워 죽겠다”고 했다. 그는 “공산국가나 그런 짓거리를 하는 것”이라며 “이 일을 빨리 잘 밝혀서 청산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도록 부탁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이씨와 시민사회단체 대리인단 등은 대법원 민원실로 들어가 대법원의 사과를 촉구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씨는 “못된 짓을 한 대법원이 어떤 곳인지 봐야겠다”며 대법원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이씨가 휠체어를 타고 지나간 통로 뒤편에는 ‘공정한 눈으로 밝은 세상을 만드는 대법원’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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