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iskc.d_0010_0010
건안성(建安城)
개주시(蓋州市)에서 동북방으로 7.5km 떨어진 청석령향(靑石嶺鄕) 고려성자촌의 동쪽 석성산(石城山)에 자리잡고 있다. 예로부터 요하 유역에서 요동반도로 들어오거나 대청하(大淸河)를 거쳐 벽류하(碧流河) 연안으로 갈 경우에는 청석령을 통과해야 하였다. 현재 해성(海城)에서 개주를 지나 대련(大連)에 이르는 도로도 이 지역을 지나고 있다. 이러한 교통로의 요해처에 세워진 성이 바로 건안성이다. 현지에서는 ‘고려성자산성(高麗城子山城)’ 혹은 ‘청석관산성(靑石關山城)’이라 불리고 있다.
포곡식 산성으로 성 전체의 둘레는 약 5km에 이른다. 서쪽 골짜기 입구를 제외하면 사방이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다. 골짜기 입구의 남북 양측에는 해발 300m 전후의 노청산(老靑山)과 노경산(老慶山)이 있고, 두 산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가 남북 양쪽에서 타원형을 이루며 산성을 감싼다. 내부에는 평탄한 대지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 요하 유역 고구려 산성 가운데 가장 넓은 편에 속한다.
성 안 중앙에는 금전산(金殿山)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금전산에서는 장대(將臺)로 보이는 건물터와 그 지붕에 올렸던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 금전산의 북서단과 북쪽 산등성이 사이에는 길이 30m 정도의 차단벽이 구축되어 있다. 현재는 성 안의 도로가 차단벽 중앙부를 절단하고 있다. 차단벽을 포함한 성벽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올린 석축, 흙으로 두텁게 쌓아올린 토벽, 수직 절벽을 이용한 천연성벽, 흙과 돌을 섞어 쌓은 토석혼축의 다양한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특히 정문인 서문은 남쪽과 북쪽에서 내려온 성벽이 나란히 교차되도록 축조한 뒤, 그 사이에 문길을 만들고 성벽과 수직방향으로 성문을 낸 Z자형 옹문인데, 남북 양측의 두 산이 서벽을 바깥쪽에서 감싸고 있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남서문과 남문도 같은 형태의 옹문이다. 한편 석축 구간의 안쪽에서는 마도(馬道)를 살펴볼 수 있다.
645년 고·당(高·唐)전쟁에서 건안성은 요하를 건너온 당군의 첫번째 목표가 되었고, 곧이어 남쪽의 비사성(卑沙城)을 떨어뜨리고 북상해온 당 수로군(水路軍)의 공세도 뒤따랐다. 또한 백암성(白巖城) 함락 무렵에는 당 태종이 안시성을 버려두고 건안성을 다음 목표로 삼고자 했을 만큼, 건안성은 고구려 요동방어선의 주축이었다. 한편 건안성 인근에는 산성과 짝을 이뤄 평곽성(平郭城)이 있었는데, 개주시 옛 현성(縣城) 자리에서 나온 평지성터가 그곳으로 알려져 있다. 436년 무렵 북위(北魏)에 맞서 고구려가 영입해 온 북연왕(北燕王)이 머물던 곳으로 유명하다.
건안성의 전경(서→동)
성 안의 차단벽(1999)
건안성 단면도
금정산 위의 건물터 흔적(2000)
서북벽(1999)
차단벽의 축조방식
서벽 남단(1999)
서북벽에서 바라본 성 안 모습. 가운데 장대로 사용된 금전산이 보인다.(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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