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iskc.d_0010_0040


비사성(卑沙城)

 

요녕성(遼寧省) 대련시(大連市) 금주구(金州區) 동쪽 우의향(友誼鄕) 팔리촌(八里村) 인근의 대흑산(大黑山)에 자리잡고 있다. 수·당(隋·唐)이 고구려를 침공하던 무렵 수로군(水路軍)은 산동(山東)반도의 내주(萊州)에서 출발하여, 요동반도를 공격하거나 곧장 평양성(平壤城)을 목표로 삼아 동진해 오곤 했다. 이러한 항로에서 관문(關門)의 역할을 하던 곳이 바로 비사성이었다.


동북 모서리에 있는 해발 663m의 정상부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뻗어내린 두 줄기 능선이 서남쪽에서 만나 골짜기를 감싸고 있다. 성의 둘레는 5km에 이르며, 능선을 따라 석축하였다. 능선이 높고 경사가 급해 오르기 어려워 “(성의) 네 면은 경사가 급하고 오직 서문으로만 오를 수 있다”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이 기록과 대략 일치하고 있다. 현재는 서문을 통해 절벽 위의 장대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도중에 보이는 성벽과 장대 건물은 최근에 새로 쌓은 것이다. 동쪽 구간에는 고구려 당시의 성벽이 남아 있고, 환도성(丸都城)·고검지산성(高儉地山城) 등에서 보이는 돌구멍도 찾아볼 수 있다.


비사성에서는 발해만(渤海灣)과 황해(黃海) 방면 모두를 굽어볼 수 있을 뿐아니라, 험준한 지세로도 둘러싸여 있어, 요동반도 연안로를 이용한 해상교통을 장악하는 데 최적의 요해처였다. 이에 대수당전쟁 기간에는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곤 했는데, 645년 당군의 야간 기습에 의해 성이 함락되고 8,000여 명의 고구려인이 전몰하는 비극이 벌어기도 했다.


현지에서는 대흑산산성 혹은 대화상산성(大和尙山城)으로 부르는데, 성이 소재한 산 이름을 따서 붙인 것으로 고구려 당시의 명칭과는 관계가 없다. 

서남벽 구간의 계곡(1998)

비사성 단면도

남벽(1998)

성벽의 축조방식 Ⅰ(1998)

성벽의 축조방식 Ⅱ(1998)

남벽에서 바라본 발해만(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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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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