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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 덕화리 1,2호분 벽화 ①

<19> 6세기부터 청룡ㆍ주작ㆍ백호ㆍ현무 비중 커져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5-07-07 14:43


덕화리 1호분 청룡.


고구려 고분 벽화는 그 시기에 따라 그림의 주제가 달라집니다. 초기에는 무덤 주인공의 일상 생활을 중심으로 한 풍속도가 그려졌지요. 안악 3호분ㆍ무용총의 벽화가 이런 그림의 대표적입니다.


5세기 이후에는 연꽃 등 장식 무늬의 비중이 커졌어요. 그래서 동명왕릉처럼 무덤 전체가 연꽃 무늬로 장식된 경우도 생깁니다.


6세기 무렵부터는 청룡ㆍ주작ㆍ백호ㆍ현무 등 사신의 비중이 커져 널방 벽면 전체에 그려집니다. 이는 강서대묘ㆍ오회분 4호묘에서 확인할 수 있지요.


풍속도→연꽃→사신도로 주제 변화


덕화리 1호분 사신도 중 현무


사신은 각 방위의 수호신으로, 죽은 영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불교 전래 이후 장천 1호분처럼 불교를 소재로 한 무덤 벽화가 그려지기도 했지만, 사신도가 더욱 위세를 떨쳤습니다. 사신도를 벽화의 중심 주제로 삼는 것은 이웃 나라에선 찾기 어려운 고구려 고분 벽화만의 특징입니다.


인물 생활도 벽화에서 사신도 벽화로 바뀌는 것은 갑작스레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무용총 벽화에서 보듯이 사신도는 천장에 조그맣게 그려졌고, 때로는 주작이 닭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러다가 쌍영총 무덤에선 천장이 아닌 앞방에 백호와 청룡이 크게 그려지고, 현무는 널방에 작게 그려지게 됩니다.


덕화리 무덤은 뛰어난 사신도 유명


1976년 평안남도 대동군 덕화리에서 발견된 2 개의 무덤은 이러한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지요. 서쪽 1호분과 동쪽 2호분은 3 m 정도 떨어져 있고, 무덤의 구조나 벽화의 내용이 워낙 비슷해 형제의 무덤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5세기 말~6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들 무덤은 안길과 널방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널방의 네 벽에는 사신도가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우선 덕화리 1호분 널방 동벽에 그려진 청룡은 머리가 크며, 2 개의 뿔이 인상적이지요. 삼각형으로 벌린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나 있습니다.


용 둘레는 대체로 붉은데, 용의 몸은 먹 선으로 묘사했어요.


서벽에는 백호가, 남벽에는 주작 2 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주작은 날개를 활짝 펼친 자세를 그렸는데, 많이 훼손되어 제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덕화리 1호분의 백호.


덕화리 1호분에서 북벽이 가장 눈길을 끕니다. 수산리 벽화에서 보듯이 벽면을 2단으로 갈라 두었습니다. 아래에는 상상의 동물인 현무를 그렸고요. 거북의 네 다리는 아주 길며, 뱀은 거북의 몸을 3 번 감고 X자로 머리와 꼬리가 원을 그리며 교차하고 있습니다. 덕화리 1호분의 사신도는 매우 소박해, 백호를 신령한 동물로서가 아닌 실제 호랑이처럼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림이 발달해 점차 세계에 자랑 할만한 사신도로 거듭나게 됩니다.


인물 풍속화의 전통도 여전히 존재


덕화리 1호분에는 여전히 인물 풍속도를 그리는 전통이 남아있지요. 현무 위에는 8 명의 사람이 그려져 있습니다. 널방 북벽에 무덤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는 전통에 따라 남자 주인공과 시종, 여자 주인공과 시종, 그리고 땡땡이 무늬 복장을 한 두 여자와 두 남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남자 주인공은 갈색 저고리에 통 넓은 바지를 입고 머리에 뾰족한 모자를 쓴 것이 전형적인 고구려 귀족의 모습입니다. 여 주인공이 치마를 입은 모습도 수산리 고분에서 보는 것처럼 고구려 귀족 여인의 자태 그대로입니다.


덕화리 2호분의 널방 북벽〉?4 명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두 고분은 고구려 사람들이 벽화의 소재를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가를 잘 알려줍니다. 두 무덤의 천장에는 별자리 그림도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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