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42200350001


평양의 풍수 입지

풍수이야기


고구려의 수도는 초기 졸본성(현 길림성 환인일대)이었고, 유리왕 22년(45년)에 국내성(집안)으로 천도하였다. 천도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농업생산과 국사방어의 측면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집안평야와 고구려가 일어난 압록강 유역은 농경지가 넓지 않아 왕도 규모의 확대와 귀족세력의 성장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국내성은 산간지대였으므로 군사적인 방어에는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나 외부세계와의 통교에는 지리적 환경의 제약이 많았다. 따라서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장수왕 15년(427년) 평양으로 천도하였다. 평양의 지리적 조건은 대동강 유역과 황해도 지역의 비옥하고 넓은 평야지대를 끼고 있어 풍부한 물산이 생산되는 경제적 기반의 이점이 고려되었다. 또한 요동과 남부지역 진출의 거점과 배후기지로 적합하였다. 동시에 중국과 연결될 수 있는 해상교통로의 요충지로서 개방성과 국제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평양이 가진 다른 장점은 고조선의 전통과 낙랑문화로 대표되는 중국문화의 세례를 받은 우수한 문화전통을 잇기에 유리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평양으로 천도를 단행한 당시에는 서쪽의 전연, 후연, 북위 등의 강대한 중국 세력으로 인해 서쪽으로 발전방향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발전방향을 남쪽으로 돌릴 경우 평양은 왕도로서 더없이 좋은 장점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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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전도>


역사적으로 보아 평양의 천도는 당시 고구려의 사회변동과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국가발전 방향을 새롭게 모색한 개혁의 상징이었다. 그 개혁의 방향은 평양이 갖는 이점이 대변하고 있다. 평양천도는 고구려의 새로운 변신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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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입체지도>


대동강 하류에 자리잡은 평양은 대동강과 보통강, 그리고 그 지류들에 의해 이루어진 충적평야와 침식평야, 이를 둘러싼 낮은 산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삼면이 강물로 차단되어 있어 강물이 방어의 기능을 다하는 곳이다. 평양은 동쪽과 남쪽에 대동강의 본류가 흐르고, 서쪽은 순안에서 발원하는 보통강의 합류장소에 해당된다. 이중환은 평양을 “산이 평야와 다름없이 낮고 평야는 물줄기와 다름없이 평평하다”고 하였다.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에는 “평양은 수덕(水德)이 순조로워 우리나라 지맥(地脈)의 근본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 평양은 평양평야 외에도 크고 작은 여러 범람원이 외곽까지 연속되어 있는 평야상의 도시이다. 넓은 들판과 비옥한 토양은 생산성이 높은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평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약 250년간 고구려의 수도였으며, 고려시대에는 수도인 개경 다음가는 도시로 대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왕이 정기적으로 순행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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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은 대동강과 그 지류들이 수렴되는 수상교통의 요지에 입지하고 있다. 교통상의 요지에 있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외부로부터의 침략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거쳐가는 통로가 되어 격심한 전투를 치룬 곳이기도 하다. 주변에는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고, 대동강과 보통강 그리고 구릉지로 둘러싸인 지형조건은 천혜의 요새지로서 방어의 조건을 탁월하게 갖춘 곳이다.


평양성 평면도


평양성 내성 동장대(연광정) 전


평양성 북문(현무문) 전경


대성산성 소문봉전경


대성산성 국사봉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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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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