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리되어 있는 사진 문서를 한데 합쳤습니다. 출처는 각 사진 아래 있습니다.


국내성

고선지 실크로드 개척사


국내성 동남우

국내성 동남우 부분이다. 동벽 석벽의 높이는 약 6m, 내면의 토수가 높이 약 4.5m, 저변의 두께 9m 정도다. 벽의 북단(성의 동북우)이 원을 띠고 있는 것은 옛 터에 의거했을 것이다. 남단(성의 동남우)의 위치는 원위치에서 이동한 자리이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000001


국내성 동문 밖 초석

동문 밖 민가에 접해서 2, 3개의 초석이 남아있다. 비교적 완전한 모양을 한 초석을 보면 원형의 모습이다. 이 부근에는 적색의 와편이 흩어져 발견되기도 하였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010001


국내성 동문

국내성의 동문 집문(輯文)문이다. 동벽 석벽의 높이는 약 6m, 내면의 토수가 높이 약 4.5m, 저변의 두께 9m 정도다. 벽의 북단(성의 동북우)이 원을 띠고 있는 것은 옛 터에 의거했을 것이다. 남단(성의 동남우)의 위치는 원위치에서 이동한 자리이다.


국내성 동북우

국내성 동북우 부분이다. 동벽 석벽의 높이는 약 6m, 내면의 토수가 높이 약 4.5m, 저변의 두께 9m 정도다. 벽의 북단(성의 동북우)이 원을 띠고 있는 것은 옛 터에 의거했을 것이다. 남단(성의 동남우)의 위치는 원위치에서 이동한 자리이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030001


국내성 북문터 전경

국내성의 북문이 있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터다. 성 안쪽으로는 아파트들이 보인다. 930년대 일본인들에 의해 찍힌 사진들과 비교해보면, 성벽이 많이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040001


국내성 북문터(밖)

국내성의 북문이 있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터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050001


   

국내성 북문터(안) 1,2

국내성의 북문이 있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터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p_code=cp0229&index_id=cp02290956&content_id=cp022905060001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p_code=cp0229&index_id=cp02290506&content_id=cp022905060002


국내성 북벽 내부에서 본 성벽

국내성 안쪽에서 본 북벽의 모습이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070001


국내성 북벽 단면

국내성 북벽을 따라 가다보면 끊긴 곳이 나오는데, 여기서 북벽의 단면을 볼 수 있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080001 


국내성 북벽 서쪽부분 내면

국내성 북벽의 서쪽부분을 성 안쪽에서 본 모습이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090001


국내성 북벽 서쪽부분 외벽

국내성 북벽의 서쪽부분을 성 바깥쪽에서 본 모습이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100001


국내성 북벽 성벽위

지금은 한참 낮아진 국내성 북벽의 윗부분이다. 잡초만 무성하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110001


국내성 북벽 외면 허리부분

성 바깥쪽에서 본 국내성의 북벽 허리부분이다. 허리부분의 구조는 안정감 있고 견고하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p_code=cp0229&index_id=cp02290957&content_id=cp022905120001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p_code=cp0229&index_id=cp02290512&content_id=cp022905120002


국내성 북쪽 성벽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성벽 자체도 많이 낮아졌다. 마치 주변 아파트의 화단인 듯하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p_code=cp0229&index_id=cp02290958&content_id=cp022905130001


국내성 북쪽 성벽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성벽 자체도 많이 낮아졌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p_code=cp0229&index_id=cp02290513&content_id=cp022905130002


국내성 서문과 서벽 남쪽부분

서벽은 구조, 외관 모두 남벽과 동일하다. 최하부에서 최상부까지 수직으로 쌓았다. '안무문'이라 칭하는 성문은 벽 중앙부가 아닌 남쪽으로 치우쳐 있다. 서문 이남의 성벽은 조금 내부로 들어가 있고 서남각에 가까운 부분은 굽어 있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140001


국내성 서벽 북쪽부분

서벽은 구조, 외관 모두 남벽과 동일하다. 최하부에서 최상부까지 수직으로 쌓았다. '안무문'이라 칭하는 성문은 벽 중앙부가 아닌 남쪽으로 치우쳐 있다. 서벽의 서쪽 부분은 통구하에 이르러 꺾여 서벽을 이룬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150001 


국내성 서북우

서벽은 구조, 외관 모두 남벽과 동일하다. 최하부에서 최상부까지 수직으로 쌓았다. '안무문'이라 칭하는 성문은 벽 중앙부가 아닌 남쪽으로 치우쳐 있다. 서벽의 서쪽 부분은 통구하에 이르러 꺾여 서벽을 이룬다. 성의 서북우는 방각으로 동북우나 서남우처럼 굴곡이 없다. 문 이남의 성벽은 조금 내부로 들어가 있고 서남각에 가까운 부분은 굽어 있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160001


국내성 해자터

국내성 서쪽 성벽 바깥으로는 통구강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압록강이 흘러 자연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동쪽과 북쪽에는 말라버린 해자의 흔적이 있다. 사진은 북벽 외측 외호(外濠)로 추정되는 흔적이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170001


집안 국내성 원경

저멀리 왼쪽으로 환도산이 보이고 통구하 오른쪽으로 국내성이 보인다. 국내성 아래쪽으로는 압록강이 흐르고 그 강 가운데 벌등도가 보인다. 오른쪽의 큰 산은 우산이다. 국내성은 방형(方形)으로 쌓은 성이다. 남벽은 압록강에 접해있고, 서벽은 통구하 좌안에 접해있다. 성의 길이는 동쪽벽 554.7m, 서쪽벽 664.6m, 남쪽벽 651,5m, 북쪽벽 715.2m로 성벽 총둘레는 2,686m에 이르렀다. 원래는 동쪽과 서쪽에 문이 두 개씩, 남쪽과 북쪽 한 개씩 총 여섯 개가 있었다고 한다. 1921년 성을 대규모로 개수하면서 고구려 성의 원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이 때 세 군데에 성문을 세웠는데, 동, 서, 남 세 방향에 하나씩만 세우고 나머지 세 문은 흔적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이 때 붙인 성문의 이름을 10년 뒤 보수하면서 동문을 집문(輯文)·서문을 안무(安武)·남문을 금강(襟江)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세 문조차도 1947년 국민당과 공산당 전쟁 때 완전히 없어져 흔적도 없게 되었다. 지금은 북벽과 서벽 약간이 남아있을 뿐 나머지는 자취를 찾기가 어렵다.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229051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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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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