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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역사 교과서? '중딩' '고딩'의 반응은…
[이명박 5년, 빛과 그림자·6] 역사 교과서 개정의 문제점
박태균 서울대학교 교수  기사입력 2012-01-31 오전 8:02:03                    

학술단체협의회와 <프레시안>은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간의 각 분야별 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난 10월 29일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토대로 각 분야의 전문가의 글이 실리고, 나중에는 책으로도 묶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11년 한 해 동안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을 놓고 역사학계가 뜨겁게 반응했다.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자유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으로 오랜만에 역사학자들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고자 한 교육과학기술부의 무리수가 시민들에게 얼마나 제대로 알려졌는지 의문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재론하지는 않겠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학계에서의 광범위한 합의 없이, 또한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역사책에 사용되는 용어를 바꾸려고 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역사 교과서에는 논쟁이 되는 견해는 반영하지 않는다. 특정 주제를 둘러싼 논쟁이 중요할 경우 그것을 소개하는 경우는 있지만, 한쪽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서술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논쟁이 되는 견해를 교과서에 반영할 경우 이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라는 한정된 의미의 용어로 대체하는데 대해 많은 반대 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교과서의 집필 기준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들어간 것이다. 대부분의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참여하지 않고 있는, 그리고 뉴라이트에 동조하는 학자들만이 참여하고 있는 '현대사학회'라는 학회가 제안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로 인해 집필 기준을 만들고 이를 심사하는 위원들이 사퇴한 것은 물론 역사학자들이 교육과학기술부와 청와대에 직접 의견서를 보냈다. '자유민주주의'의 한정된 내용과 수정 과정의 불공정성에 대해 지적한 의견서에 대해 대부분의 역사학 관련 학회와 역사학자들이 대부분 동의했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나 청와대는 이러한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공정성을 가르쳐야 하는 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가 민주주의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집필 기준 하에서 작성된 교과서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2004년부터 시작되었다. '교과서 포럼'에서 시작된 기존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시비는 '뉴라이트'로 확산되었다. 뉴라이트는 한국의 근현대사 연구자들과 역사 교사들이 집필한 검정 교과서가 '좌파' 역사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거기에 더해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스스로 폄하하는 '우울한' '자학사관'이라는 비판이 더해졌다. 일본의 극우 세력들이 집필한 후소샤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가 기존의 일본 역사 교과서들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한 것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에 큰 공헌이 있었던 뉴라이트 그룹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역사 교과서를 바꾸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실상 이명박 정부 이전에도 역사 교과서 집필자들에게 주어진 자율성은 크지 않았다. 자세하게 서술된 집필 기준에 의거해서 서술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교과서의 내용이 집필기준에 적합하지 않을 때 해당 교과서는 검정에 통과할 수 없었다. 예컨대 '5·16 쿠데타'는 '5·16 군사 정변'이라는 애매한 용어로 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쿠데타'를 '쿠데타'라고 부를 수 없었다. '한국 전쟁'의 경우도 공영 방송에서 이미 '한국 전쟁' 다큐멘터리가 몇 차례에 걸쳐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해야만 했다. 반드시 '한국 전쟁'이 올바른 용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6·25 전쟁'만이 합의된 용어는 아니었다.

따라서 검정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교과서 집필자나 출판사가 '자기 검열'을 해야만 했다. 혹시 잘못 쓸 경우 경우에 따라서 역사학자들과 출판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갈등도 있었다. 출판사에게는 검열 통과가 제일 큰 과제고,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고집을 꺾지 않으려고 했으니 말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홍길동의 아픔이 역사교과서 집필자들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미덥지 못했던 이명박 정부는 교육과학기술부를 통해서 새로운 집필 기준을 만들었고, 그에 기초하여 다시 집필된 2011년 역사 교과서도 또 다시 논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2011년 사용된 역사 교과서는 이명박 정부가 새로 내놓은 집필 기준에 의해서 집필되었다.

ⓒ프레시안(손문상)

이전의 교과 과정을 다 무시하고 2010년 말에 갑자기 한국사 교과서로 급조되었다. 그래서 역사학계에서는 졸속 제작된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비판적인 검토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일부 보수 언론에서 그나마 이명박 정부 하에서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 역시 좌파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고, 이것이 '지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되어야 하는 것은 교육과학기술부의 무리한 집필 기준 수정이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이 전반적인 역사학계의 의견과는 관계없이 지극히 정치적인 '현대사학회'라는 일개 학회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것 역시 중요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상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에 의한 무리한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의 수정은 한국 사회에서 냉전적인 극우 세력들이 갖고 있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의 눈으로 보기에 근현대사 연구자의 대부분이 '좌빨'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들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교과서의 내용을 바꾸고자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교과서의 내용이 아니다. 이렇게 교과서의 내용이나 용어를 둘러싸고 논쟁이 되고 있는 동안 학생들은 역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 교육이 필수가 아니고, 대학 입시에 역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비판이 있으면 뭐하는가? 학생들이 역사를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데 말이다. 역사는 재미없는 과목이고 어려운 과목이다.

지금 한 번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보자. 과거에 비하여 근현대사 부분의 비중이 확대되었고, 세계사와 한국사를 연결시키고 비교 역사학적 관점에서 한국사를 보려고 하는 노력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 교과서의 내용은 역사학자들에게도 어렵고 낮선 내용들이 적지 않다. 그러니 학생들에게는 어떻겠는가? 도대체 학생들에게 그 많은 내용을 가르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독립 운동 단체와 관련된 내용 중 일부는 역사학계에서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 내용이다. 학생들은 시험에 대비해서 그 내용을 외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시험만 끝나고 나면 그 내용을 다시 기억하는 사람은 없고, 단지 역사는 외울 내용이 너무 많다는 사실만을 기억하게 된다. 게다가 매년 역사 교과서가 개편되니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도 분명치 않다.

이제 심각하게 역사 교과서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역설적이게도 역사 교과서가 학생들로부터 역사를 멀리하도록 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정치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학생들은 역사를 더 외면하게 된다. 이제 역사 교과 과정에 대해서 재고가 필요하다. 더 이상 역사 교과서가 정치에 의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역사서술은 불가능하겠지만, 최소한 역사적 사실만이라도 왜곡되어서는 안 되며, 서술해야만 하는 내용이 정치적인 이유로 제외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역사 교과서를 없애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가르치기 보다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만 가르치도록 하는 방향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한국 역사 전체에서 중요한 사건 5가지만 뽑아서 1년 동안 그것만 가르치게 하면 된다. 그러면 중요한 내용은 다 포괄된다. 왜냐하면 역사는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가르치고, 그 결과가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가르치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앞뒤를 연결하다보면 결국 고대사에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다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무리한 요구라 할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이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할 수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방안을 찾아야 한다. 역사에서 과거를 느끼고, 과거에서 현재를 발견하고, 현재에서 미래를 조망할 수 있다면, 누군들 역사에 흥미를 느끼지 않겠는가? 수많은 역사 관련 출판물들, 그리고 인터넷의 정보들을 이용한다면, 이러한 교육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이러한 대안 제시가 역사 교사 선생님들께 더 큰 짐을 지워드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박태균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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