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69557
이재용 질책한 대통령 "삼성이 한화보다도 못하다"
[판결문으로 본 박근혜 국정농단 8] 정유라 승마지원 박근혜·최순실-삼성 뇌물사건 전모 ①
19.09.16 20:36 l 최종 업데이트 19.09.16 20:36 l 박근용(kkums)
1주일에 한 번꼴로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사건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들을 다룹니다. 각 사건의 핵심내용 소개에 그치지 않고 사건 관계자들의 범죄 또는 부패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권력부패를 기억하는데 주춧돌이 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 2017년 5월 30일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최순실씨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시작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다. 이 연재의 앞선 글에서는 박-최 게이트가 아닌 다른 국정농단 사건부터 다루었다. 이번 편부터는 박-최 게이트에 해당하는 사건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박-최 게이트에 해당하는 사건은 최소한 16건에 이른다. 더 세부적으로 나누면 숫자가 늘어나지만 유형별로 묶어도 16건이나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묶음을 나누어 본 16건의 사건을 시작 순서별로 보면 이렇다. 괄호 안의 시기는 판결에서 확인된 각 사건의 마지막을 가리킨다.
[사건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즈음부터 시작
① 2012년 12월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고등학생 시절 학업 관련 비리가 시작된다(2014년 3월까지).
② 2013년 2월 대통령 취임 직전부터 대통령 보고문서 등 공적 비밀 사항이 최순실에게 제공된 사건이 일어난다(2016년 4월까지).
③ 2013년 4월 정유라의 상주승마대회 성적 불만에 따른 문체부의 승마협회 감사실시, 그에 이은 문체부 노태강 국장과 진재수 과장 인사상 불이익과 사직 강요 사건이 벌어진다(2016년 5월까지).
④ 2014년 7월 정유라의 승마훈련 지원을 명목으로 삼성그룹의 뇌물제공 사건이 시작된다(2016년 10월까지).
⑤ 2014년 9월 정유라의 이대입학비리 사건이 벌어진다(2016년 10월까지).
⑥ 2014년 11월 최순실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 K코퍼레이션의 수익창출을 위한 현대차그룹 구매계약 요구사건이 시작된다(2016년 9월까지).
⑦ 2015년 1월 최순실이 광고대행사업을 위해 KT에 홍보임원 채용을 강요하는 사건이 시작된다(2016년 1월까지).
⑧ 2015년 2월 광고대행사업을 위해 C사에 대한 포레카 주식 인수 포기 강요 사건이 시작된다(2015년 8월까지).
⑨ 2015년 2월 최순실이 실질적 운영자인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삼성그룹 지원사건이 시작된다(2016년 3월까지).
⑩ 2015년 7월 재벌그룹 자금출연을 통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 사건이 시작된다(2016년 8월까지).
⑪ 2015년 9월 최순실의 하나은행 임원 승진 강요 사건이 시작된다(2016년 2월까지).
⑫ 2015년 10월 최순실이 세운 광고대행사 플레이그라운드에 대한 현대차그룹과 KT의 홍보계약 체결사건이 시작된다(2016년 8월까지).
⑬ 2016년 1월 정유라의 출석 및 시험성적 허위입력 등 학사관리 비리사건이 시작된다(2016년 8월까지).
⑭ 2016년 1월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지원 강요 사건이 시작된다(2016년 6월까지).
⑮ 2016년 1월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에 대한 그랜드코리아레저·롯데그룹·포스코그룹·SK그룹 지원 사건이 순차적으로 시작된다(2016년 5월까지).
⑯ 2016년 3월 주미얀마 대사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에 최순실에게 도움 줄 수 있는 인사들을 임명하고 '미얀마 K-Town 프로젝트' 사업 관련 알선수재(약속) 사건이 시작된다(2016년 6월까지).
범행이 시작된 시점을 감안하면, 2012년 시작 사건이 1건, 2013년 시작 사건이 2건, 2014년 시작 사건이 3건, 2015년 시작 사건이 6건, 2016년 시작 사건이 4건이다. 아마 2016년 가을에 최순실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면 사건 수는 더 늘었을 것이다.
위 사건 분류 중 12번과 15번 사건은 더 쪼갤 수도 있다. 하지만 세부 사건이 시작된 시기나 목적, 방식에 공통점이 많아 1개의 사건으로 묶어 볼 수 있다. 이들 16건의 박-최 게이트 사건을 사안의 성격이나 목적이 유사한 것끼리 묶어 앞으로 하나씩 살펴볼 예정이다.
[범행 가담자들] 박근혜 무리와 이재용 무리
▲ 2017년 6월 2일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서울지방법원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호송차량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첫 번째 사건은 정유라 승마지원을 명목으로 벌어진 최순실에 대한 삼성의 뇌물제공이다. 사건의 자초지종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범죄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을 보자.
18대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이다. 그리고 박근혜와 40년 지기이자 비선실세였던 최순실이다(최순실은 2014년 2월에 최서원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또 다른 박근혜의 비선실세였던 정윤회와 2014년 5월 이혼한 뒤에는 정윤회를 제치고 제1의 실세였다).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범행의 수혜자인 최순실의 딸 정유라도 빠뜨릴 수 없다(2014년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 후 정유연에서 정유라로 개명하였다). 최순실의 측근으로 범행 전에 대한승마협회 전무였던 박원오도 등장한다. 최순실 지시를 받아 삼성 측과 실무협의를 맡았다. 최순실의 측근인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등장한다. 최순실과 청와대, 최순실과 삼성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였다.
그 외에도 코어스포츠 설립이나 삼성과의 용역계약 단계에 최순실 측 인물로 박승관(변호사)이 등장하고, 박원오의 지시를 받아 삼성과 승마지원 실무협의에 김종찬 전 승마대표팀 감독도 있다.
삼성 측의 등장인물은 이렇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박근혜와 두 차례 단독면담하며 승마지원을 요구 받고 삼성그룹 임원들에게 이행을 지시했다. 다음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2012.6~2017.3)인 최지성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차장(2012.12~2017.3)인 장충기 사장이다. 이 두 사람은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의 요구이행에 대해 상의하고 다른 임원들에게 구체적 이행을 맡겼다.
최순실의 측근인 박원오를 통해 범행 실무를 맡았던 삼성 측 임원은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부문 사장(2014.12~2017.3)과 황성수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스포츠기획팀장(전무)(2015.8~)이다.
박상진 사장은 2015년 3월부터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맡았다. 황성수 전무는 2015년 8월 이전에는 제일기획 전무 겸 대한빙상연맹 부회장이었으나 삼성전자로 소속이 바뀐 뒤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이 되었다.
한편 황성수 전무에 앞서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전무이자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을 맡았던 이영국 삼성전자 상무도 이 사건에 관여했다(승마협회 부회장에서 물러나면서 제일기획 상무로 발령되고, 제일기획 소속으로 황성수 전무가 맡고 있던 대한빙상협회 부회장직을 맡는다).
[2014년 봄] 최순실 '인천 아시안게임 끝나면 승마협회를 삼성에 맡겨야'
2014년 4월 안민석 국회의원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승마 국가대표선수로 선발되는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여러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되자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고 있던 한화그룹이 회장사를 그만두겠다고 발표한다. 2013년에도 최순실과 정유라로 인해 홍역을 치른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3년에 정유라는 승마협회가 경북 상주에서 개최한 승마대회에서 준우승하였다. 그러자 최순실은 심판의 잘못을 지적하며 박근혜를 통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승마협회에 감사를 실시하게 한 바 있었다(노태강 당시 문체부 국장 등이 최순실이 원하는 결과를 내놓지 않자 박근혜를 통해 노 국장 등을 경질하도록 요구한 사건은 다음에 따로 소개하겠다).
이렇게 한화그룹이 승마협회 회장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최순실이 문체부 2차관인 김종에게 이렇게 항의한다.
"(정유라가 출전할 2014년 9월의) 인천 아시안게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화가 그만두면 어떡하냐. 아시안게임까지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김종 차관은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으로부터도 "회장사를 못 할 것 같으면 스폰서라도 하라고 해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러자 김종 차관은 당시 대한승마협회 김효진 부회장을 불러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전달한다. 그래서 4월 23일에 한화그룹은 회장단 사의 표명을 철회한다.
이 일을 겪은 뒤 최순실은 김종 차관이나 대한승마협회 전무이사를 맡은 바 있던 측근 박원오에게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승마협회를 삼성그룹에 맡겨야겠다'고 말한다(김종은 2013년 9월경 최순실이 지인 소개로 알게 되어 박근혜에게 추천해 2013년 11월에 문체부 2차관에 임명된 인물로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서 예술체육대학 학장을 맡고 있었다).
더 나아가 최순실은 대통령인 박근혜에게 승마협회 회장사를 삼성그룹으로 바꾸어 정유라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2014년 9월] 박근혜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삼성이 맡아라'
▲ 2015년 12월 21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서 발파버튼을 누르고 나서 단상을 내려오고 있다. ⓒ 연합뉴스
2014년 9월 15일, 최순실의 요구대로 박근혜가 나선다. 이날 박근혜는 대구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을 따로 불러 5분 동안 면담한다. 이때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삼성그룹에서 맡아주고, 승마 유망주들이 올림픽에 참고할 수 있도록 좋은 말도 사주는 등 적극 지원해 달라."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오후 곧바로 박근혜의 요구사항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인 최재성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차장인 장충기 사장에게 전하며 의논한다. 그 결과 이들은 박근혜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 뒤 10월경, 이재용 등은 삼성전자 이영국 상무에게 대한승마협회 회장사 인수를 위한 실무작업을 맡긴다. 이 상무는 11월 25일에 승마협회 부회장으로 취임하여 인수작업을 본격화한다(이 상무는 최순실의 요구로 2015년 7월에 승마협회 부회장에서 강제 교체된 후, 빙상경기연맹 회장사를 맡고 있던 제일기획 소속으로 인사 발령되고 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된다. 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을 맡았을 때는 최순실이 세운 동계영재센터 지원 사건에 등장한다).
이재용은 12월 1일에 삼성그룹 사장단 정기인사를 실시하면서는 삼성SDI 박상진 사장을 삼성전자 대외협력부문 사장으로 발령한다. 최지성 부회장이 박상진 사장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한승마협회 회장도 함께 맡아야 한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회장사를 맡게 된 것이니 잘 운영해 달라."
[2015년 1월] 박근혜 "정유라를 키워야 한다"
박근혜는 정유라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2015년 1월에 드러낸다. 1월 9일 박근혜가 문체부 김종덕 장관과 김종 차관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야당 소속 안민석 국회의원의 정유라에 대한 특혜의혹 등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정유라와 같이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잘하는 학생을 정책적으로 키워야 한다. 왜 이런 선수를 자꾸 기를 죽이냐?"
삼성이 박상진 사장을 승마협회 회장으로 내정하자 2015년 2월에 차명규 한화생명 대표이사는 임기를 2년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승마협회 회장직을 사임한다. 2015년 3월 25일에 승마협회 대의원총회가 열려 34대 회장 보궐선거가 실시되는데, 단독출마한 박상진 사장이 승마협회 회장으로 당선되어 취임한다. 이로써 최순실의 요청과 박근혜의 요구에 따른 대한승마협회 회장사의 삼성그룹(삼성전자)으로의 교체가 완료된다.
[2015년 6월] 박상진 "정유라가 출산해서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박상진 사장은 정유라에 대해 지원해야 하는데 정유라가 임신했다는 정보를 얻었다. 승마협회 회장에 취임한 지 한 달쯤 된 4월에서 5월 사이에 최순실의 측근인 박원오에게 정유라가 임신했다는 소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승마협회 부회장인 이영국 상무 역시 박원오의 측근인 김종찬에게 이렇게 묻는다.
"정유라가 애를 낳았다고 하는데 아느냐?"
정유라는 2015년 5월 8일에 아이를 낳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삼성이 정유라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계획을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 6월 5일 이영국 상무가 박원오를 만나 삼성에서 어떤 지원을 하면 좋을지 문의를 하자 박원오가 이렇게 말한다.
'도쿄올림픽의 조건이 좋기 때문에 2020년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
최순실 쪽에서 1차 지원 방향을 정유라의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임을 삼성에 드러낸 것이다.
그런 가운데 2015년 6월 24일,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김종 차관을 만나 지금 당장 지원계획을 마련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삼성에서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승마 훈련 재정지원을 할 준비가 언제라도 되어 있는데, 최근 정유라가 애를 낳았기 때문에 말을 탈 몸 상태가 아니어서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몸 상태가 호전되면 곧바로 승마 훈련 재정지원을 할 예정이다."
[2015년 7월] 박근혜와 이재용 단독면담 일정
▲ 2016년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에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총수들이 증인선서를 위해 일어나 있다. 오른쪽부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경식 CJ 회장. ⓒ 사진공동취재단
이런 가운데, 2015년 7월 20일경, 박근혜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10대 그룹을 중심으로 대기업 회장들과 단독 면담을 할 예정이니 그룹 회장들에게 연락하여 일정을 잡으라.'
박근혜는 같은 해 10월과 다음 해 1월에 설립되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재벌그룹들의 출연금을 요구하기 위해 재벌총수들과의 단독 면담 일정을 잡으라고 지시한 것이다.
안종범 경제수석이 10대 그룹을 중심으로 면담대상 기업을 선정한 다음 박근혜의 검토를 거쳐 7개 그룹(삼성, LG, SK, 현대차, CJ, 한화, 한진)으로 확정한다. 7개 그룹 중 3곳(현대차, CJ, SK)은 24일에, 삼성그룹을 포함한 나머지 4곳은 25일에 박근혜와 단독면담하기로 결정된다.
[7월 23일 오전] 이재용 "(정유라 위한) 올림픽 준비가 더 중요하지 않냐"
면담 일정이 정해지자 이재용 부회장 등은 대통령 면담을 대비해 정유라에 대한 지원계획을 점검한다. 먼저 7월 22일 오후에 최지성 부회장이 제주도에 출장 중이던 박상진 사장에게 연락해 23일 오전에 이재용 부회장과 자신에게 올림픽 지원 상황을 보고하라고 지시한다.
박상진이 22일 저녁에 서울로 복귀해 밤 11시 21분에 김종찬에게 다음 날 아침 8시에 자신의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연락한다.
7월 23일 8시에 박상진은 김종찬으로부터 올림픽에 대비해 승마협회가 할 일이 무엇인지 설명을 듣는다. 이어 2시간 뒤인 오전 10시에 박상진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의 사무실로 가서 5월에 출산했던 정유라의 사정 때문에 정유라 지원계획은 미루어지고 있다며 이렇게 보고한다.
'(정유라가 출전 준비를 할) 올림픽에 대비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수립된 것이 없고 아시아승마협회 회장 당선 선거 운동을 준비 중입니다.'
그러자 이재용 부회장이 박상진 사장에게 이렇게 말하며 핀잔을 준다.
'(정유라를 위한) 올림픽 대비한 준비가 더 중요하지 않냐'
[7월 23일 오후] 최순실 "삼성 박상진 사장이 연락할 것입니다"
이재용으로부터 핀잔을 받은 박상진 사장은 같은 날 오후 4시 34분에 김종 차관에게 '협의드릴 일이 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이어진 전화통화에서 김종 차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께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정유라 선수를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지시하셨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정유라를 지원할 계획이다."
삼성에서 분주하게 움직인 7월 23일에 최순실도 움직인다. 최순실은 이날 오후 독일에서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독일에 있던 박원오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한다.
"삼성에서 승마를 지원하기 위해 승마협회 회장(박상진 사장)이 연락을 할 것이니 만나 이야기를 해보세요."
그리고 최순실은 박원오로부터 승마협회의 이영국 부회장과 권오택 총무이사를 교체해야 할 필요성 등도 들었다.
[7월 25일] 박근혜 "좋은 말도 사주어야 하는데 삼성이 안 하고 있다"
예정대로 7월 25일에 박근혜와 이재용이 청와대 인근 삼청동 안가에서 따로 만난다. 애초의 목적대로 박근혜는 이날 이재용을 포함해 다른 재벌그룹 회장들에게 '문화·체육 관련 재단을 설립하려고 하니 관심을 가지고 적극 지원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재벌에게는 하지 않은 이런 말을 하며 이재용을 질책한다.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승마 지원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도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한 것이냐. 삼성이 한화보다도 못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며 정유라에 대한 지원방식을 구체적으로 시사한다.
"승마 유망주를 해외 전지훈련도 보내고 좋은 말도 사주어야 하는데 삼성이 그걸 안 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삼성그룹 출신의 승마협회 임직원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삼성그룹 임직원으로 교체할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한다. 이것 역시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요청했던 내용이었다.
"삼성에서 파견된 대한승마협회 부회장 이영국은 사업을 추진할 생각이 없고, 총무이사 권오택(삼성전자 부장)은 지방색이 있어 문제가 많다.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 직계 직원들로 교체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라."
[7월 27일] 이재용, 박근혜 요구대로 승마협회 임원진 교체
▲ 2017년 8월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공여 등에 대한 1심 선고에 참석한 (왼쪽부터)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 권우성
이번에도 이재용은 박근혜를 만난 날 곧장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 박상진 사장에게 박근혜의 요구를 전하고 이행을 지시한다. 그래서 박상진 사장은 7월 26일 이영국 상무에게 최순실의 측근인 박원오와 어서 협의하라며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박원오에게) 독일에서 체류하는 곳으로 찾아간다고 하고, 마장시설, 정유라 훈련도 보고 관련 컨설팅 회사도 같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일정을 만들어 달라고 하세요."
다음 날인 7월 27일에 이재용과 최지성, 박상진은 최순실의 요구대로 승마협회 임원을 맡고 있던 삼성전자 임원을 교체하기 위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정현호 인사지원팀장을 불러 회의를 한다. 이 회의에서 삼성그룹은 승마협회 부회장을 이영국 삼성전자 상무에서 황성수 제일기획 전무로 교체하고, 승마협회 총무이사는 권오택 삼성전자 부장에서 김문수 제일기획 부장으로 교체한다. 황성수 전무와 김문수 부장은 모두 제일기획 김재열 사장의 직계 임직원이었다.
이렇게 임원교체가 결정된 바로 다음 날인 28일, 새 승마협회 부회장에 내정된 황성수 전무는 곧바로 이영국 상무와 함께 국내에 있던 박원오의 측근인 김종찬을 만나 승마협회 상근이사로 임명해주기로 하는 등 김종찬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7월 29일] 박상진 "정유라 지원계획을 만들어 달라"
이어 7월 29일, 박상진 사장이 박원오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 이렇게 말한다.
"정유라를 포함해서 올림픽 승마 선수들을 지원할 테니 계획을 한 번 만들어 봐 달라. 황성수 전무가 곧 올 것이니 구체적인 지원계획은 황 전무와 상의해달라."
박상진 사장의 말대로, 제일기획에서 삼성전자로 소속을 옮기고 승마협회 부회장직을 맡은 황성수 전무가 7월 31일에 독일로 간다. 이날 황 전무는 박원오와 최순실의 측근인 '데이비드 윤'(한국 이름 윤영식) 등을 만나 정유라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을 위한 실무논의를 진행한다. 이 자리에서 박원오는 황성수 전무에게 이렇게 요구한다.
"최순실이 애지중지하는 딸이 있는데, 그 딸이 마장마술을 한다. 그 딸을 포함하여 2020년 올림픽을 대비하여 독일에서 전지훈련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운영했으면 좋겠다."
그 후에도 박원오는 한국으로 돌아간 황성수 전무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지원 규모와 금액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박원오는 이 내용을 최순실에게도 보고하는데, 최순실이 말해주는 구체적 지시사항은 황성수 전무에게 다시 전하였다.
이에 따라 최지성, 장충기, 박상진, 황성수는 8월 3일에 회의를 열어 당시까지 상황을 공유하고 박원오가 제안한 방향에 따라 승마지원을 하기로 결론을 내린다.
한편 박상진 사장은 8월 5일에도 독일에서 박원오를 만나는데, 8월 15일 이전에 정유라를 위한 지원계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삼성과 박원오는 황성수 전무가 독일 하겐에서 열리는 올림픽 선수선발전을 관전하러 오는 8월 25일을 계약체결 예정일로 정했다.
왜냐하면 박원오를 통해 박상진 사장의 뜻을 전해 들은 최순실이 '회사가 그렇게 빨리 설립될 수 있는 게 아닌데'라며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이때 최순실이 말한 '회사'가 바로 삼성의 돈을 받는 창구가 되는 '코어스포츠'이다.
[2015년 8월] 최순실, 삼성 돈을 받기 위한 '개인 금고'로 코어스포츠 설립
최순실은 측근 박원오를 통해 삼성과 구체적 방안 협의를 마친 2015년 8월 25일, 삼성의 돈을 받기 위한 창구로 쓰려고 '코어스포츠 인터내셔널'(2016년 2월 9일자로 '비덱스포츠 Widec Sports'로 상호가 바뀐다)를 설립한다. 코어스포츠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 2만5천 유로는 모두 최순실이 부담하였다.
코어스포츠 설립 최초의 등기부등본(8월 19일자)에는 공동대표이사가 로버트 하인리히 요세프 쿠이퍼스와 박승관이다. 공동대표이사인 박승관(변호사, 나중에 삼성과의 계약체결 현장에 나온다)이 이 회사의 지분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삼성과의 용역계약이 체결(8월 26일)된 뒤인 11월 5일부터는 최순실이 지분의 70%, 정유라가 10%,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20%를 소유하는 것으로 변경된다(12월 11일에는 장시호의 지분이 정유라에게 이전되어 최순실 70%, 정유라 30%로 바뀐다).
또 쿠이퍼스는 용역계약 체결 10일쯤 후인 9월 4일 사임하고, 박승관은 코어스포츠 업무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최순실에게 코어스포츠 계좌의 인출권한을 모두 위임한다.
그만큼 코어스포츠는 최순실 개인의 사금고로 만든 회사였다. 그래서 최순실은 코어스포츠가 정유라 등 승마선수들의 독일 전지훈련 프로그램 등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삼성과 훈련 용역계약을 맺은 뒤, 삼성이 용역비 명목으로 코어스포츠에 돈을 보내는 방식을 선택한다.
박원오가 8월 13일경에 삼성과 용역계약을 체결하겠다고 최순실에게 보고했는데, 최순실은 코어스포츠를 설립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면서 계약 체결일을 약간 미루라고도 말한다.
이렇게 하여 최순실과 삼성그룹 사이에 뇌물을 주고받는 준비과정이 마무리된다. 그다음 범행과정과 법원의 판결은 다음 편에서 상세히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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