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36295
"박근혜, 장준하 의문사 외면, 아버지는 고마워할지 모르지만"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61] 고상만 전 의문사 진상조사위 조사관
15.08.17 11:06 l 최종 업데이트 15.08.17 11:06 l 이영광(kwang3830)
▲ 장준하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012년 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도리 장준하 공원에서 고인의 사인 규명을 위한 유골 정밀감식을 위해 개묘작업을 해 고인의 두개골을 수습했다. ⓒ 권우성
1975년 8월 17일 한 남자가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는 당시 박정희 독재 정권과 투쟁해 온 장준하 선생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지만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이내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점차 진실을 밝히려는 목소리는 커졌고 마침내 그의 죽음을 밝히기 위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정원과 기무사령부(전 보안사령부)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등 비협조해 사인을 밝히지 못한 채 종료됐다.
17일, 장준하 선생 서거 40주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지난 2003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아래 진상조사위)에서 장준하 선생 사건을 맡았던 고상만 전 조사관을 만나 장준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다음은 고 전 조사관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역사는 망각과 기억의 싸움"
- 17일이면 장준하 선생이 돌아가신 지 40주기를 맞이합니다. 고 선생님은 지난 참여정부 시절 의문사 진상조사위에서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담당한 조사관으로 참여하셨지요.
"장준하 선생님의 사인 의혹을 지금까지 그대로 둔 채 40주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무능이 부끄럽고 또 안타까워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특히 장준하 선생님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했던 사람으로서 바르게 진실을 세웠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해 지금 돌아보면 후회와 반성이 깊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생각입니다. 40주기를 넘어가는 지금, 장준하 선생님의 사인 의혹 규명을 위해 새로운 마음으로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스스로 찾겠습니다."
-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과거사를 바로잡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잊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책과 기사를 쓰거나 강연을 통해 장준하 선생을 사람들이 잊지 않게 하려 합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장준하 선생을 과거의 인물, 또는 잊힌 인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끊임 없이 장준하 선생의 이름을 말하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해야 합니다. 역사는 망각과 기억의 싸움이에요. 망각하면 그 역사는 사라진 거고, 기억한다면 그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겁니다. 이것이 제가 가진 확신입니다."
- 기억하는 게 중요하네요.
"매우 중요하죠. 뭐든 기억과 망각의 승부예요. (진실을) 덮으려는 사람은 언급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죠. 청소년과 젊은 세대들은 장준하 선생을 잘 몰라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요.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밝혀야한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썼더니 '난 또 개그맨 정준하가 죽었다는 줄 알았네'라는 댓글을 보고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개그맨은 알아도 우리나라 민주주의 지도자는 모르는 현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저조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맡기 전에 저도 장준하 선생을 잘 몰랐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끊임없이 이야기해야죠."
- 말씀처럼 청년층은 장준하 선생을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분이었는지 소개 부탁드려요.
"장준하 선생과 그분의 일생은 그 자체가 '대한민국 광복 70년 역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1918년 평북 삭주에서 태어난 장준하 선생은 광복군으로, 언론인으로, 그리고 야당 국회의원과 재야 민주주의 지도자로 만 57년의 생을 사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장준하 선생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울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나라 독립과 민중을 위해 자신을 던진 분입니다.
장준하 선생이 참 대단한 분이라는 사실을 제가 새삼 깨달은 것은 제가 이 분의 의문사를 조사하면서부터였습니다. 한 사람의 사망 의혹을 조사하다 보면 그 사람의 좋은 점도 보게 되고 또 감추고 싶은 비밀도 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장준하 선생은 속된 말로 자기 집 안방에서 속삭이며 하신 말씀이나 장충단 공원에서 수십만 군중 앞에서 하신 연설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불의와 맞섰고 자신을 속이지 않은 분입니다. 그런 점을 직접 확인하며 장준하 선생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이 나라에서 해온 업적도 대단하지만 이 분처럼 안과 밖이 한결같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며 죽임을 당할 줄 아시면서도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독재자 박정희의 장기 독재를 막는 '유신 헌법 개정 청원을 위한 100만인 서명 운동' 주도였습니다. 독재자 박정희를 권좌에서 끌어내기 위한 이 서명 운동은 불과 10일 만에 30만 명의 국민이 동참하는 위대한 힘을 보여줬습니다. 결국, 이러한 저항이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장준하 선생이 의문사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처럼 훌륭한 분을 누구보다 깊이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 참 행복한 마음입니다."
▲ 고상만 전 의문사 진상조사위 조사관(자료사진) ⓒ <고양신문>
- 의문사 진상조사위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1989년 대학 입학 후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90년 저와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김용갑이라는 사람이 2시간 35분간 실종 끝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저는 전업 인권 운동가로서 일해 왔는데 자연스레 의문사에 관심을 많이 가졌습니다. 제 동기가 의문사로 숨졌기 때문에 남 일 같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의문사 사건이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민원인이 저를 많이 찾아오게 되었고 이후 김대중 정부 아래서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져 조사관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를 맡게 된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재출범한 2기 때였죠."
-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맡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2기 의문사위 조사관으로 선발된 후 당시 김희수 상임위원이 조사관들을 상대로 '담당하고 싶은 사건이 있냐'고 묻는데 저만 건너뛰는 겁니다. 그래서 왜 저만 안 묻냐고 물었더니 할 게 있다는 거예요. 의아해서 '뭐냐'라고 재차 물으니 장준하 선생 사건을 맡으라는 거예요.
뒤에 들어보니 김희수 상임위원이 위원회 상임위원을 맡고 나서 제일 먼저 읽은 기록이 장준하 선생 사건이었는데 그 기록을 읽으며 이 사건 담당을 제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고 합니다. 이게 참 운명이 아닌가 싶어요.
만약 상임위원이 그때 제게 그냥 '뭘 하고 싶냐' 물었다면 저는 장준하 선생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감히 욕심낼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을 제게 하라고 하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몇 번 고사했는데 그때 상임위원이 '정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세상에 태어나 이런 역사적인 사건의 진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결국 그 말에 혹해 욕심을 내게 된 겁니다. 그 후 여러 새로운 사실과 자료를 밝혀냈고 그 공로가 인정돼 의문사위에서 수여하는 첫 번째 모범 조사관으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 해보시니 어땠나요?
"장준하 선생님과 관련한 조사 대상자는 역사적 인물이 많았어요. 김대중 대통령, 법정 스님, 백기완 선생이나 김동길 교수 외에도 9년 3개월 동안 박정희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씨 등을 만나 그날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를 통해 30년 넘게 밝혀지지 않았던 장준하 선생의 여러 의혹을 새롭게 밝혀낸 것은 개인적으로도 의미를 부여하고요. 특히 이미 폐기된 것으로 알려진 경찰 재조사 기록을 끝까지 추적해 발굴해 낸 것 역시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 기록을 통해 장준하 선생이 추락사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최후의 목격자 김용환씨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혀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관련 기사 : 장준하 의문사, 숨어있는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박 대통령, 아버지 시대 역사적 누 외면 해선 안 된다"
▲ 1975년 8월 명동성당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장례미사 ⓒ 장준하기념사업회
-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조사하며 무엇을 느끼셨나요?
"'야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국가권력기관이 불의한 방법으로 정당한 주장을 하는 누군가를 철저히 파괴하고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불의를 권력이 자행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보았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은 박정희 유신 독재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모든 행동을 감시받았습니다.
전화 도청은 물론 미행과 측근을 포섭한 정보 수집, 심지어 장준하 선생님의 가족과 친척까지도 전부 중앙정보부에 의해 감시 당했습니다. 이를 제지할 어떤 정당한 권력도 없었습니다. 오직 독재자 박정희 하나만 지키고자 전 권력이 나선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끝없는 용기로 불의에 저항한 장준하 선생님을 제가 존경하게 된 것입니다."
- 2004년 의문사 진상조사위가 종료되었지만, 확실히 밝혀내진 못했습니다. 지난 2012년 이장 도중 외부 가격에 의한 두개골 함몰이 드러나며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다시 잠잠해요.
"정말 참담한 일입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의 악령이 다시 그의 딸 시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이것이라고 전 주장합니다. 아버지 시대에 일어난 의혹이 구체적으로 나온 일이 바로 지난 2012년 8월 1일 드러난 '장준하 선생님 두개골 외부 가격 흔'입니다. 도대체 누가, 왜, 어떤 경위를 통해 이러한 외부 가격흔이 발생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지도 못하면서 이 나라가 '민주주의 인권 국가'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일입니다.
혹자는 설령 아버지 시대에 있었던 잘못이 있다고 해도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된 연좌제가 아니냐고 반박합니다. 기가 막힌 주장입니다. 장준하 선생님의 사인 의혹을 박근혜 대통령이 외면한다면 이는 더 이상 아버지 시대의 잘못이 아니라 아버지의 잘못이 그 딸에게 넘어온 것입니다.
아버지의 역사적 누를 그 딸이 덮어준다면 개인적으로는 그 아버지가 고마워할지 모르나 역사적으로는 큰 잘못을 남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40주기를 맞이하는 올해, 당장 장준하 선생님의 사인 의혹 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진짜 민주주의 인권 국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그 이후 밝혀진 사실이 있나요?
"서울대 법의학 교수를 지낸 이정빈 교수가 장준하 선생 두개골에서 확인된 상흔에 대해 법의학적 감정을 했고 그 결과 상흔은 추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 가격에 의한 인위적 상처로 결론 내렸습니다. 이제 국가 차원의 재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하는데 감감무소식입니다. 현재 이를 밝히기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논의조차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 사건의 진실이 언제 밝혀질지 알 수 없는 거죠. 화가 납니다."
-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장준하 특별법' 제정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상황을 고려하면 설사 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진상을 밝힐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모든 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과거 민주정부 하에서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대통령만 바뀌었지 그 밑에는 여전히 그때 그 사건을 저지른 자들이 그대로 있으니 어려운 겁니다.
중요한 건, 시행령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국가정보원과 기무사령부에 존안돼 있는 문서에 접근해 조사관이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의문사위 조사 때 어려움을 겪은 것이 크게 두 가지였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존안 문서 확보였습니다. 두 정보 기관이 어떤 자료를 가졌는지 전혀 확인할 수 없었고 특히 기무사령부의 경우 단 한 장의 문서도 협조해 주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만약 특별법 제정을 결단한다면 당연히 이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고 싶습니다. 하루 빨리 특별법이 제정되기를 촉구합니다."
▲ 1973년 12월 24일 서울 YMCA 2층 총무실에서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발표하는 장준하. ⓒ 장준하기념사업회
- 만약 조사위가 다시 꾸려진다면 다시 참여할 생각 있으세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능력이 뛰어난 분이 하시면 좋겠고 그렇게 된다면 제가 그동안의 조사 경험을 통해 가진 정보와 의혹을 잘 전달할 생각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장준하 선생은 생전 중앙정보부로부터 일상적인 감시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기에 장준하 선생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전부 중앙정보부의 '중요 상황 보고' 문서에 기록돼 있는데 이러한 자료를 최근 우연한 계기에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국민이 그 당시 장준하 선생이 어떤 말씀을 하셨고 이 때문에 어떤 고통을 당하셨는지 알리고자 책을 하나 썼습니다.
그 책이 오는 9월 초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제목은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입니다. 기존 장준하 선생 평전이 그 가족과 지인의 증언을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면 이 책은 장준하 선생을 감시한 중정의 비밀 기록을 토대로 썼기에 생생한 숨결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장준하 선생의 숨겨진 진실이 많이 알려질 것이라 기대합니다. 장준하 선생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기대 부탁합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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