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90929.22022194236


초원에서 한반도까지 <2> 구석기인들,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동아시아로 오다

몽골·알타이 초원루트에 원시인들 돌 떼어낸 흔적 고스란히

새 인류의 등장 생생한 흔적 10만년 넘게 간직한 유적지

코그-아쉬가치 지역에는 사방에 석기 널려있어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1978년 발견된 주먹도끼도

유라시아 대륙 거쳐 한반도로 구석기 인류 정착했던 증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9-09-28 19:47:50 |  본지 22면


우스키-칸 지역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동굴 유적.


 자기 민족의 역사가 오래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것이 지나친 나머지 구석기시대의 연대를 마구 올려서 주변 나라보다 자기네 역사가 더 뛰어났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흔하다. 바로 2001년 일본의 구석기 위조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 민족들을 위한 좋은 유머가 있다. 어느 나라 역사시간에 선생님은 열변을 토했다. "세계의 가장 오래된 언어는 우리나라 말이고, 아담과 이브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지요. 우리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었고 우리 민족이 인류의 기원입니다!!" 이때 한 학생이 질문했다. "선생님, TV를 보니깐 인류의 기원은 유인원이라는 데요?" 선생님의 대답. "아,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어보세요. 세상에서 원숭이와 제일 닮은 민족이 바로 우리랍니다."


누가 더 일찍 발생했는가를 경쟁하는 것이 곧 애국심을 높이는 길은 아니다. 인류가 이 험난한 세계에 적응하고 전 세계로 퍼지는 과정은 어느 한 민족, 국가의 자랑이라기보다 인류 모두의 자산일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 유라시아로 위대한 첫 발을 디디다


데니소바 동굴에서 출토된 석기들.


유라시아 초원루트는 몇 십만년 전 인류가 세상으로 퍼지는 길이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속으로 진화한 후에 약 170여 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퍼졌다. 인간이 전 세계로 퍼지는 순간이니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이때 전 세계로 퍼져나간 사람들은 호모 에렉투스라고 불리는 다소 구부정하게 걷던 사람들이다. 호모 에렉투스가 왜 아프리카를 떠났는지 지금도 설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지능이 발달해서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유라시아 초원지대는 바로 호모 에렉투스가 세계로 퍼지면서 아시아로 건너오던 그 길이기도 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돌을 이용해서 도구를 만들고 불을 사용하면서 아시아 전체로 퍼져나갔다. 동아시아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대표적인 유적은 저우커우디엔(周口店) 유적이다. 프랑스의 신부 테리야 드 샤르댕과 수많은 구석기시대를 연구하던 사람들은 이 유적을 거쳐갔으니, 동아시아 구석기의 '성지'인 셈이다.


■호모 사피엔스, 유라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와이어에 의지해 알타이의 구석기를 조사하고 있는 여성 고고학자.


호모 에렉투스는 서양에서 네안데르탈인으로도 불리는 호모 사피엔스로 변했다. 1940년대에 미국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뫼비우스('뫼비우스의 띠'로 유명한 수학자와는 동명이인) 교수는 동아시아의 경우 발달된 주먹도끼는 만들 줄 모르고 거칠고 원시적인 찍개만 만들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서구나 아프리카에서는 점진적으로 인류의 진화가 이루어진 반면 아시아는 원시적인 석기를 쓰던 사람이 큰 변화 없이 최근의 몽골로이드로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인종차별에 문화차별주의라고 구설수에 오를 법 하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주장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뫼비우스의 주장을 깨는 자료는 한국에서 나왔다. 1978년에 인디애나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왔던 보웬이라는 사람이 경기도 연천 전곡리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주먹도끼를 발견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도 그 소식이 알려졌다. 그가 발견했던 주먹도끼는 40년이 다 되어가는 뫼비우스의 이론을 뒤집는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이후 연천 전곡리는 동아시아 구석기 연구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도 세계 고고학 지도에서 전곡리유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경로로 한반도까지 흘러왔을까? 현재까지는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초원 루트는 수십만 년 전 구석기로도 올라가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이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현생인류)의 경우도 몽골과 알타이지역에서 가장 이른 후기 구석기의 좀돌날이 발견된 바 있다. 즉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등 새로운 인류가 등장할 때 마다 몽골과 알타이지역을 거쳐 아시아 곳곳으로 파급된 셈이다.


■아시아인류의 발원지인 알타이와 몽골


몽골과 알타이지역은 그러다보니 세계 구석기의 주요 연구지 중 하나가 됐다. 몽골과 알타이에서 시작된 후기 구석기의 몽골로이드는 후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으니 몽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알타이 하면 유목문화만 떠오르겠지만 이 지역은 아시아 구석기 연구의 메카이기도 하다.


알타이의 구석기 유적은 데니소바 동굴이 인상적이다. 이 동굴은 알타이공화국에 위치하는데, 노보시비르스크의 고고민족학연구소에서 30년 넘게 발굴 중이다. 근처에 근사한 휴양지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 발굴비용에도 도움이 되니 일석이조다. 이 동굴에서는 2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이빨이 나와서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인골화석으로 꼽힌다. 한여름에도 춥기만 한 동굴 안에서 어스름한 전등불을 켜고 발굴 작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발굴하고 파낸 흙은 다시 근처의 강까지 실어날라서 체질한다. 조그마한 증거라도 건지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나도 알타이를 조사할 때는 데니소바 동굴을 베이스캠프로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구석기 전공자가 "같이 석기 주으러 갈까?"라며 필자를 부추겼다. 석기를 줍다니? 구석기를 발굴하려면 홍적세라고 하는 단단한 진흙층을 깨야지 나오는 게 정상이다. 고고학 중에서도 가장 중노동으로 꼽히는 작업이다. 그런데 석기를 줍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해서 따라가 봤다.


알타이공화국에서 몽골로 가까워지면서 코그-아쉬가치 지역에 도달하자 반 사막지역이 나타났다. 러시아 군용트럭으로 초원을 가로질러 유적에 도착하자 사방에 석기가 널려 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바위에 몇 만 년 전 사람들이 돌을 떼어낸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마치 지금 막 원시인들이 다녀간 듯했다. 그 놀라움도 잠시, 석기를 수집하면서 돌들이 배낭에 쌓여갈 때 드디어 이 답사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하나 둘씩 석기를 배낭에 넣다보니 곧 묵직해져 걷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그래도 그 연구원은 '여기 하나 더, 저기도…'하면서 돌을 건네니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결국 난 반기를 들었다. "좀 버리고 가지, 여기서 10만 년 이상 놓여 있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 아닌가."


■구석기인들의 엇갈린 운명


빙하기가 막바지에 이르는 2만~1만 년 전, 구석기인들의 운명은 엇갈리기 시작했다. 일부는 얼어붙은 베링해로 건너가서 아메리카 원주민이 되었다. 일부는 온난해진 환경을 피하고 추운 지역을 찾아서 북쪽으로 이동해서 현재 북극에 사는 사람들의 선조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난해진 환경에 적응하여 나무열매, 사냥, 어로 등으로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유라시아 초원지대에도 현재와 같은 초원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초원지역 사람들은 빙하기가 끝나자 곧바로 목축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신석기시대 초원지역의 사람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수렵과 채집으로 생을 이어나갔다. 그러다보니 유적은 별로 없지만, 가끔씩 발견되는 무덤의 인골은 전형적인 북방계 몽골리안이다. 빙하기를 견디며 살던 구석기인의 후예인 것이다.


신석기시대가 끝날 무렵인 기원전 3500년께 일단의 새로운 사람들이 서쪽에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빙하기부터 이 지역에서 살았던 몽골로이드와는 다른 유럽인 계통이었고, 돌을 쪼개고 불에 녹여 새로운 도구인 청동기를 만들어냈다. 새로 온 사람들은 자연의 짐승을 사냥하지 않고 짐승 떼를 키우며 목초지를 따라 이동했다. 드디어 목축이 시작되었고, 이때부터 초원은 온대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강인욱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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