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10316/1/BBSMSTR_000000010227/view.do
<10> 돌궐의 붕괴
기사입력 2011. 03. 16 00:00 최종수정 2013.01.05 06:36
돌궐 붕괴 고구려에도 재앙 … 다음 차례는?
텅 빈 몽골 초원. 가축이 없는 초원은 풀이 무성해지는 법이다. 조드(dzud)는 초원에 휴식을 줘 소생시키는 자연의 순환사이클이다. 630년 돌궐 제1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이러한 일은 있었다. 유목민들은 초원을 탈출했다. 북쪽으로 설연타에 붙었고, 서역으로 이주했으며, 남쪽으로 중국에 투항했다. 몽골의 대초원은 텅 비었다. 필자 제공
624년 돌궐이 쳐들어와 장안을 공황에 빠트렸다. 당 태종 이세민은 군대를 뒤에 남겨 놓고, 단 100명의 기병을 데리고 적진으로 나아갔다. 지척의 거리에서 힐리 칸에게 말했다. “칸이시여, 당신이 정녕 용기가 있다면 남자답게 나와 일대일 싸움을 하는 것이 어떻소?”
힐리 칸이 웃으면서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힐리의 조카인 돌리(십발필)에게 일대일 결투 제안을 했다. 하늘을 찌르는 이세민의 객기였다. 결과적으로 결투는 없었다. 하지만 사나이에게 풍기는 카리스마는 돌궐과 당나라 병사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문은 초원과 중원을 거쳐 만주를 넘어 한반도에까지 퍼졌다. “힐리 칸이 이세민의 일대일 결투 제안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당 태종은 농경민이 사는 중국과 유목민 기마민족의 초원세계라는 전혀 다른 두 세계에 모두 정통한 사람이었다. 유교적 학문 능력과 더불어 기사(騎射)에 뛰어난 전사였고, 초원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626년 형제 둘과 10명의 조카들을 죽인 근친살해와 아버지를 연금한 불효는 중원의 유교학자들에게 자연을 거스르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초원에서는 허다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죽이고 흉노제국을 건설한 묵특 선우나 돌궐의 왕위계승 쟁탈전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당나라는 중원에서 한족 왕조가 복원된 것이었다. 하지만 앞서 북중국은 유목민인 선비족이 건국한 북위의 통치를 받으면서 야만화돼 있었다. 외래 유목민 정복왕조의 문화와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이세민은 초원의 정치게임에도 달인이었다. 그러한 그에게 기회가 왔다.
627년 초원에 자연 재앙이 밀어닥쳐 돌궐에 기근이 찾아왔고, 정치적 문제가 발생했다. 초원에서 힐리 칸의 통제력이 급격히 와해되고 있고, 그 휘하의 여러 부족도 흩어지고 있었다. 이제 당 태종이 기세를 펼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고구려 영류왕은 불안한 마음으로 초원을 바라봐야만 했다.
신강성 동북부와 몽골공화국의 북부에 철륵(鐵勒)이라고 통칭되는 15개의 부족이 있었다. 그 선조가 흉노(匈奴)였던 그들은 남북조시대 후기에 돌궐에 복속됐다. 그들의 대부분은 서돌궐의 휘하에 있었다. 그들 가운데 설연타와 회흘 2개를 비롯한 여러 부가 서돌궐의 힘이 약해지자 동돌궐의 힐리 칸 휘하에 들어갔다.
힐리 칸은 그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징수했다. 폭설의 자연 재해가 닥쳐 생산량이 급감했는데도 역시 그렇게 했다. 불만이 팽배했고, 627년 설연타와 회흘 두 부가 주동이 되어 철륵 여러 부가 힐리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힐리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그의 형 실필 칸의 아들 돌리(아사나욕곡)을 파견했다. 돌리가 10만 기병을 이끌고 몽골 카라코름 시의 북쪽에 위치한 마열산에 나타났다.
철저한 준비를 했던 회흘 추장 약라갈보살이 이를 습격해 대파했다. 돌리는 도망을 갔고, 약라갈보살은 천산(天山 : 항애산)까지 이들을 추격했다. 거기서 돌리가 이끌던 병사들 대부분이 포로가 됐다. 또한 설연타부의 추장 이남(夷男)이 동돌궐의 4개 기마군단을 모두 격파했다.
조카인 돌리가 도망쳐 오자 화가 난 힐리 칸은 그를 심하게 구타했다. “이 무능한 놈! 앞서 너의 휘하에 있던 동쪽의 해(奚)와 습 등 수십 부(部)가 이탈했고, 그것도 모자라 반란군에게 패해 병력을 모두 잃었다.” 삼촌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한 돌리는 초주검이 된 상태에서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힐리는 화가 치밀 때마다 감옥에서 돌리를 끄집어 내 다시 매질을 했다. 십여 일 감금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구타를 당해 온몸에 멍이 든 돌리는 삼촌을 증오하게 됐다. 친척들인 아사나씨(阿史那氏)들을 모두 배제하고 악독한 소그드 인들을 총애했던 삼촌 힐리가 이러한 환란을 불러온 장본인인데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궐 피지배 부족의 반란이 핵심부의 내분으로 번졌다. 매질을 당한 돌리가 삼촌 힐리에게 반란을 일으켰고, 당에 투항할 의사를 보였다. 당 태종은 삼촌과 조카 사이에 일어난 돌궐의 내분에 바로 개입하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누구 하나를 지원해 승자가 가려진다면 그가 다시 초원을 통일할 것이고, 결국 칼을 당으로 향해 돌릴 것이다. 당 태종은 그들이 더욱 치열하게 싸워 모두 철저히 힘이 고갈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듬해인 628년 서로의 군대를 잔인하게 죽이던 싸움에서 돌리가 밀리기 시작했다. 4월 11일 돌리는 다시 당에 구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 태종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로 피를 더 흘리라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돌리의 휘하에 있던 거란족 일부가 당나라에 투항했다. 그러자 힐리 칸이 제안을 해왔다. 그동안 힐리 자신의 앞잡이가 되어 당을 끈질기게 괴롭혀 왔던 양사도의 신변을 인도하겠으니 투항해 온 거란족을 달라는 것이다.
냉철한 당 태종은 그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양사도는 찢어죽일 정도로 미웠다. 하지만 당에 투항해 온 유목민 부족을 돌궐에 인도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초원의 모든 부족들에게 당 황제의 신용도가 하락할 것이며, 향후 누구도 당에 투항해 오지 않을 것이다. 태종은 신용을 잃는다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인지 잘 알고 있었다.
돌궐의 북방 변경에 사는 여러 부족이 힐리 칸에게 등을 돌리고 설연타의 추장 이남(夷男)에게 붙었다. 동쪽으로 만주에서 서쪽으로 서돌궐 접경지대까지 산재한 대부분의 유목 부족이 설연타부의 아래 뭉쳤다. 이제 당 태종이 초원의 정치에 개입했다. 그는 장군 교사망(喬師望)을 파견해 설연타의 이남에게 진주(眞珠) 칸의 칭호와 소 꼬리털 깃발(纛)과 북(鼓)을 줬다. 이로써 당의 원조를 보장받은 이남의 설연타부는 힐리 칸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629년 11월 23일 피지배 부족들과 조카 돌리의 반란으로 힐리 칸의 세력이 현저히 약해지자 태종은 초원으로 10만 대군을 파견했다. 630년 정월 총사령과 이정(李靖)의 기병부대 3000명이 정양(定襄:내몽골 허린킬)에서 힐리 칸의 군대를 급습했고, 추격해 음산(陰山)에서 격파했다.
10만을 참수했고, 힐리를 따르던 추장들과 그 수하 5000명을 포로로 잡았고, 가축 수십만 마리를 노획했다. 옛날에 돌궐로 시집가 살던 수나라 의성공주를 죽이고 그 아들 아사나첩라시를 잡아 포박했다. 임성왕 이도종에게 사로잡힌 힐리가 5만의 포로들과 함께 장안으로 들어왔다.
당 장안의 궁궐 순천루(順天樓)였다. 수많은 문물(文物)이 진열돼 있는 그곳에 힐리 칸이 개처럼 끌려나왔다. 그의 눈에는 기백이란 없었고, 몸은 앙상하게 야위어 있었다. 숙어진 초췌한 머리 아래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태종은 그에게 말했다.
“너는 힘을 믿고 잡초와 같이 싸우기를 좋아했다. 나는 너에게 비단과 금은보화를 수없이 보냈고, 중국 침략을 자제할 것을 거듭 부탁했다. 물자를 받을 때마다 너는 중국을 침략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너는 그것을 상습적으로 어겼다. 나의 농작물을 유린했고, 나의 자녀들을 잡아갔다. 하지만 너의 목숨은 살려주겠다. 살아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는지 네 눈으로 똑똑히 보아야 한다.”
역사에서 말하는 돌궐 제1제국이 붕괴되는 장면은 이러했다. 당 태종의 정신과 육체의 날개를 끊임없이 조여 왔던 돌궐이 제거됐다. 그것은 고구려에 재앙이었다.
고구려 영류왕은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것이다.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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