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110427/1/BBSMSTR_000000010227/view.do


<16> 당의 토욕혼 침공

기사입력 2011.04.27 00:00 최종수정 2013.01.05 06:45


실크로드 손에 쥔 唐 서역국으로 말 달리다


634년에 토욕혼(吐谷渾)의 칸 모용 복윤(伏允)이 보낸 사절이 장안에 도착했다. 그들은 중국을 통일했을 뿐만 아니라 동돌궐을 붕괴시킨 당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려 했다.


토욕혼은 몽골계 유목민인 선비족(鮮卑族)이 세운 국가다. 그들은 장성(長城) 지대에 살다가 티벳 고원의 동북부로 쫓겨나 현지인을 제압하고 국가를 세웠다.


북위(北魏) 때부터 실크로드의 주요 통로를 장악하고 있었다. 국제 중계 무역은 토욕혼의 주요한 재원의 하나였다.


당시 북위의 사절은 토욕혼의 중계에 의하지 않고서는 서역으로 갈 수 없었다.


중심지는 교통의 요지인 청해호 근처 복사성이었다. 서쪽으로 차이담(Tsaidam) 분지를 지나 타림 분지의 남도(南道) 지방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장안, 남쪽으로는 사천(四川)에서 양자강 하류의 건업, 북쪽으로는 몽고고원에 이르는 동서 교통로의 중심에 있는 상업왕국이었다.


청해호가 푸르게 빛나고 있다. 청해호 부근은 토욕혼의 중심지였다. 토욕혼의 몰락은 토번의 세력을 강하게 했고, 그 파장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북위가 붕괴되고 북중국이 분열되자 토욕혼은 새로이 급부상한 동돌궐제국에 봉신이 됐다. 수나라가 통일을 이룩한 후 돌궐에 대한 분열 공작을 지속했고 분열된 돌궐은 힘을 잃었다. 그러자 608년 돌궐의 지배에서 벗어난 철륵(鐵勒)이 토욕혼을 침공해 왔다. 토욕혼의 칸은 수나라에 사자를 보내 군사원조를 청했다. 수양제는 잔인한 우문술에게 지휘를 맡겨 군대를 보냈다.


국제정치에서 도와주는 것이란 거의 없다. 수나라 군대는 토욕혼을 돕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점령을 목표로 왔다. 수나라 군대는 토욕혼을 공격해 수천 명을 살해하고 그 수급을 획득했으며, 그들의 지휘자를 사로잡고 남녀 4000명을 노비로 만들었다.


얼마 후 수나라가 고구려 침공 실패로 인해 내란에 빠져 망했다. 군웅들이 서로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는 동안 토욕혼은 옛 영역을 다시 회복했다. 당시 군웅 가운데 하나였던 당고조 이연은 수대 포로로 잡혀 온 토욕혼의 칸 모용 복윤의 아들 모용순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었다. 때문에 복윤은 당고조에게 유리한 군사행동을 했다. 감숙 지방의 반란군인 이궤(李軌)를 공격해 줬고, 당고조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당고조는 그 대가로 복윤의 아들 순(順)을 토욕혼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토욕혼은 당나라와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됐다. 하지만 634년 당에 조공을 바친 후 귀국하던 토욕혼의 사절이 약탈을 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태종은 사절을 파견해 복윤을 질책했다. 그리고 당조정에 직접 찾아오라고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복윤은 병을 핑계로 당조정에 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들인 모용존왕을 위해 통혼할 것을 요구했다. 당태종은 쾌히 승낙했다. 대신 화번(和蕃)공주를 모용존왕이 직접 와서 맞이하라고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모용존왕은 오지 않았다. 당태종은 이를 빌미로 통혼을 거절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욕혼 내부에서는 반당적인 인물들의 발언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토욕혼의 왕 복윤(伏允)이 나이가 고령화되자 권력이 주요 대신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고, 이 기회를 이용해 당을 치자는 목소리가 커졌던 것이다. 당의 북서쪽 국경 난주(州)와 곽주(廓州)가 토욕혼에 약탈당했다.


당태종은 634년 이정(李靖·571∼649)을 시켜 토욕혼에 대한 대규모 정벌을 감행했다. 이정은 수 왕조에서 오랜 관직의 경력을 갖고 있었다. 당 왕조가 북중국을 통일한 이후 이정은 강남의 여러 반란 정권을 평정했고, 629년 말에는 동돌궐과의 전투에 참전했다.


이정은 토욕혼 원정에 설만철이 동행할 것을 청했다. 설만철은 기병전의 명수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돌파해 상황을 역전시키는 카리스마 넘치는 무장이었다. 설만철은 내란기에 군웅 양사도를 후원하는 돌궐군대에 포위된 적이 있었다. 부장으로 종군한 설만철은 순식간에 적진을 횡으로 돌파해 돌궐의 효장(驍將)을 참살했다. 그러자 적진이 혼란해지기 시작했고, 승기를 잡은 당군은 돌궐군을 대파했다. 설만철은 진격해 양사도를 포위하고 그를 습살했다. 이 광경을 성의 망대에서 본 양사도의 부하들이 항복했으며, 돌궐도 감히 와서 도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토욕혼과의 전투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발휘했다. 어느 전투에서 당의 여러 장수들이 선발로 각기 백여 기를 이끌고 나아가다가 토욕혼의 수천 기와 조우하게 됐는데, 이때 설만철은 단기로 적 수천 기 속에 들어가 싸웠다.


그런데 수천의 적들 가운데 설만철을 당해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설만철이 혼자서 적진을 종횡하고 있는 모습을 본 당의 장군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설만철이 무사히 돌아와 장군들을 종용하니 모두 함께 돌진했다. 적을 수천 급이나 베니 인마의 유혈이 낭자했다.


하지만 당군이 토욕혼의 본거지에 들어가는 데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토욕혼이 들의 모든 풀들을 불태워서 당군의 보급품 현지 조달이 어려워졌다. 군사들이 주리고 마초가 부족해 말들이 파리해져 갔다. 청해호로 흐르는 대비천으로 물러나 더 진격해야 될지를 놓고 회의를 했다. 반대하는 장군들도 있었지만 진격해 적지로 깊숙이 들어갔다.


설만철도 635년 5월 적수(赤水) 전투에서 토욕혼(吐谷渾)군의 창에 걸려 말을 잃고 낙마했다. 설만철은 경기병 수백을 이끌고 토욕혼군을 향해 선봉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토욕혼 기병 일부가 말에서 내려 장창(長槍)을 나란히 세운 보병 대열을 만들었다. 그것은 양군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와중에 이뤄진 순간적인 기병의 보병 전환이었다.


설만철 이하 기병들이 빽빽한 창들의 가시밭에 부딪쳤다. 뒤따라 오던 당의 기병들도 차가 밀리듯 밀려 정체됐다. 당나라 기병이 순간적으로 기동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측면과 후면으로 토욕혼의 또 다른 기병이 몰려왔다. 당군은 포위된 상황에서 말에서 내려 희망 없는 보병전투를 치러야 했고, 60∼70%가 전사했다. 설만철은 토욕혼의 기병이 갑자기 장창보병으로 전환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설만철은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돌궐인 계필하력이 수백 기병을 이끌고 적진을 뚫고 들어갔고, 이로써 설만철은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결국 이정과 그의 군대는 불모의 땅을 수천 리 행군한 지 5개월 만에 토욕혼의 주력을 따라잡았다. 청해호 동북쪽 황하의 수원지 근처였다. 몇 차례의 전투 끝에 이정은 토욕혼을 궤멸시키고, 많은 토욕혼 귀족과 수십만 마리의 가축을 노획했다.


당군의 정벌로 파괴된 토욕혼 내부에 형제 간의 골육상쟁이 일어났다. 복윤의 정실부인 소생의 아들 모용순은 중국에 볼모로 있는 동안 후계자 자리에서 제외됐다. 모용순은 토욕혼에서 그를 대신해 후계자로 지명된 다른 형제를 제거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모용순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래서 당태종은 그가 순종적일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의 유혈 쿠데타를 인정했다.


하지만 토욕혼에서의 정치적 상황은 매우 불안정했다. 중국화된 순은 백성들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으며, 휘청거리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당나라에 군사원조를 끊임없이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순은 635년 말 자신의 부하에게 살해됐다. 태종 치세의 나머지 기간 동안 당군은 여러 번 토욕혼에 출정했으며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시도는 계속됐다.


토욕혼이 불안정한 주된 이유는 당의 공격을 받고 약체화된 토욕혼은 휘하 부족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고, 오히려 토번(吐藩:Tibet)이 팽창하면서 그들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당군의 공격을 받고 이미 박살이 난 토욕혼은 파편화돼 갔다. 당은 이후에도 다른 서역의 많은 국가들을 공격해 그들의 군대조직과 시스템을 파괴했다. 그것은 당이 논갈이를 해 팽창하는 토번에 부드러운 토양을 만들어 주는 꼴이 됐다.


이렇게 세력을 확대한 토번은 훗날 당나라와 충돌했다. 청해호 부근은 실크로드 경영권을 놓고 당과 토번이 벌인 150년 전쟁의 주요 무대였다. 이 전쟁이 동방의 한반도를 지배하려던 당의 발목을 잡았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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