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려

한국사/세계사 2012. 2. 5. 20:51

비려

염수(鹽水, 시라무렌 강) 유역에 위치했으며 비여(肥如), 비려(碑麗), 패려(稗麗) 등으로 불렸던 것 같다. 여러 자료를 보면 비려가 거란족의 선조였다는 설이 많다. 반면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반대 입장을 말하기도 한다. 중국 사서는 비려가 선비족의 일파라 했고 현대에도 선비족거란족의 조상이라는 설이 있는데, 고구려와 대립한 연나라(전연, 후연)의 모용선비와는 또 다른 일파인 듯하다. 참고로 중국은 다른 민족을 혼동해서 부른 기록이 많으니 사견으로는 서로 다른 종족일 수도 또는 일부 혈연적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麗(려-리-여)자 때문에 그리고 선비족과 고조선의 연관관계 때문에 고구려와 종족적으로 연결시키기도 하는 것 같다.

http://blog.naver.com/knightblack/10109597265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B%B9%84%EB%A0%A4 

비려 - 위키

비려(碑麗)는 거란의 한 갈래라고 여겨지는 염수(鹽水, 시라무렌 강) 유역의 유목국가이다.
광개토대왕 때 고구려에 정복되었다. 패려(稗麗)라고도 한다.



출처 :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0b3003a  

비려 (稗麗) - 브리태니커 
 
고구려 광개토왕 때 정복된 거란(契丹)의 일파.
광개토왕릉비에 의하면 395년(광개토왕 5)에 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비려 정벌에 나서 '염수'(鹽水)에 이르기까지 부락 600~700영(營)을 공략하고 많은 우마군양(牛馬群羊)을 얻어 북풍(北豊) 등을 거쳐 돌아왔다고 한다. 비려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으나 시라무렌 강 유역의 유목민인 거란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A%B1%B0%EB%9E%80 

거란 - 위키 

거란(契丹) 또는 키탄(Khitan)은 5세기 중엽부터 내몽골의 시라무렌 강 유역에 나타나 거주하던 몽골계와 퉁구스계의 혼혈족이다. 일단 언어적이나 문화적으로 볼 땐 몽골계에 가깝다. 자신들이 사용한 명칭은 '키탄'이며, '키타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란식 이름이다. 지금은 사라진 민족이며,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다우르족(達斡爾族, Daur)이 거란족의 후예로 추정된다.
 
일찍이 고구려의 변경을 노략질하였으나, 광개토대왕의 공격을 받고 일부가 복속되었다. 이후 거란은 당나라에 복속되었다. 907년 야율아보기가 거란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요나라를 세우고 발해를 멸망시켰다. 요나라는 993년부터 1019년까지 고려에 쳐들어왔으나 패퇴했다. 거란 문자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멸망했다. 이후에는 대체로 한족과 몽골족에 동화되었고, 서요는 중앙아시아로 옮겨갔다.

어원

중국의 고 영어식 표현인 '캐세이(Cathay)'와 러시아어로 중국을 뜻하는 '키타이(Китай, Kitay)', 몽골어로 중국 또는 한족을 나타내는 '햐타드(Хятад, Hyatad)' 등은 모두 거란에서 유래하며, 거란인들이 스스로를 가리키던 명칭은 '키탄(Khitan)'으로 추정된다. 13세기 이전 아라비아어, 페르시아어 문헌에 거란은 '하타(우)' 또는 '히타(우)'라 불렸다. 특히 중앙아시아 이란의 페르시아어 지리서 연대기에는 소그드어의 시대에서부터 중국 전반을 가리키는 '치인(支那)' 또는 '치니스탄(震旦)( چينستان Chīnisān)'이라는 호칭이 존재하고, 13세기 중반까지 북부 중국을 지칭하는 '탐가쥬(탁발씨, طمغاج Ṭamghāj)' 등의 단어도 사용되었다.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C%98%A4%ED%99%98%EC%A1%B1 

오환족 - 신화위키
 
오환족(烏桓 또는 烏丸)은 허베이 성, 랴오닝 성, 산시 성, 베이징 근처와 내몽골 등 중국의 북부에 거주한 유목민이었다. 결과적으로 오환족은 흉노족에 의해 망했다.

삼국지에 이르기를 “오환족은 본래가 동호족으로 한나라 초기에 모돈 선우에게 나라를 배앗기자 나머지 무리들이 오환산으로 이동하여 살았기에 그 산이름으로 종족이름을 따왔다”고 하였다. 대홍안령산맥 동쪽을 넘어서 오환산으로 들어간 종족은 오환족(개순장족)과 선비산으로 들어간 종족을 선비족(비려 선비)으로 부르게 된것이다.

일부는 도망가 그 후 선비족이라 불리고, 일부는 조환산에 숨어들어 후일 조환족이라 불린다는데, 이 조환족이 오환족임은 거의 확실하다. 일설에 의하면 박혁거세가 오환족 추장이며 만주에서 흉노에 쫓겨 한반도 지금의 서울-보은-추풍령-상주 (사벌국) 등을 지나 경주에 정착하였다.

결국 조조는 유비를 공략하여 관우를 포로로 잡는다. 원소를 물리친 조조가 원소의 아들 원상을 추격하고 오환족 정벌을 준비할 때도, 참모들은 형주의 유표가 유비를 앞세워 허도를 습격하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서기 206년 조조가 오환족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궤멸시키자, 그 자리에 선비족의 일파인 모용씨가 유입하였다.

고구려 동천태왕이 요동군을 공격하여 차지하고 위나라를 압박했다 이에 위나라가 유주자사 관구검과 오환족을 동원해 고구려를 격파했고 백제는 위나라의 군대가 빈틈을 노려 낙랑군(하북성 광평부일대)을 차지했다.



출처 :  http://www.historynews.kr/sub_read.html?uid=750&section=sc7

비려(碑麗)와 염수는 어디인가? - 역사복원신문 

(1면 7행) 영락5년은 을미년으로 왕은 비려가 고구려인들을 돌려보내지 않기 때문에 몸소 토벌에 나섰다. 부산과 부산을 지나 염수에 이르러 3부락 6~7백명을 파하고 소, 말, 양떼를 헤아릴 수 없이 노획했다. 그곳에서 돌아오면서 양평도를 거쳐 동으로 왔다. 동래#성, 역성, 북풍에 이르러 왕은 사냥준비를 시켰다. 순유와 사냥을 하며 돌아왔다. 
(원문) 永樂五年, 歲在乙未, 王以碑麗不歸#人, 躬率往討, 過富山負山至鹽水上, 破其三部落六七百營, 牛馬群羊, 不可稱數, 于是旋駕, 因過襄平道, 東來#城, 力城, 北豊, 王備獵, 游觀土境, 田獵而還.   

위 기록은 <삼국사기>에 없어 학계에서는 외면하고 있으나, <고구려사초.략>에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비리(卑離)가 점차 왕의 가르침을 어기기에 친히 파산(叵山), 부산(富山), 부산(負山)을 정벌하고 염수까지 이르면서 그들의 부락 700여 곳을 깨뜨렸고, 소.말.돼지를 노획한 것이 만으로 셈이 되었다.” 
 
비문의 비려(碑麗)나 사서의 비리(卑離)는 한서지리지에 나오는 요서군 비여(肥如)와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비여는 비려나 비리의 이두식 문자 표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래 <한서지리지>에서 보듯이 비여는 고죽성이 있는 영지와 같은 경내인 유주에 속한 요서군에 있으며, 당취수(압록수)와도 같은 경내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죽성이 있는 영지(令支)는 지금의 산서성 운성시 영제(永齊)시이다.
(요서군 辽西郡),秦置。有小水四十八,并行三千四十六里。属幽州。户七万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万二千三百二十五。县十四:且虑,有高庙。莽曰鉏虑。海阳,龙鲜水东入封大水。封大水,缓虚水皆南入海。有盐官。新安平。夷水东入塞外。柳城,马首山在西南。参柳水北入海。西部都尉治。令支,有孤竹城(고죽성이 있는 영지)。莽曰令氏亭。肥如(비여),玄水东入濡水。濡水南入海阳。又有卢水,南入玄。莽曰肥而。宾从,莽曰勉武。交黎,渝水首受塞外,南入海。东部都尉治。莽曰禽虏。阳乐,狐苏,唐就水至徒河入海。徒河,莽曰河福。文成,莽曰言虏。临渝,渝水首受白狼,东入塞外,又有侯水,北入渝。莽曰冯德。cb63。下官水南入海。又有揭石水、宾水,皆南入官。莽曰选武。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91357 

'오만한' 광개토태왕, "복종 않으면..." - 김종성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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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려족은 비려족 혹은 과려족이라고도 불린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광개토태왕 편에 거란족이 등장한다는 점을 근거로 "패려족이 거란족이 아니겠느냐?"고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피력했다.
 
유목민족인 선비족의 후예인 거란족은 광개토태왕 시절만 해도 '거란'이라 불리지 않았고 당시의 거란족은 모용씨나 우문씨 같은 정치세력에 편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란'이라 불릴 만한 또 다른 선비족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채호의 주장이다. 그는 중국 사료인 <위서>나 <북사> 등을 근거로, 패려족은 흉노족의 일파로서 지금의 몽골 등지에서 활약했다고 설명했다.
... 



출처 :  http://www.coo2.net/bbs/zboard.php?id=con_4&no=18752 

광개토대왕비문의 염수는 산서성 요섬거(姚暹渠) - coo2.net
# 일부만 가져왔습니다.

** 광개토대왕릉비문 제1면 6행-제1면 8행 
永樂五年歲在乙未, 王以<□(碑,稗)麗>不□(歸,貢)□(人)□躬率往討. 過<富山><負山>至<鹽水>上破其□(三,丘)部□(族,洛)六七百 營. 牛馬群羊不可稱數. 於是旋駕因過<襄平道><東來□城><力城><北豊>. □(王,五)備□(道,海), 遊觀土境, 田獵而還
===> 영락(永樂) 5년 을미년(乙未年, 서기395년)에 비려(碑麗)가 조공을 하지 않으므로 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이를 토벌하였다. 부산(富山)과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 위에 이르러, 그곳의 세 부족, 6, 7백 부락을 깨뜨리니 소.말 뭇 양(羊)을 얻은 것이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어가(御駕)를 돌이켜 양평도(襄平道) 동래□성(東來□城), 역성(力城), 북풍성(北豊)을 지나니, 왕은 도로를 닦게 하고 지경(地境)을 돌아보고 사냥을 하면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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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에 대한 한자를 보면 비려를 패려(稗麗)나 비려(碑麗)로 표기하는 것도 있는 패려(稗麗)로 써 놓고는 비려라고 읽는 것도 있는 듯하다.

또 양평도(襄平道)도 望平道로 표기하는 것도 있으며 그 다음에 등장하는 □城><力城> 의□城을 유성(柳成)으로 표기하는 것도 있다.

어쨋든 뭐라고 표기를 했고 뭐라고 읽던,

패려(稗麗)라고 한다면 이것의 의미는 稗라는 글자가 작다(細)라는 뜻도 있으므로 패려(稗麗)는 고구려가 작은 句麗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감히 麗라는 글자를 붙일리가 없다.

비려라고 부르며 해석을 하는 경우를 보면  진서(晉書)에 등장하는 선비족의 나라인 비리국(裨離國)이라고 推定하면서 앞에 글자의 음이 “비”가 같아서 그렇게 인식하는 듯도 하다. 

그런데 비려의 音이 같은 것으로 친다면 비려=비여肥如가 될수 있을 것이다.
평주(平州)에 비여국(肥如國)이 있기 때문이다.

비여국(肥如國)은 또 노룡현인데 노룡현은 요서에 있었기에 요동을 점유하고 있던 고구려가 비여국에게 조공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공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

7. 新校本後漢書/列傳/卷八十五 東夷列傳第七十五/ ﹡高句驪 - 2814 -
句驪一名貊(耳).有別種,依小水為居,因名曰小水貊.出好弓,所謂「貊弓」是也.[一] 
新校本後漢書/列傳/卷八十五 東夷列傳第七十五/ ﹡高句驪 - 2814 -
[一] 魏氏春秋曰:「遼東郡西安平縣北,有小水南流入海,句驪別種因名之小水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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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句驪는 貊이다. 구려의 별종이며, 소수에 의거하여 살기에 소수맥이고 그것이 비려(碑麗)이고 패려(稗麗)다.
 
...
 
왜냐하면 요동지역에는 요동선비족이 있었고, 현토 지역에는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맥족이 있었기 때문에 신대왕이 海東을 뜻에 둔 공손도와 협력 공격한 富山의 賊은 예맥족이었고, 광개토 대왕은 그 富山과 浮山을 지나서 鹽水 上에 이르러 비려,패려,구려를 공격한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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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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