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cr.d_0002_0050_0020
2. 국내도읍기(國内都邑期, 集安)
『삼국사기』에 의하면 유리왕 22년인 기원 3년에 도읍을 천도하여 장수왕 15년 427년에 평양으로 천도할때까지 약 420여년간 도읍으로 역할을 하였다. 국내 지역 지리적 조건은 북으로 방어선의 구실을 하는 노령산맥이 있고, 남으로 수운의 이 점을 이용할 수 있는 압록강을 끼고 있으며, 그 사이에 비옥한 충적평야 지대가 발달하여 도시가 자리잡을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 노령산맥에서 발원하는 통구하는 북에서 남으로 흘러 국내성 서쪽을 지나 압록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현재 집안 일대는 고구려의 도성 유적으로서 평지성인 국내성과 산성인 환도산성, 그리고 많은 고분군이 분포해 있다.
국내성은 평지성으로 동·북·서쪽으로 용산·우산·칠성산이 둘러쌓고 있으며, 북쪽 2.5km 거리에는 환도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위성사진을 통해서 국내성의 평면이 방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2,686m이다. 성문은 본래 남벽과 북벽에 1개씩, 동벽과 서벽에 2개씩 모두 6개 있었다. 이들 성문을 연결하는 대로가 고구려시대에도 국내성의 내부도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성 안에서 여러 건물터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환도산성은 국내성에서 북쪽으로 2.5km 거리에 있다. 해발 676m되는 험준한 산으로 산성 주위에는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산성 남쪽 아래에는 압록강의 지류인 통구하가 흐른다. 산성은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으며, 환도산성 정상부에서 산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산능선의 자연지세를 따라 축조되었기 때문에 산성의 성면은 불규칙한 형태이다. 성벽의 총길이는 6,951m이다. 현재 확인된 문지는 모두 7개이며 가장 낮은 계곡 입구에 있는 남문이 산성의 정문으로 기능하였다.
성 안에는 건물지가 있는데, 성안 동북쪽의 넓은 경사면에 자리잡은 궁전터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있다. 현재 열을 이룬 수 십개의 초석과 다량의 기와가 발견되고 있다. 비상시에 왕이 이곳에 머물렸을 것이다. 집안 지역은 고구려가 420여년간 도읍으로서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궁성이나 고분 뿐 아니라 의식을 거행하던 몇몇 유적이 확인된다. 국내성에서 동쪽으로 0.5km 떨어진 동대자 유적은 동서 500m, 남북 150m, 지표의 높이 8~9m의 대지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지의 남쪽으로는 탁트인 충적 평원이 펼쳐져 있다.
졸본 지역에서 국내 지역으로의 천도는 2대왕인 유리왕부터 19대인 광개토왕까지 18명, 장수왕까지 포함시킨다면 19명의 왕릉이 분포되어 있다. 우산과 칠성산고분군, 마선고분군에 왕릉이 분포되어 있다. 국내 지역 서쪽 끝에 서대총과 천추총이 자리잡고 있고, 동쪽 끝에는 임강총이 북쪽 끝에는 장군총이 위치하고 있다. 이들 고분에 대하여 묘의 축조 방식이나 출토유물을 분석하여 고구려 왕들을 비정히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위성 사진을 통해서 보면 왕릉으로 비정되는 거대 적석총은 국내성의 동쪽과 서쪽 산기슭에 주로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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