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6731 (연노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9984 (소노부)
연노부(涓奴部), 소노부(消奴部)
연노부(涓奴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6731
1997년 노태돈
고구려시대의 정체세력집단체.오부의 하나이다.
『삼국지』 동이전(東夷傳) 고구려조에 처음 나타난다. 『한원(翰苑)』에 인용된 『위략(魏略)』과 『후한서』 고구려전에는 소노부(消奴部)로 되어 있다. 그래서 ‘연(涓)’을 ‘소(消)’의 잘못으로 보고, 소노를 『삼국사기』에 전하는 주몽(朱蒙)과 패권을 다투었다는 비류국(沸流國)의 왕인 송양(松讓)과 같은 실체로 보는 설이 제기되어 왔다.
또한, 소노의 ‘노’를 ‘나(那)’·‘내(內)’로도 표기한 것은 ‘내[川]’의 음을 딴 것이고, 양(讓·襄·壤)으로 표기한 것은 그 뜻을 새긴 것이다. 그 뜻은 모두 냇가[川邊]나 계곡의 집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송(松)과 소(消)는 그 음이 통하므로, 소노와 송양은 같은 집단을 다르게 표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송양왕은 특정한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소노의 장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송양왕의 비류국이란 비류수(沸流水) 상류에 있던 소노부로 이해된다.
한편, ‘연(涓)’을 ‘소(消)’자로 보는 견해에 대하여, 『후한서』가 의거한 『위략』과 『한원』에 인용된 『위략』은 이본(異本) 『위략』으로서 『삼국지』의 편찬에 기본자료가 되었던 원래의 『위략』보다 후대에 와서 옮겨 적은 것이기 때문에 그 사료적 가치가 떨어지므로, 『삼국지』의 기사에 따라 ‘연(涓)’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설도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지(三國志)
한원(翰苑)
후한서(後漢書)
「고구려국호고(國號考)」 (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박영사,1976)
『동이전(東夷傳)의 문헌적 연구』 ( 전해종 ,일조각,1980)
소노부(消奴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9984
1996년 노명호
고구려시대의 정치 세력체.
오부(五部) 중 하나로, 계루부(桂婁部) 출신 왕족 이전의 왕족을 배출한 부(部)이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연노부(涓奴部)라고도 표기되어 있고, 『삼국사기』에는 비류부(沸流部)·비류국(沸流國)으로도 나타난다.
국가 체제 성립 후에는 서부(西部) 또는 우부(右部)라 불렀다. 『삼국지』에는 계루부에서 왕이 나오기 전에 소노부에서 왕이 나오던 때가 있었음이 전한다.
소노부와 계루부의 왕위 교체 시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으나, 태조왕 대 무렵으로 추정함이 유력하다. 이렇게 보면 『삼국사기』에서 태조왕 전의 왕들은 실제로는 계루부의 군장(君長)을 고구려의 왕으로 해놓은 것이 되며, 이는 왕실의 유일성을 내세우려는 계루부 왕족의 역사 서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소노부에서 왕을 배출한 것도 여러 대에 걸쳐 있었으리라 추정되지만, 현재 소노부 출신의 왕명으로 전해지는 것은 송양왕(松讓王)뿐이다. 계루부가 왕권을 차지한 뒤에도 소노부의 전 왕족은 계속 큰 세력으로 남아 계루부 왕족 및 절노부의 왕비족과 함께 고추가(古鄒加)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었다.
특히 국가 체제가 확립되기 전에는 소노부 전 왕족은 계루부 왕족과 대등하게 독자적인 종묘(宗廟)를 유지하고 영성(靈星)주 01)과 사직(社稷)에 대한 제의(祭儀)도 행하며, 전 왕족으로서의 권위를 공식적으로 과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제 왕권이 성립되고 국가 체제가 정비되는 소수림왕 대 무렵부터는 소노부의 전 왕족으로서의 권위가 격하되었다.
그리고 고국원왕 말년부터 광개토왕 대 초에 걸쳐 이루어진 제례법의 개혁을 계기로, 계루부의 종묘만이 고구려의 유일한 종묘로서 확립되고, 소노부는 전 왕족으로서의 공식적인 지위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한원(翰苑)
「고구려신라의 관계조직의 성립과정」 ( 김철준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총,』 1956 ; 『한국고대사회연구』,박영사,1975)
「삼국시대의 부(部)에 관한 연구」 ( 노태돈 ,『한국사론』 2,서울대학교국사학과,1975)
「高句麗五部及五族」 ( 池內宏 ,『東洋學報』 16-1)
「高句麗五部五族考」 ( 今西龍 ,『朝鮮古史硏究』,1937)
주석
주01 농경을 주관하는 고구려의 토속적인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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