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9792 (절노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6724 (연나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1252 (제나부)


절노부(絶奴部), 연나부(椽那部), 제나부(提那部)



절노부(絶奴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9792 

1995년 노명호


오부(五部) 가운데의 하나이다. 계루부(桂婁部)·소노부(消奴部)와 함께 연맹체시대 고구려의 대세력을 이루었다. 『삼국사기』에는 ‘연나부(椽那部)’·‘제나부(提那部)’로도 표기되었으며, 국가체제성립 후에는 북부(北部)·후부(後部)·흑부(黑部)로도 불렸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절노부가 대대로 계루부의 왕족과 혼인하는 왕비족이며, 그로 인하여 그 대가(大加)주 01)는 왕족인 계루부의 대가와 전왕족(前王族)인 소노부의 대가와 함께 ‘고추가(古鄒加)’라는 칭호를 가질 수 있었음이 전한다.


이 『삼국지』의 기술은 2, 3세기를 전후한 연맹체시대의 상태로서, 이 무렵 『삼국사기』 기록에도 ‘연나부’ 또는 ‘제나부’ 출신의 왕비들이 나타난다. 당시 왕비족으로서의 절노부세력은 계루부왕족의 주요 제휴세력이었으며, 왕위의 계승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지(三國志)

한원(翰苑)

「고구려왕비족고(高句麗王妃族考)」 ( 이기백 ,『진단학보』 20,1959)

「삼국시대의 부(部)에 관한 연구」 ( 노태돈 ,『한국사론』 2,서울대학교국사학과,1975)


주석

주01 大族長(대족장)을 말함.




연나부(椽那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6724 

1997년 노태돈


고구려시대의 정치세력집단체.오부의 하나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세기 후반에서 3세기에 걸쳐 연나부 출신 귀족이 계루부(桂婁部) 왕실과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었다. 『삼국지』 고구려전에서 전하는 계루부 왕실과 여러 대에 걸친 혼인관계를 맺어 왔다는 절노부(絶奴部)가 이 연나부와 같은 실체로 여겨진다.


연나부의 장이 전(前) 왕실인 소로부(消奴部)의 장과 함께 고추가(古鄒加)라고 칭하는 등, 당시 연나부는 오부 중에서 유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계루부 왕실이 연나부의 귀족과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었던 것은 연나부 세력과 연합하여 오부내의 여타 세력들을 억제하고 중앙집권력과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연나부와 왕실과의 혼인관계는 3세기 말 이후는 확인되어지지 않는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지(三國志)

「고구려왕비족고(高句麗王妃族考)」 ( 이기백 ,『진단학보』 20,1959)

「삼국시대 부(部)에 관한 연구」 ( 논태돈 ,『한국사론』 2,서울대학교 국사학과,1975)




제나부(提那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1252

1995년 노태돈


고구려시대의 중요 정치집단체.고구려 5부의 하나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고국천왕 2년 2월 조에 “왕비는 제나부 출신이다. ”고 한 기사에서 딱 한번 이 부의 명칭이 보인다.


그런데 고국천왕 12년조에서 왕후의 친척들을 연나부(椽那部) 소속이라고 하였고, 당시 왕실은 연나부 출신 사람과 대대로 혼인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므로 제나부는 연나부를 잘못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만약, 그렇다면 제나부, 즉 연나부는 『삼국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 전하는 절노부(絶奴部)와 같은 부가 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지(三國志)

「고구려왕비족고(高句麗王妃族考)」 ( 이기백 ,『진단학보』 20,1957)

「삼국시대의 ‘부(部)’에 관한 연구」 ( 노태돈 ,『한국사론』 2,서울대학교국사학과,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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