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1877 (순노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4976 (환나부)



순노부(順奴部), 환나부(桓那部)



순노부(順奴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1877

1995년 노명호


고구려 초기의 정치세력체.오부(五部)의 하나이며, 환나부(桓那部)와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국가체제가 정비되면서 그 본래의 명칭 외에도 동부(東部)·좌부(左部)·상부(上部)·청부(靑部)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내용


순노부는 고구려 초기에는 계루부나 소노부, 또는 연노부에 비하여 두드러진 세력을 떨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191년(고국천왕 13) 연나부(椽那部)의 반란을 평정한 뒤 정치를 새롭게 하려는 국면에서, 귀족들의 공동추천에 의하여 왕으로부터 국사를 일시 위임받았던 안류(晏留)가 동부, 즉 순노부 출신인 것을 보면, 다른 4부에 비하여 큰 손색 없이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원 翰苑』에 인용된 위략(魏略)의 기사에 의하면, 내부(內部)주 01)가 비록 왕의 종족이지만 그 반열은 동부, 즉 순노부의 아래라 하였으며, 그 까닭은 나라에서 동쪽을 으뜸으로 섬기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것은 순노부가 국가적 제의(祭儀)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졌던 것을 전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말기의 연개소문도 그 출신이 동부 또는 서부라 전해지고 있으나 그가 순노부에 속하였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지(三國志)

후한서(後漢書)

한원(翰苑)

신당서(新唐書)

「고구려·신라의 관계조직(官階組織)의 성립과정」 ( 김철준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총,』 1956)

「삼국시대의 ‘부(部)’에 관한 연구」 ( 노태돈 ,『한국사론』 2,서울대학교국사학과,1975)

「高句麗の五族及ひ五部」 ( 池內宏 ,『東洋學報』 16-1,1926)

「高句麗五族五部考」 ( 今西龍 ,『史林』 6-3,1927 ; 『朝鮮古史の硏究』,國書刊行會,1937)


주석

주01 계루부




환나부(桓那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4976

1997년 노태돈


삼국시대 고구려의 5부에 해당하는 정치집단체. 


초기에 있었던 부(部)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에는 ‘환나부’ 또는 ‘환나(桓那)’로 기록되어 있다. 환나부를 『삼국지(三國志)』 동이전 고구려조에 전하는 5부 중 계루부(桂婁部)와 같은 실체로 추정하는 설도 있고, 순노부(順奴部)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지(三國志)

『국역삼국사기(國譯三國史記)』(이병도,을유문화사,1977)

「삼국시대(三國時代)의 부(部)에 관한 연구」(노태돈,『한국사론(韓國史論)』2,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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