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hm/view.do?levelId=hm_012_0030
백제의 관직 선출과 정사암
又虎嵓寺有政事嵓. 國家將議宰相, 則書當選者名或三四, 凾封置嵓上湏, 臾取看名上有印跡者, 爲相故名之.
『三國遺事』卷2, 「紀異」2 南扶餘⋅前百濟⋅北扶餘
또한 호암사(虎嵓寺)에는 정사암(政事嵓)이 있다. 국가에서 장차 재상(宰相)을 의논할 때 뽑을 만한 사람 서너 명의 이름을 써서 상자에 넣고 봉하여 바위 위에 두었다가 얼마 후에 열어 보아 이름 위에 도장이 찍힌 자국이 있는 사람을 재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삼국유사』권2, 「기이」2 남부여⋅전백제⋅북부여
이 사료는 고대 국가 당시 귀족 회의였던 정사암 회의에 관한 기록이다. 삼국 성립 초기에는 왕이 제도적으로 존재했으나 이들은 대개 주변 소국의 병합 또는 연맹을 통해 형성된 국가의 대표자라는 의미가 컸다. 이로 인해 삼국 초기의 왕권은 연맹 과정에서 지배 계층으로 편입된 귀족 세력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삼국 초기에는 왕을 중심으로 하는 집권적인 정치 운영보다는 귀족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운영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고구려의 제가 회의, 신라의 대등 회의(또는 화백 회의)와 같은 귀족 회의체를 통한 국사 운영이었다. 백제 역시 국가 형성 과정에서 중앙 귀족화된 수장층을 중심으로 한 회의체가 있었으며, 그 회의장소는 ‘남당(南堂)’이라 불렸다.
한편 삼국의 발전과 더불어 귀족 세력이 확대되고 관등이 분화⋅재편되는 과정에서 귀족 회의는 그 구성에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귀족 회의의 전통은 지속되었으며, 신라의 화백 회의와 고구려의 오관 회의(五官會議) 등은 최고 귀족 회의체로서 국사를 관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고 관등 보유자인 고구려의 국상(國相), 신라의 이벌찬(伊伐湌)이 이러한 귀족 회의체에서 의장을 맡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백제에서도 귀족 회의가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왕(聖王, 재위 523~554) 대에 22부사 체제와 관등 체계가 정비되면서 국가 통치는 국왕을 중심으로 한 집권화된 지배 체제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이나, 그렇다고 국왕의 단독 결정으로 행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백제에서는 좌평(佐平)이 직무를 분담하는 6좌평 체제로 개편되었고, 이들의 합의에 의해 통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좌평을 중심으로 한 귀족 회의에서 재상(宰相) 선출을 비롯한 중요한 국사가 논의되었고, 이를 통해 왕권에 대한 견제도 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사암 회의(政事巖會議)는 백제에 이러한 귀족 회의체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들 귀족 회의에는 회의를 이끌어 갈 의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정사암 회의에서 선출된 재상이다. 일반적으로 재상은 최고 관등을 가진 자로서 국사를 총괄하는 이를 지칭한다. 그런 점에서 재상은 귀족 회의 의장직을 겸했을 가능성이 크다. 6좌평 중 명칭이 가장 먼저 보이고 왕명 출납 업무를 담당했던 내신좌평(內臣佐平)이 재상이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와 달리 상좌평(上佐平)의 명칭에 주목해 이를 6좌평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로 보아 재상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정사암 회의와 같은 귀족 회의 체제가 집권적 고대 국가가 성립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는 것은 고대 국가에서 왕권의 한계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고대 국가의 정치 운영 형태, 혹은 권력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귀족 회의체의 존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삼국시대의 왕과 권력구조」,『한국사학보』12,김영하,고려사학회,2002.
「백제왕위계승고」,『역사학보』11,이기백,역사학회,1959.
「백제의 좌평」,『진단학보』45,이종욱,진단학회,1978.
「백제 22부사체제의 성립과정과 그 기반」,『한국고대사연구』54,정동준,한국고대사학회,2009.
『백제 사비시대의 정치사 연구』, 김주성,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0.
『백제정치사연구』, 노중국, 일조각, 1988.
관련 이미지
정사암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i/view.do?levelId=ti_006_0100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id/sy_002r_0010_0200_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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