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9229


"전두환 정부는 수색 시작 닷새 만에 철수 계획 세워"

[주장] KAL 858,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정부가 나서야

20.02.05 09:41 l 최종 업데이트 20.02.05 09:41 l 박강성주(truthtrouble)


▲  지난 1월 23일 대구MBC는 1987년 미얀마 상공에서 실종된 "KAL 858기"로 추정되는 동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보도된 "KAL 858기"로 추정되는 동체 모습. ⓒ MBC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두고 남아 있는 이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 아버지는 그가 가족들 곁에 있기를 바랐을 것이라며 집 앞에 무덤을 만든다. 하지만 죽은 이가 남긴 일기장에는 반대되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결국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은 그의 바람을 존중하기로 한다. 그리고 집 앞 무덤에서 화장된 유골을 파내어 한때 그가 머물렀던 해외 어느 곳으로 찾아간다. 한 줌의 재는 그렇게 다시 뿌려진다. 덴마크 드라마 <주님의 길들(Herrens Veje)>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장면은 죽음에 대한 해석이 누군가에 의해 독점될 수 있는지, 그리고 죽은 이의 목소리는 어떻게 대변될 수 있는지에 대해 중요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 이 드라마가 부럽게(?) 느껴질 수 있다.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죽음이 '확정'되었고 유해가 있다. 그런데 이른바 실종사건들은 어떨까. 죽었다는 것이 확실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건들. 말만 무성할 뿐 유해가 발견되지 않은 사건들. (북쪽의 테러라고 알려진)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2020년 1월, 그 과정에 논란이 있긴 했지만 대구 문화방송(MBC)이 KAL 858기의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들을 발견했다. 방송사가 미얀마 안다만해역 수심 50m 지점에 있는 물체들을 수중 카메라로 촬영해온 것이다. 사건 직후부터 수많은 '진상규명' 노력이 있었는데, 이번 일은 가장 극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의아해할 수도 있다. '아니, 이미 끝난 사건인데 왜 또 시끄럽게 만드는가?' '노무현 정부 때 재조사를 하고, 그래서 수사 결과가 맞다고 결론 나지 않았는가?'


첫째, 이 사건은 '기본'이 안 돼 있기 때문에 계속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기본 가운데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수색이 그렇다.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열람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전두환 정부는 수색 시작 닷새 만에 철수 계획을 세우고, (아무것도 발견하지 않은 상태에서) 열흘 만에 수색단을 철수시켰다. 공교롭게도 그 뒤에 구명보트와 기체 잔해로 보이는 물체가 나왔는데, 잔해라고 주장되었던 물체는 감정 결과 폭파 흔적이 없다고 나오자 폐기된다.


둘째, 그렇게 기본을 무시했던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2005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원회)'가 재조사를 시도했다. 위원회는 안다만해역에서 수색을 하여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했지만, 그것은 바위와 산호로 밝혀졌다. 더군다나 수색 관련해 실종자 가족들의 참여를 약속했지만 이를 어기고 진행한 상태에서 나온 결과였다.


그리고 또 다른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폭파범이라고 알려진) 김현희 조사도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국정원 발전위원회는 "사건의 실체와 관련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란이 지속되지 않도록 근거 없는 의혹 제기"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다(조사보고서, 560쪽).


기본을 지키지 않았던 역대 정부

 

▲  지난 1월 30일 KAL858기 가족회와 진상규명위원회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KAL858기 추정 동체 인양 및 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처음부터 기본을 챙기지 않았던 전두환 정부. 그리고 뒤늦게 기본에 충실하려 했던 노무현 정부(국정원 위원회와 별도로 진실화해위원회가 재조사를 시도했지만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혀 중단됨). 아쉽게도 KAL 858기 사건 관련해 지금껏 기본이 세워지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방송사도 나섰다. 참고로, 2018년 11월 또 다른 방송사인 JTBC가 기체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를 가져온 적이 있다. 미얀마 어부가 건져 올린 것을 들여왔는데, 나중에 KAL 858기의 것이 아니라고 밝혀진 걸로 안다.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가족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려는 노력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기체 잔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 물체들이 발견됐다. 특히 꼬리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흔히 '블랙박스'로 알려진, 비행자료기록장치(FDR)와 조종실음성기록장치(CVR)가 이 부분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검증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검증을 위해서는 물체들을 건져 올려야 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여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로서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 사건 자체가 논쟁적이기도 하지만, 특히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럴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래서일까. 정치권의 '이상한 무관심'이 의문이다. 정동영 대표를 중심으로 수색을 요구한 민주평화당을 빼고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렇지만 이번 발견은 그냥 넘어가기에는 참으로 중대한 사안이라 하겠다.


KAL 858기 사건이 일어난 지 올해로 33년. 지금까지 기본을 지키지 않았던 역대 정부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는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가 움직여야 한다. 현 정부는 이미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2019년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가족회 및 관계자와 협의가 진행됐고, 결과적으로 낙마하기는 했지만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가 청문회에서 수색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새로운 계기가 마련됐다. '기본'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부를 간절히 바란다. 실종자 가족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정부가 KAL 858기 수색에 빨리 나서야 한다. 너무나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KAL 858기 사건 연구자입니다. 2007년에 <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김현희 사건과 ‘분단권력’ >, 2015년에 < 슬픈 쌍둥이의 눈물: 김현희-KAL858기 사건과 국제관계학 >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