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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없어서 달았습니다.



백암성 (白巖城) 부속시설


백암성 답사 경로
2019년 봄 고구려답사 3일차 안내 (2) : 백암성 - 김용만  https://tadream.tistory.com/26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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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성문(城門)

남쪽 절벽이 서쪽으로 점차 기울어져 하안(河岸)과 비슷하게 낮아진 곳에 서남문이 있는데, 정문으로 추정됨(林直樹, 1994; 李鴻業, 1999). 1944년 조사 때에는 농가가 계단형으로 밀집해 있었기 때문에 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함(三上次男, 1990). 산수(山水)가 아래로 흘러가는 배수구이기도 함.

서(북)문은 서벽 북단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三上次男, 1990)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음.
동북문은 2010년 발굴조사 때, 동벽 북단의 1호 치 근처에서 문지가 발견되었다고 함(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홈페이지).


배수시설(排水施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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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비 0.66m, 높이 0.22m. 


서남문이 배수구의 역할을 담당함. 동벽 남단 기단에는 장방형 구멍이 있는데, 그 용도는 배수시설로 추정됨. 이러한 시설은 단동 호산산성(虎山山城) 남문터에서도 볼 수 있음.



2. 북


치(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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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8.4m, 너비 5.2m, 높이 7.2~7.8m, 쌓은 돌 33~37층(陳大爲, 1995); 

길이 8.4m, 너비 5.2m, 높이 7~8m, 쌓은 돌 33~38층(王綿厚, 2002); 

길이 5.3m, 너비 5m(東潮·田中俊明, 1995); 길이 6m, 너비 6m(馮永謙, 1997) 등

서쪽에서부터 세 번째 치의 길이 5.3m, 너비 5.06m(1944년 조사 당시) 


북벽 동단, 즉 동북모서리에서 서쪽으로 250~260m 범위 안에 약 70m 간격으로 치 5개(林直樹(1994)는 9개가 있다고 기록함)가 있음. 다만 가장 서쪽의 1호 치는 없어졌고, 4개 만이 남아 있음. 4개의 치 가운데 서쪽으로 1~2호 치는 원각방형이라는 고구려시기의 원래모습을 간직하고 있음. 반면 3~5호 치는 기단부만 고구려시기의 굽도리양식을 간직하고 있고, 상단부는 후대에 개축되면서 모서리가 직각으로 각이 져 있음(여호규, 1999). 치는 60㎝×31㎝ 크기의 성돌을 수직으로 규칙적으로 쌓아 올렸음. 치 아랫부분은 계단형태로 전방을 향해 튀어나오게 하여 기저(基底)를 보강하는 퇴물림쌓기로 구축하였음. 또한 모서리를 둥글게 조정하는 굽도리양식이 채용됨. 이러한 축조방법은 평양 장안성(林直樹, 1994), 심양 석대자산성(여호규, 1999)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임. 치의 하단부를 보면 안쪽에 두꺼운 성돌로 1단을 축조할 때 바깥쪽에는 약간 납작한 돌로 2단을 축조한 모습을 볼 수 있음. 이렇게 12~13층 정도를 쌓아 올렸는데, 대체로 장력을 분산하여 성벽의 붕괴를 예방하려는 축성법으로 추정됨(여호규, 1999). 치가 있는 구간이 평지에 있고 성벽의 높이를 볼 때, 방어용을 제외하고 성벽 안의 석대(石臺)와 함께 성벽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기능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2010년 발굴조사 때, 서북벽에서 치 4곳이 발견되었다고 함(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홈페이지).



석대(石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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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길이 2~8m, 남북 너비 3~4m, 높이 2~4m 


치가 있는 성벽 내면에는 두 개의 치 사이로 석대(石臺) 3개가 축조되어 있음. 王綿厚(2002)는 5개가 축조되어 있다고 기록함. 성벽보다 1m 정도 낮음.



회곽도(廻郭道)

서변~북변 안쪽을 따라, 주위보다 얕은 너비 5~6m의 길이 있는데, 회곽도로 추정됨.



건물지(建物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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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 가운데에서 남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많은 고구려시기 홍색 방격문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건물지로 추정됨. 동, 북, 서변 내부 경사진 면에 많은 계단형태의 대지가 있음. 산성에 계단형 대지가 남아 있다는 것은 건물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음. 다만 절토(切土)와 절암(切巖) 등은 매우 적고, 돌로 쌓은 건물기초는 보이지 않음. 이로 볼 때, 건물지 대부분은 간단한 서초목방(芧草木房)이었던 것으로 추정됨(李鴻業, 1999). 서문입구 근처 높은 대지에서 기와편이 발견됨. 이곳에는 당시 장군의 처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李鴻業, 1999).



봉화대(烽火臺)

북벽 안쪽(北壁 內側)

북벽 안쪽에 돌로 만든 봉화대터가 있음. 이 지점은 해발 200m로 동북쪽에서 가장 높은 지점임. 봉화대 주변에는 석루(石壘)가 둘러싸고 있는데, 명대 전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됨(三上次男, 1990).



성가퀴(女墻)

너비 0.8~0.85m(陳大爲, 1995); 0.8~2m(王綿厚, 2002)
일부 구간의 높이 0.2~0.3m 

북벽 정상부에는 외벽 안쪽으로 성가퀴가 있음. 일부 돌 틈에서는 백회를 볼 수 있음.




3. 동


저수지(貯水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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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길이 7.5m, 동서 너비 6~7m, 깊이 0.8~1m(陳大爲, 1995)

남북 길이 7m, 동서 너비 6m, 깊이 1m(王綿厚, 2002)

남북 길이 10m, 동서 너비 7m, 깊이 2m(林直樹, 1994) 


성 안 동벽 북단(城 內 東壁 北端)


성안 동벽 북단에 움푹 패인 장방형의 구덩이가 있는데, 저수지라고 알려져 있음. 주위 벽은 모두 자연석으로 쌓았는데, 산돌은 가공됨. 산성내 수원시설 가운데 하나로, 자연암석 위를 판 것임.



동남모서리 내성(東南稜角 內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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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의 남북 길이 45m, 동서 너비 35m, 10~18층, 정상부 너비 2.7~3m│

내성의 높이 1.7~2.7m(陳大爲, 1995); 1~3m(王綿厚, 2002); 6m(李鴻業, 1999)│

내성 쌓은 층의 정상부 너비 2.7~3m; 2m(李鴻業, 1999) 


산성에서 제일 높은 지점인 동남모서리에는 방형에 가까운 내성이 있음.

내성 북벽과 성곽 전체의 북벽은 서로 평행하게 위치해 있는데, 두 성벽 간의 간격은 약 10m임. 내성의 쌓은 층은 10~18층임.



점장대(点將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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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길이 8m, 동서 너비 7.4m│높이 4.3~5.7m(東潮·田中俊明, 1995; 陳大爲, 1995); 4~5m(王綿厚, 2002). 


성 안에서 가장 높은 동남모서리에는 돌로 축조된 방대(方臺)가 있는데, 점장대라고 불리고 있음. 점장대는 내성으로 둘러 싸여 있음. 점장대에 올라가면, 성 전체와 성 밖 주변을 볼 수 있음. 점장대는 석벽이 조잡하다는 점에서 성벽축조방법과 다른데, 산성보다 늦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됨(陳大爲, 1995). 그렇다하더라도 고구려시기에도 활용되었을 것임. 『遼陽縣志』에는 이 곳이 점장대로는 부적합하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대(臺) 아래쪽의 산비탈 각이 20°에 달해서 사병 조련에 불리하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음.


한편 이 곳을 봉화대로 보는 견해가 있음. 그러면서 내성 내부는 대를 수비하는 병사의 병사(兵舍)이고 불을 피우는 재료가 있던 곳으로 추정함. 아울러 방대와 그 아래에 있는 내성에 출입구와 계단이 없는 점을 주목하여 병사들의 출입이 사다리를 통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함. 그리고 사다리는 위로 올라간 후 수거할 수 있기 때문에 성이 점령당해 적군이 내성까지 진입하다라도 봉화대에 접근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방어시설이 만리장성의 산해관(山海關)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함(李鴻業, 1999).



4. 남

토척(土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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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m, 너비 2~3m 


성 동남벽 바깥에 동남-서북방향의 토척 1줄기가 있음. 토척 남쪽에는 그리 길지 않은 도랑(溝口)이 있고, 아래는 태자하(太子河)이며, 그 동쪽 산등성이 아래 비탈은 완만함. 토척은 산성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속하는 바깥을 방어하거나 산성 안 취수통로를 통제하는 시설로 추정됨.



수원시설(水源施設)

남벽에 태자하(太子河)로 내려갈 수 있는 길(小路)이 있었다고 함. 이문신(李文信)에 의하면 절벽 사이에 평대(平臺)와 주동(柱洞)이 발견되었다고 함. 이로 볼 때, 원래는 잔도식(栈道式) 난간이 있었다고 추정되는데, 강물을 길러와 수원으로 삼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음(陳大爲,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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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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