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2140348402&code=990000
[한기호의 다독다독]‘2013년 체제 만들기’와 교육정책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글로벌 금융위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던 2007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이명박을 선택했습니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올 것 같은 분위기에 지레 놀라 ‘747공약’에 제대로 속았지요. 지금에서야 때늦은 각성을 하고 있지만, 그때는 비록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은 인물일지라도 ‘경제’ 하나만큼은 똑바로 성장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요.
지난 4년간 양극화가 심해져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구매력이 약해지고, 이로 인해 시장 자체가 동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가계부채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4년의 알량한 경제성장도 빚으로 유지된 셈이라 그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입니다.
75세의 학자인 백낙청 선생이 <2013년 체제 만들기>(창비)란 이색적인 책을 최근 펴냈습니다. 192쪽의 얇은 책이지만 ‘인간 해방의 논리’와 ‘민족문학론’, ‘분단체제론’을 통해 엄혹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며 반세기 이상 일관되게 분단체제 해소를 위한 지혜를 쏟아놓은 결과물의 총정리판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엄혹한 시절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좌표를 제대로 제시해주는 책입니다.
백 선생은 “이른바 ‘4대강 살리기’로 포장된 무리한 토건사업으로 천재지변이 아닌 정부 주도의 대대적인 환경파괴가 진행되었고, 노년층을 비롯한 서민들의 생활난이 재해 수준에 근접했으며, 원전사고 없이도 주민들의 자유와 기본권에 대한 제약이 대폭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도 마치 쓰나미에 휩쓸린 듯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흐트러졌”다고 현실을 진단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무엇보다 한반도 남북 양쪽의 기득권층이 상대방을 적대시하면서도 그 적대관계로 인한 긴장과 전쟁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반민주적 특권 유지의 명분을 끊임없이 공급받는 분단체제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 선생은 남북이 각기 독립적 실체로서 단순히 분립되어 있거나 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상호관계 속에 ‘하나’의 체제를 이루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백 선생이 ‘2013년 체제’를 들고 나온 것은 우리가 하루하루의 생업에 시달리느라 잊고 있던 이 엄중한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1987년의 ‘6월항쟁’으로 ‘87년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간 지속된 ‘87년 체제’는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자유화, ‘자주’와 ‘통일’에 대한 요구 등 세 영역에서 뜻깊은 성취를 이룩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만 해도 어디까지나 한반도 남녘에 국한된 성취였을 뿐만 아니라 1953년의 휴전 이후 굳어진 ‘53년 체제’의 틀도 바꾸지 못했기에 기본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2008년의 이명박 정권이라는 터무니없는 역풍을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으로 세 동력이 원만히 결합해 지속성과 상승효과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기는커녕 대대적인 ‘역주행’과 ‘폭주’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1953년 정전체제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공유하는 시대인 ‘2013년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러면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된 새 체제에 대한 경륜이 뚜렷하고 그것을 집행할 실력을 갖춘 세력이 집권해야 합니다. 그래서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명확한 이해부터 필요합니다. ‘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끝까지 믿어주는 것은 유일하게 본받을 만한 가치로 보이지만, 불법과 파행을 저지르는 자들만 골라댔으니 계승할 가치가 전무하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합니다. 역주행한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너무 과도하게 노무현 정권과의 ‘차별화’를 꾀해서인지 남북 긴장 해소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지역균형 발전, 특권적 구도 해체, 다양성과 개방성 등 이른바 ‘노무현의 가치’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역주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해고를 최초로 수용한 것이 김대중 정부이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발의한 것이 노무현 정부이니 신자유주의는 폭주가 맞습니다. 교육도 폭주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4년간 교육행정의 중앙집권화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추동되었고, 교육의 중요성은 특권층 자녀에게 유리한 ‘경쟁’ 위주로 이해”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대에도 교육혁신은 방치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백 선생은 ‘2013년 체제’의 내용에 ‘민주·평화·복지사회’라는 3대 과제뿐만 아니라 “물질적 불평등의 폐기와 생태친화적 사회로의 전환, 성차별 극복 같은 세계체제 공통의 장기적 과제가 어떤 식으로든 반영된 중·단기적 정책기획이 포함”되어야 하지만 ‘2013년 체제’에서 가장 크게 달라져야 할 것이 교육이라고 지적합니다.
지금 아이들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성적만 강요하는 학교에서는 물리적 폭력 이상으로 정신적 폭력이 심각하게 가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많이 필요합니다. 지금 복지 담론 경쟁이 심각하게 진행되고는 있지만 차별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양대 선거에서 교육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부터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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