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vop.co.kr/view.php?cid=A00000475247
[기고]낙동강 사업 위법인데, 사업 취소는 왜 안돼?
"위법 판결 발판 삼아...강(江)이 제모습대로 흘러가길"
이정일 변호사 입력 2012-02-14 10:29:03 l 수정 2012-02-15 08:13:43
낙동강 사업 위법 판결, '4대강 사업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웠다'는 의미
부산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김신 부장판사)는 500억원 이상의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낙동강 사업에 있어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은 것이 국가재정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낙동강 사업 중 보의 설치는 재해예방사업이라고 볼 수 없고, 보의 설치, 준설 등의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시킬 정도로 시급성이 인정되는 사업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불구,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는 절차상의 위법을 지적한 것이다. 4대강 사업의 취소를 주장한 행정사건 중 낙동강 사업이 위법하다는 판단은 처음이다.
법원의 판단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법원이 5.7억 톤의 모래 준설과 16개의 보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4대강 사업이 시급하지도 않고, 특히 보설치는 재해예방 사업도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그 동안 원고들을 비롯한 환경관련 시민단체 및 환경 전문가들은 속도전으로 진행된 4대강 사업이 부당하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해왔는데, 법원이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었다는데 의미가 있다.
두 번째, 국가재정법에서 정한 예비타당성 조사는 4대강 사업의 첫 단추를 끼는 작업이다. 법원이 4대강 사업이 출발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재고해 원상회복 여부에 관한 국민의 지혜를 모아달라는 취지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재판부, 4대강 사업의 꼼수 적나라하게 지적
2011년 9월 1일 항소심 절차 첫 변론기일부터 2012년 1월 13일 최종 변론기일까지 재판부는 아주 신중한 태도로 변론절차를 진행했다. 법원은 국민소송대리인들이 신청한 한 차례의 현장검증과 두 차례의 전문가 증인신청을 받아들여 진행했다. 즉, 낙동강 사업이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판단하기 위해 소송대리인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증거신청을 받아 준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예단을 가지고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자의 증거신청을 배척한 재판진행 태도와는 매우 대비되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최종 변론기일에서 역사적 심판을 받는다는 심정으로 판단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4대강 사업 가운데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절차적인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법원은 공사는 계속해도 된다고 판결했다. 사진=상류와 하류지역에 세굴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창녕함안보 ⓒ민중의소리
피고 측은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을 4대강 사업 직전에 했는데, 그 이유가 4대강 반대여론이 거세지자 ‘4대강 마스터플랜’ 계획을 짠 국토연구원이 경제성 분석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건의하자 피고 측이 4대강 사업의 핵심 내용에 해당하는 보 설치와 준설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하는 규정인 ‘재해예방’ 사업을 추가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즉, 재판부가 소신 있게 피고 측의 꼼수를 적나라하게 지적한 것이다.
국가재정법위반 여부와 관련하여 원․피고 측이 다툰 쟁점은 첫째, 국가재정법이 4대강 사업에 관한 행정처분의 근거했는지에 대한 법률 여부, 둘째, 재해예방사업 여부, 셋째, 시급히 진행해야 할 사업인지에 관한 여부 등이었다. 재판부는 약14쪽에 걸쳐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는 낙동강 사업이 국가재정법위반임을 논증했다. 이와 같은 재판부의 소신 있는 태도에 국민소송대리인단은 존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낙동강 사업이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가져올 여러 가지 정치적․사회적 파장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위법인데 사업 취소는 안 돼?...아쉬움 남아
그러나 재판부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법원은 낙동강 사업이 이미 공정이 90%이상 완료돼 이를 원상회복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고, 보․준설이 완료된 상황에서 원래대로 회복한다는 조치가 국가재정의 효율성과 기술적․환경 침해적으로 오히려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켜 공공복리에 반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낙동강 사업을 취소할 수 없다고 사정판결(행정처분이 위법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면서도 행정처분을 취소하는 경우에 그 취소로 인해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않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하는 판결 형태) 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완성단계에 있는 4대강 사업의 성과물-홍수예방, 수자원 확보, 지역균형발전, 경기부양, 수변지역 개발, 수생태계 복원 및 레저 공간 활용 등-을 현명하게 유지․관리하고, 그 주변 발전계획을 철저히 수립․활용하라는 당부의 심정을 밝혔다.
그러나 소송대리인단들은 재판부와 견해를 달리한다.
4대강 사업이 완료 돼가는 시점에서 매몰된 국가재정도 적지 않지만, 향후에 우리 국민이 치러야 재정부담도 적지 않다. 국토해양부 측에서 밝히고 있듯이 보 유지관리 비용만도 매년 2,600억원 이상 지출될 것이다. 2011년 홍수기를 거치면서 낙동강 본류에서 왜관철교 일부가 붕괴됐고, 남지대교 상판 일부가 내려앉았다. 낙동강 지류에서는 역행침식 현상으로 인하여 지류가 홍수피해로 몸살을 앓았다. 낙동강 본류와 지류가 합수되는 구간에서는 준설 물량의 15% 내지 20%까지 모래가 다시 퇴적됐다.
자전거 도로도 유실되는 몸살을 앓았다. 계절마다 낙동강 본류에 둥지를 두며 살았던 두루미의 개체수가 현저히 줄었다. 몇 년 만에 낙동강 해평습지를 찾았던 황새 한 쌍도 둥지를 틀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 중 한 마리가 죽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낙동강 본류에 삶터를 둔 수달이 생태계의 교란 때문에 농가를 역습하고 있다.
이 소식들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상주보와 구미보에 물이 새는 누수현상이 발생했다. 합천보에 물을 담수하자 경북 고령 연리들 수박농가들은 들판에 물이 고여 하우스에 묘종을 심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함안보 주변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설 기간에 “함안보가 고향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이미 함안보에 갇힌 물은 진한 갈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대구시민의 식수가 되는 강정보에 갇힌 물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함안보 물받이 보호공 하류에 준설 깊이보다 훨씬 깊은 계곡이 형성돼 함안보의 구조적 안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합천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내린 봄비로 불어난 강물이 빠진 금호강의 물길이 새로 생긴 인공수로 쪽을 통해 낙동강으로 흐르고 있다. 이 때문에 달성습지 쪽으로 유입되는 강물은 거의 사라져 곳곳에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국토해양부 측이 밝히고 있는 정상적인 보 유지관리 비용 이외에 추가적으로 지출이 예상되는 비용은 향후 국민의 혈세로 부담해야 할 것이다. 1년, 또는 10년만 부담하면 될 것인가. 의문이다. 이런 이유로 재판부가 이미 매물된 비용만을 고려했다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로 하여금 어떤 국책사업이라 하더라도 속도전을 펼쳐 완공 상태로 해 버리면 통제받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강(江)’이 제모습을 찾아 흐를 때까지...
‘강물은 자유로이 흘러야 강(江)’이라고 할 수 있고, ‘갇힌 물은 오래지 않아 썩는다’ 라는 것이 일반상식이다. 4대강 사업이전으로 돌이키는 비용이 현재의 4대강 사업 상태로 방치하는 비용보다 훨씬 적게 들고, 4대강의 모습을 옛날로 돌이키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행복해 지는 길이라는 것. 그리고 공익에 부합하다는 것이 법관을 설득할 우리 소송대리인들의 몫이다. 또한 강이 옛날 모습대로 흘러가기를 희망하는 우리 모두가 나누어야 할 몫이다.
국토해양부 측도 부산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낙동강 사업 취소를 구한 소송대리인들도 판결문이 송달되면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다. 이미 한강재판, 금강 재판도 대법원에 상고됐다. 영산강 재판도 곧 판결 선고가 있을 것이다. 대법원에서 펼쳐질 핵심쟁점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는 것이 국가재정법 위반인지, 4대강 사업을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공익에 맞는 것인지, 아니면 4대강 사업 이전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공익에 유익한지 대한 여부가 될 것이다.
국민소송대리인단의 변호사, 운하반대 모임 교수, 현장 활동가들이 서울 교대역 근처에 모여 작은 축하 파티를 벌였다. 각 단체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몇 분이 케익에 초를 꽂고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노래를 불렀다. 4대강 사업이전의 옛날 4대강 모습으로 돌이킬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소송에 참가한 우리 모두는 금전적 보상을 바랐거나, 명예를 바랐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2009년부터 4대강 사업이 위법하다는 판단을 받는 오늘까지 약3년 동안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기뻐했다. 우리 모두는 낙동강 사업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는 것을 발판으로 4대강 복원 작업의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현란한 수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강은 다시 제 갈 길을 다시 찾을 것이다”라고 법정에서 증언한 김정욱 교수의 말씀을 다시 음미해 본다. 동시에 변호사로서 4대강 반대 소송에 참가한 것이 영광이었음을 깨닫는다. ‘해는 내일도 다시 떠오를 것이다.’
이정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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