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m.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63810.html


윤 대통령의 ‘정치 포기’ 선언…극우 보수로 퇴화하다

성한용 기자 등록 2022-10-23 07:00 수정 2022-10-23 19:08


[한겨레S]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윤 대통령의 ‘보수언론 따라하기’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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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비속어 논란에 이어 또 사고를 쳤습니다. 이번에는 색깔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19일 국민의힘 원외당협위원장 초청 오찬에서 “종북 주사파는 반국가 세력이고, 반헌법 세력이다. 이들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비속어 논란과는 차원이 다른 사고입니다. 정치적 맥락으로 보면 야당과 협치를 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을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가운데 나온 것입니다.


대통령실도 당황했는지 부랴부랴 대변인실 명의로 해명에 나섰습니다. 대변인실 해명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맥락에서 문제의 발언을 했는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먼저 한 당협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최근 북한의 도발과 위협을 언급하며 종북 주사파 세력에 밀리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윤 대통령은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고, 안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확신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한 뒤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세력과는 타협할 수 없다는 의미로, ‘국가 보위’가 첫번째 책무인 대통령으로서 기본적 원칙을 언급한 것입니다. 또 이러한 발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 누구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헌법 정신과 대통령의 책무를 강조한 발언을 두고 정치적으로 왜곡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윤 대통령이 보수 언론 따라하기


여러분은 대변인실의 해명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야당과의 협치 거부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정치적 왜곡일까요?


윤석열 대통령 자신도 아차 싶었던지 다음날 아침 기자의 질문에 “주사파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잘 아는 것”이라며 “어느 특정인을 겨냥해서 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사파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잘 안다고요? ‘네 죄를 네가 알렷다’는 식의 원님 재판 어법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윤석열 대통령 발언 하루 전 <조선일보>에 꼭 같은 논지의 칼럼이 실렸다는 사실입니다. ‘김일성주의자 발언이 뜻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김대중 칼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김일성주의자라고 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의 발언을 두둔하는 내용입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시기적으로 볼 때 그동안 좌파·주사파·운동권·친북세력이 장악해온 한국 정치지형(地形)에서 보수·우파의 반격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아니, 운동권-종북좌파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의 정치가 이제 정상 궤도로 진입하려면 일차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바뀌어야 한다. 민주당이 친북·종북·운동권의 아지트가 아닌 진보·좌파·사회주의 본연의 기지(基地)로 돌아와서 좌·우의 건전한 대결과 대안(代案)의 정치를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두 사람의 주장을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친북·종북·운동권’과 ‘진보·좌파·사회주의’를 분리하려는 김대중 칼럼니스트의 논리를 그대로 베낀 것입니다. 평화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주장했던 야당 정치인들과 재야, 민주화 운동 세력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이 빨갱이-용공-친북-종북으로 몰아 탄압할 때 동원했던 바로 그 논리 그대로입니다.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가 아니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다고요? 거짓말입니다. 분단 기득권 세력은 북한식 사회주의나 주체사상에 비판적이었던 민중민주 계열 운동권 단체들을 ‘진짜 빨갱이’라며 더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어쩌다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분단 기득권 세력의 얄팍한 논리에 이렇게 휘둘리게 됐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긴 윤석열 대통령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국민의힘 지도부와 당권 주자들의 발언 수위를 보면 걱정스러울 정도로 막 나가고 있습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가장 심각합니다.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10월11일)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문재인 정부 시절 체결된 9·19 남북 군사합의는 물론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역시 파기되어야 한다.”(10월12일)


“민주당의 주류인 586 세력의 이념은 무엇입니까?” “민주당의 주류들은 요즈음도 북한은 항일무장 투쟁을 한 김일성이 만든 자주 정권이고, 대한민국은 친일파 괴뢰정권이 세운 나라라는 생각을 언뜻언뜻 내비칩니다.”(10월18일)


정진석 위원장의 발언이 거칠어지면서 그의 부친과 조부까지 입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의 부친은 경찰 출신으로 치안국장, 충남지사, 내무부 장관, 6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석모 전 의원입니다. 조부는 일제강점기에 계룡면장을 지냈고 일본식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정진석 위원장은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본래 성격이 호방하고 합리적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태극기 부대보다 더 심한 극우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조선이 일본의 침략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는 자신의 발언은 식민사관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식민사관이 맞는다고 비판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진석 위원장의 이러한 극우 발언과 행보는 그동안 국민의힘을 지지해준 국민에 대한 배신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2020년 총선 이후 벌어진 일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극우 보수 황교안 대표가 이끈 자유한국당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으로 개편했지만, 선거 결과는 미래통합당 84석, 미래한국당 19석에 그쳤습니다. 황교안 대표가 물러나고 김종인 비대위원회 체제가 출범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습니다. 2020년 9월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바꾸고 강령에 기본소득을 명시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 표현에 의하면 ‘진취적’ 정당으로 변화를 시도한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국민의힘은 2021년 4·7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는 30대의 이준석 대표를 선출하는 파격을 마다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을 영입해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극우 보수가 아니라 공정과 상식의 기치를 내세워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대선 과정에서 김종인 위원장을 쫓아냈고 집권 뒤에는 이준석 대표를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극우 보수로 선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 없는 정부의 전술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요? 윤석열 대통령과 정진석 위원장이 황교안 대표 시절의 극우 노선으로 돌아서는 이유가 뭘까요? 두가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첫째, 철학의 부재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본래 검찰주의자였습니다. 대선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자신의 이념으로 제시했지만, 아직도 자유의 내용을 채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잘 모르면 휘둘리는 법입니다. 국민의힘은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에 뿌리를 둔 정당입니다. 국민의힘 당사에는 지금도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독재와 극우는 어쩌면 국민의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입니다.

둘째, 국정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한 고정 지지층 결집 전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갤럽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8월 첫째 주와 9월 다섯째 주에 24%로 최저치였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9월 다섯째 주 조사에서 연령별로는 70대 이상에서 긍정 46%, 부정 34%로, 지지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긍정 59%, 부정 30%로 긍정이 더 높았습니다.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의 실체입니다.



이처럼 윤석열 대통령과 정진석 위원장의 극우 발언과 행보에는 ‘본능’과 ‘전술’이라는 두가지 배경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잘될까요?


잘 안될 것입니다. 실패 사례가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뒤 보수 정당 주자로 2017년 대선에 나섰던 홍준표 대구시장은 2018년 지방선거 국면에서 펼쳐진 북-미 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라고 비난하는 극우 노선을 선택했습니다. 선거에서 참패했습니다.


좀 더 앞으로 가면 이명박 대통령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국정 지지율 급락 사태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실용주의 노선을 버리고 극우 노선으로 돌아섰습니다. 국가정보원장에 자신의 최측근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을 앉혀 “종북 세력이 촛불 시위의 배후”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방치하고 부추겼습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정리하자면 보수는 합리적 보수와 실용주의로 진화할 때 성공했고, 극우 보수로 퇴화할 때 실패했습니다.


무책임한 극우 행보


마무리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진석 위원장의 극우 발언과 행보는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도박입니다. 첫째, 야당을 종북 주사파로 몰면서 협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정치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둘째, 아무런 대안도 없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전쟁 위기를 방치하는 행위입니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나 국민의힘의 정치적 유불리, 2024년 총선이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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