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2557


이태원 참사로 딜레마에 빠진 윤석열 정부의 ‘작은정부론’ 

기자명 김수민 정치평론가   입력 2022.11.07 09:10  

 

'제도 미비 탓'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책임회피성

기술·제도·디지털 역량보다 사람의 숨결이 더 중요

작은정부는 ‘철 지난 이념’…인프라·인력 확충에 증세 불가피


한덕수 국무총리가 6일 중앙재난안전안전대책본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가 6일 중앙재난안전안전대책본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우리 사회는 아직 인파 관리 또는 군중 관리라고 하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개발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드론 등 첨단 디지털 역량을 적극 활용해서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기술을 개발하고 필요한 제도적 보완도 해야 한다.”


11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남긴 말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같은 날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를 10여차례 반복하며 강조했다. 


양적으로 짤막하고 질적으로 구체성이 없는 발언에도 이미 여러가지 문제점이 보인다. 첫째, 현재 가진 기술도 참사 예방에 쓰지 못했다는 진실을 간과했다. 둘째, 이번 이태원 참사를 막을 인파 관리에 대해서 이미 있었던 연구들을 무색케 했다. 셋째, 있지만 지켜지지 않은 제도들이 있었음을 은폐한다. 넷째, 디지털 역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숨결이라는 이치를 거스른다. 


‘서울 실시간 도시데이터’에 따르면 참사 당시인 10월 29일 오후 10시경 이태원관광특구에 모인 인파는 5만 8,000여명이다. 인파 규모를 실시간으로 파악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KT 기지국이 휴대전화 신호를 5분마다 집계하고, 잡히지 않은 시민의 수까지 추산해 인구를 파악한다. 전후 12시간의 추이 및 전망까지 계산한다. 이런 기술과 서비스를 보유하고도 이태원 참사 대응에선 쓰지 않았다.


도시재난 압사 사고 가능성을 경고하는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보고서도 최소 세 차례 나왔다. 2015년 경찰청이 발주해 대구가톨릭대 산학협력단이 만든 ‘다중 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다중 운집행사를 유형별로 정리하고 지자체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016년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의 보고서 ‘신종 대형 도시재난 전망과 정책 방향’은 압사 사고 발생을 막기 위해 도로환경 정비, 비상차선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연구원은 2020년에도 같은 제목으로 더 구체적인 보고서를 냈다. “전조감지와 조기 예·경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구절도 있다. 


보고서 발표 이후의 세월은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권과 박원순-오세훈 서울시정에 걸쳐져 있다. 참사 현장의 혼잡함을 더했던 불법 건축물도, 그 부근에 두 군데(이태원역, 이태원파출소)에만 설치되었던 자동심장충격기도 한국 정치의 흔적이다. ‘제도의 보완’을 말하기 전에 ‘제도와 정책의 준수’를 두고 반성해야 한다. 정부의 잘못을 덮기 위해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모든 게 정상이었지만 정권이 바뀌어서 참사가 터졌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 최소한의 양식이 있는지 조차 의심이 든다. 이럴 때 ‘내가 무엇을 못했는지’부터 짚는 게 정상이다. 


이태원 참사 다음날 "경찰을 미리 배치했어도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발언했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지난 1일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 현안보고에 앞서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뉴스1)

이태원 참사 다음날 "경찰을 미리 배치했어도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발언했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지난 1일 오후 국회 행정안전위 현안보고에 앞서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뉴스1)


하지만 참사의 원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정부의 수장으로 앉아 있는 게 현실이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 사전적으로 깊이 들어가서 개인의 집회를 제한하는 문제에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이 대한민국에 있다. 경찰이 기동대로 전체적으로 제압하는 방식은 원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찰 권한이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도 했다.  


이들은 정녕 경찰에 관한 기본 지식이 없는 것인가. 인파 관리는 시위 진압과 다르다. 집회에서는 기동복을 입고 방패를 드는 기동대원도 인파 관리 때는 근무복을 입고 경광봉을 든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위험 발생의 방지 등)에는 경찰이 경고, 억류, 피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는 경우 중 ‘극도의 혼잡’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운신의 폭이 넉넉할 때 경찰의 경고를 받은 시민은 무시나 항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사방의 압력을 받는 시민들에게 제복 입은 공무원의 안내는 권위를 가지기 쉽다. 


이번 참사에선 있는 인력을 제대로 배치했는지도 논란이거니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의 총원을 늘려야 할 당위도 발견되고 있다. 물론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기술이 발달하면서 공무원수가 줄어들 분야도 있지만, 사람만 할 수 있는 분야-치안과 안전, 복지, 교육, 보육 등의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인원이 부족하다.


경찰 인력의 경우, 전·의경 부활은 불가능하다. 군입대 가능인구가 줄어들어 다른 분야로 돌릴 여력이 사라져가고, 징집대상자를 비군사 분야에 쓰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강제노동’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경찰을 더 뽑아야 한다. 전의경보다 훨씬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일회성 보조인력은 지자체 비정규직(기간제나 시간제)으로 확보한다고 해도 인건비 공공 지출이 발생한다. 무보수 봉사활동을 조직하려고 해도 공동체가 무르익어야 하고, 이런 일 역시 공공의 인력과 지출은 필요하다. 


복지의 확대뿐만 아니라 인프라와 인력 확충까지 소화하려면 재정 확대는 불가피하다. 한쪽 예산을 줄여 다른 쪽에 얹는 지출 구조조정도 곧바로 벽에 부딪힌다. 빚을 더 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방법은 증세밖에 없다. 부유층이나 대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닌, 빈민이 아닌 사람은 더 내는 보편적 증세 말이다. 


윤석열 정부는 재정을 크게 줄일 수 없으면서도 감세와 공공인력 감축, 공공 재산의 매각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역행을 시작하려다 만난 사태다. 더 이상 '작은 정부'와 감세를 고집 피울 생각은 접는게 낫다. 미국 역사에서 공화당 정부들은 작은 정부, 감세를 고집하다가 되레 국가 부채만 늘려놓았다. 윤석열 정부가 믿는 경제학은 ‘철 지난 이념’이다.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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