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tapa.org/article/Yhgku
<법으로 본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① 이상민 장관, 대통령 지시 묵살하고 '중대본 설치' 도 지연
강현석 2022년 11월 29일 19시 35분
‘이태원 참사’ 책임자를 찾는 수사가 진행중이다. 국회 국정조사도 준비되고 있다. 하지만 참사 한 달이 된 지금까지 최종 책임자의 윤곽은 흐릿하다. 수사는 밑으로만 향할 뿐 위로 뻗지 못하고 있다. 재난 주무장관이면서도 ‘이태원 참사’를 막는데 아무런 역할을 못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뉴스타파는 각종 법령과 조례 등을 뒤져 ‘이태원 참사’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했다. 이상민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의 책임을 따져 두 번에 걸쳐 보도한다.
① 이상민 장관, 대통령 지시 묵살하고 '중대본 설치' 도 지연
<편집자 주>
1. 이태원 참사가 ‘재난’인 이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 시행규칙상 ‘이태원 참사’는 명백한 ‘사회재난’이다. 이 규칙 제5조에는 ‘재난상황의 보고 대상’이 명시돼 있는데 ‘교통사고를 제외한 단일 사고로서 사망 3명 이상, 또는 부상 20명 이상’을 재난으로 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158명이 숨지고 196명이 다친 ‘이태원 참사’는 초대형 재난이다. 당연히 재난안전법의 적용을 받는다.
재난안전법 제19조에 따르면 ‘재난 발생 신고를 받은 행정기관(경찰)의 장은 긴급구조기관(소방청·소방본부)의 장에게 재난상황을 통보’하도록 돼 있다. 마찬가지로 ‘긴급구조기관의 장은 관할 시장·군수·구청장 및 재난관리주관기관(행정안전부 등)의 장에게 재난상황을 통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 재난이 발생할 징후를 발견하였을 때에는 즉시 그 사실을 관계 행정기관 등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 이렇듯 재난 보고체계가 법령으로 규정돼 있는 이유는 각 상황에 맞는 응급대처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2. 재난 발생 직후, 서울종합방재센터가 출동 지령
‘이태원 참사’의 경우, 최초 재난 발생 징후는 112에 신고됐다. ‘압사’란 단어가 들어간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참사 당일 오후 6시34분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단순 불편신고’로 판단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실제 재난 발생 시각, 그러니까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골목에서 압사가 일어난 시각은 오후 10시 13분이었다. (11월 24일 뉴스타파 보도 참조) 당시 ‘재난상황’은 ‘119’에 신고·접수됐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산하 서울종합방재센터(이하 서울센터)가 신고를 처리했다. 서울센터는 1998년 서울시가 만든 통합방재상황관리체계다. 서울센터는 서울 전역의 119 신고 접수 및 대응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이태원에 있는 신고자가 119로 전화를 걸면 서울센터로 연결되고, 신고를 받은 서울센터가 이태원에서 가장 가까운 관할 소방서에 연락해 출동 지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서울센터는 서울시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는 점에서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에 속한 소방청과 구분된다.
3. 서울종합방재센터가 최초 재난상황을 지자체에 전파
이태원 참사 당일 오후 10시 15분, 서울센터는 “사람이 압사당하게 생겼다”는 내용의 119 신고를 접수했고 2분 뒤 용산소방서 등에 출동지령을 내렸다. 이어 10시 18분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이때의 공동 대응은 국가 재난 보고체계와 무관했다. 당시 서울센터는 신고자의 요청에 따라 경찰에 업무 협조를 구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재난 보고체계가 처음 작동한 시각은 오후 10시 26분~29분 사이다. 당시 서울센터는 이태원 압사 사고 징후를 서울시 재난통합상황실과 용산구 상황실에 알렸다. 형식상 ‘긴급구조기관(소방)의 장이 관할 시장 및 구청장에게 재난상황을 통보한 형태’이기 때문에 재난안전법에 적힌 보고체계에 부합한다.
그러나 행안부는 국가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임에도 사고 발생(10시 15분 전후) 30분 가량이 지난 10시 48분에야 소방청 상황실을 통해 재난상황을 보고받았다. 소방청 상황실이 서울센터에서 재난상황을 보고받은 건 2분 전인 10시 46분이었다.
정리하면, 이태원 참사 당일(29일) 서울센터는 지자체에 먼저 재난 발생 징후를 알렸다. 소방청을 통한 행안부 보고는 뒤로 미뤘다. ‘재난 발생 우려가 있을시 재난상황을 행안부에 통지’하도록 규정한 재난안전법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4. 소방당국 10시32분 재난 발생 징후 인지, 현장에선 긴급구조
그럼 서울센터는 보고 누락으로 재난안전법을 어긴 것일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참사 당일 ‘소방 무전 녹취록’을 보면 보고가 지연된 이유를 짐작케하는 정황이 나온다. 이날 서울센터가 이태원 사고 현장의 위중함을 인식하고 긴급 출동지령(코드제로)을 내린 시각은 오후 10시 32분이다. 당시 서울센터에는 1분당 2건 이상의 구조 요청 신고가 쏟아지고 있었다.
같은 시각,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서울센터와 무전을 주고받으며 응급환자 이송을 위한 진입로 확보에 주력하고 있었다. “압사가 일어난 골목에서 CPR을 하고 있다”는 무전이 나온 것은 ‘코드제로’로부터 10분이 지난 10시 43분이었다. 이때 용산소방서 소속 지휘팀장(소방대원)은 소방력 비상 동원체계인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15명 정도 CPR 실시 중인데 인원 모자라요. 대원들. 빨리 (소방대원)
해밀턴호텔 골목에 경사로에서 자체 넘어진 행인이 있어 한 20명정도 넘어져 있는 상태, 현재시간 대응 1단계 발령 (지휘팀장)
- 이태원 참사 당일 소방 무전 녹취록(오후 10시 43분)
이로부터 3분 뒤 서울센터는 소방청 상황실로 이태원 현장 상황을 전파했다. 곧이어 소방청은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로 현장 상황을 보고했다. ‘소방 대응 1단계’가 나온 시점부터 재난 보고체계가 작동한 것이다.
재난안전법 제20조는 ‘시장·군수·구청장, 소방서장, 해양경찰서장,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은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즉시 행정안전부장관, 관계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 및 시·도지사에게 보고하거나 통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대응 1단계 발령 전후, 서울센터와 현장 구조팀이 당시 상황을 재난으로 인식했는지 여부가 재난안전법을 어겼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재난으로 판단했음에도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어야 처벌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단순히 행안부에 보고를 누락한 사실만 가지고 유무죄를 따지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참고로, ‘서울특별시 사고 및 재난 현장 긴급구조 지휘에 관한 조례 및 시행규칙’에 따르면, 예상 인명 피해가 10명 미만인 경우는 1단계, 10~20명인 경우는 2단계, 20명 이상인 경우는 3단계를 발령하도록 돼 있다. 각 대응 단계에 따라 동원되는 소방력이 달라지고 지휘·보고체계도 바뀐다. 대응 단계와 관련된 문제는 행안부의 재난 대응 문제를 설명할 때 좀 더 자세히 다룬다.
여하튼, 이런 사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태원 참사 경찰 특별수사본부’(이하 경찰 특수본)는 ‘이태원 참사가 재난안전법상 재난임에도 소방 대응 단계를 제대로 발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피의자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현장 피해 규모를 봤을 때 소방 대응 1단계가 아닌 2단계 이상을 발령하고 구조 작업을 했어야 한다’는 이유다. 소방당국은 경찰 특수본 수사에 반발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5. 이상민 장관, 대통령·총리 지시에도 중대본 미설치
서울센터의 지령에 따라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벌인 소방대원들의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재난안전법상 '적극행정에 대한 면책’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 77조엔 ‘긴급구조요원이 재난안전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업무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에 대하여 그의 행위에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징계 등의 책임을 묻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이 때문에 대응 단계 발령이 늦었다거나 행안부 보고를 10여분 가량 지연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최 서장을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소방당국은 “참사 당일 소방대원들의 긴급구조 활동을 법적으로 처벌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참사 당일 현장을 지켰던 한 소방대원은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먼저였다”고 말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당일 행적이다. 행안부 발표에 따르면, 이상민 장관이 이태원 참사 관련 첫 지시를 내린 건 참사 당일 오후 11시 49분이었다.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 서울소방재난본부로부터 사고 보고(10시 48분)를 받은 지 1시간이 지난 뒤였다. 지시 내용도 “장관실 재난안전비서관에게 사고현장 파악 및 방문을 지시했다”고 한 것이 전부다.
이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장관을 중심으로 모든 관계부처 및 기관에서는 피해 시민들에 대한 구급 및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기 바랍니다”라는 지시사항을 하달했다. 대통령 지시가 나온 건 오후 11시 21분이었다. 그러니까 이 장관은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사고 수습’을 지시했음에도 약 30분이 지나서야 부하 직원을 통해 ‘상황 파악’을 시작한 셈이다.
6. 이상민 장관, 재난상황 인지하고도 칩거… 당일 행적 비공개
더구나 행안부에 따르면, 이 장관이 자택에서 출발해 이태원 참사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참사 다음날 0시 45분이었다. (10월 31일 오전 6시 작성된 ‘서울 이태원 사고 대처상황보고서’에는 새벽 1시 5분으로 기재) 이 장관의 자택은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태원과는 차로 20여분 거리다. 그런데도 재난 주무장관인 이상민 장관은 무슨 이유인지 대통령 지시로부터 1시간 20분(또는 1시간 40분)이나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이날 이 장관의 구체적인 행적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이태원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행안부 장관을 중심으로 조치를 취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적절한 메시지’를 낸 곳은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이었다. 참사 당일(29일) 자정 무렵 한덕수 국무총리는 “행정안전부장관, 소방청장, 경찰청장은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인명 피해 최소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의 긴급지시를 내렸다. 이렇듯 대통령에 이어 국무총리까지 업무 지시를 내렸지만, 행안부는 1시간 넘게, 혹은 2시간 가까이 재난안전법에 명시된 권한을 전혀 행사하지 않았다.
7. 행안부의 지연된 ‘중대본·중수본’ 설치…재난안전법 위반?
윤석열 대통령이 내렸던 지시 내용을 한 번 더 살펴보자.
참사 당일 윤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장관을 중심으로 피해 시민들에 대한 구급 및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주문했다. 이 지시는 재난안전법상 명시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및 중앙사고수습본부(이하 중수본) 설치와 관련이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재난안전법 제6조는 ‘행안부 장관의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 총괄·조정’에 대한 권한을 밝히고 있는데, 이 권한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기구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와 중앙사고수습본부(이하 중수본)이기 때문이다. 두 기구 모두 재난 발생시 설치되는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다.
법령상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면, 행안부는 재난 대응 및 복구를 위해 중대본을 설치한다. 중대본부장은 행안부 장관이 된다. 예외적으로 국무총리나 외교부장관 등이 중대본을 설치·운영할 수 있지만, 그 경우라도 행안부의 역할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재난안전법에 규정된 국가재난대응 체계를 정리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재난안전법에 규정된 국가재난대응 체계
중수본도 마찬가지다. 중대본과 같이 재난 수습 및 상황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중수본은 행안부를 포함한 각 정부 부처 장관(또는 청장)이 재난 유형에 따라 설치·운영하도록 돼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교육부 장관이 관할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으로서 중수본을 설치하고 초동 조치 등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처럼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는 행안부 장관이 관장한다. 따라서 행안부는 이태원 참사 직후 ‘응급조치 및 사후 수습’을 위해 중수본을 설치·운영할 수 있었다. 재난안전법 제15조의2는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은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재난상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재난을 수습하기 위한 중수본을 설치·운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정안전부훈령인 ‘행정안전부 중앙사고수습본부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규정’ 제4조 역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로써 이상민 장관이 참사 당일 중대본 또는 중수본을 신속하게 설치·운영해야 했다는 사실은 법령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이 장관의 행안부는 참사 당일 오후 10시 48분 소방청 보고를 받아 재난 발생 징후를 분명히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30일) 새벽 2시가 넘도록 중대본·중수본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는 참사 당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조속히 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하고 신속한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첫 지시를 내린 것과 대비된다.
만약 중대본(또는 중수본)이 조기에 가동됐더라면 정부기관과 지자체의 행정력이 적재적소에 동원됐을 가능성이 높다. 중대본(또는 중수본)은 소방력을 포함한 경찰력, 응급구조인력, 지자체 소속 공무원 등을 한꺼번에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안부의 중대본(혹은 중수본) 설치가 늦었다는 점은 ‘이태원 참사’ 당일 충북 괴산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처한 행안부의 대응 방식만 봐도 알 수 있다. 행안부는 지진 발생 사실을 보고받은 지 불과 2분 만에 중대본을 가동한 바 있다. 행안부가 작성한 ‘충북 괴산 지진 대처상황보고서’를 보면 기상청은 오전 8시 28분 규모 3.5 수준의 지진을 관측하자마자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로 상황을 보고했고, 행안부는 2분 뒤인 8시 30분 중대본 1단계를 가동했다. 인명피해는 단 1명도 나오지 않았다.
8. 참사 발생 4시간 만에 대통령 지시로 중대본 설치
행안부 내에 중대본이 가동·운영된 것으로 확인된 시각은 참사 다음날인 30일 오전 2시 30분이다. 참사 발생으로부터 무려 4시간 15분이 지난 뒤였다. 이마저도 이상민 장관이 아닌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꾸려졌다. 2시 30분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하고 행안부장관을 1차장, 복지부장관을 2차장으로 하는 중대본을 가동하라”고 구두 지시했다. 행안부 장관을 중심으로 중대본을 설치·운영하도록 하는 재난안전법의 취지를 초월한 조치였다.
9. ‘골든타임’ 이후 나온 ‘이상민 장관 지시사항’
중대본 가동 이후 공개된 행안부의 ‘국민 안전관리 일일상황 보고서(30일, 오전 6시)’를 보면 이상민 장관의 뒤늦은 지시사항이 확인된다. 당일 새벽 1시 전후 나온 지시 내용은 “가용자원 총동원 인명구조 최선 당부 및 지자체에 행사장 사전 점검 등 유사사고 방지 및 안전관리 만전”이었다. 같은 날 이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최근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청지부(소방노조)는 이상민 장관을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 특수본에 고발했다. 고발장에서 소방노조는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지시된 구급·치료 등 재난 수습에 필요한 행정조치를 즉시 내리지 아니함으로써 직무를 유기하였을 가능성이 있고, 소관 재난에 대한 수습을 위해 지체 없이 시행되었어야 할 중수본·중대본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직무를 유기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지인의 추모 메시지
10. 경찰 특수본, 구조한 사람만 수사…‘윗선’ 입건은 없어
‘소방 대응 단계’와 관련된 문제를 다시 살펴보자.
인명 피해 및 재난 규모에 따라 소방 대응 단계를 달리한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현장 지휘부 재량에 따라 대응 1단계에선 1개 소방서의 전 인력, 2단계에선 2~5개 소방서의 인력, 3단계에선 6개 이상 소방서의 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선 최종적으로 대응 3단계가 발령됐다. ‘서울특별시 사고 및 재난 현장 긴급구조 지휘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시행규칙) 등에 따른 것이었다.
소방 대응 단계는 행안부령이 정한 ‘긴급구조통제단’(이하 통제단) 운영과도 관련이 있다. 통제단은 행안부의 중대본처럼 재난 대처를 위해 소방당국이 임시 운영하는 기구다. 중대본을 운영할 정도의 재난이면 당연히 통제단이 설치된다. 재난안전법 및 시행규칙에 따르면, 주된 임무는 ‘긴급구조 및 재난 피해 확산 방지’ 등이다.
서울시를 예로 들면, 재난 발생시 현장 판단에 따라 통제단이 가동되는 경우 용산소방서장은 자치구통제단장,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은 서울시통제단장이 된다. 각 통제단장은 대응 단계별 지휘권을 행사하는데, 일반적으로 1단계에선 현장 지휘팀장(소방대원)이 우선 지휘권을 갖는다. 2단계부턴 소방서장(통제단장)이 지휘권을 행사한다. 3단계가 되면 관할 소방재난본부장이 현장을 지휘한다. 당연히 통제단에는 소속 부대가 다른 소방대원들이 섞이게 된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소방당국은 앞서 설명한 절차대로 대응 단계를 높였다. 시간순으로 보면, 오후 10시 30분께 현장에 투입된 용산소방서 지휘팀장은 13분 뒤인 10시 43분 대응 1단계를 발령했고, 용산소방서장은 11시 13분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용산소방서장이 긴급통제단을 가동한 시간은 11시 30분께다. 뒤이어 11시 48분 최태영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이 무전을 사용해 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대응 단계가 올라가는 동안 현장에선 구조작업이 이어졌다.
그러나 경찰 특수본은 “현장 구조작업과 별개로 용산소방서장이 현장에 있었으므로 통제단을 빨리 가동하거나 대응 단계를 높였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대응 단계를 높이지 않아 구조에 필요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응단계를 높일 수 있는 권한이 현장 구조팀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119 신고를 받은 서울센터, 즉 서울소방재난본부에도 소방 대응 발령 권한이 있다. 지난 9월 서울 일대를 덮친 태풍 힌남노가 좋은 사례다. 당시 서울소방재난본부는 태풍의 북상을 앞두고 관할 소방서에 대응 1단계를 발령한 바 있다.
‘이태원 참사’ 당일 서울센터는 용산소방서에 출동지령을 내린 시점부터 ‘동시 무전’을 통해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서울센터가 최초 사태를 인지하고 최태영 서울소방재난본부장에게 공유했다면 대응 2단계가 아닌 3단계 발령까지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현장 책임자였던 용산소방서장에게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유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현재 경찰 특수본 수사는 구조하지 않은 쪽보다는 구조한 쪽(소방당국 등)의 책임을 묻는 데만 집중되고 있다. 경찰 특수본이 지난 23일 발표한 추가 입건자 명단에도 경찰 과장급, 용산구청 간부, 서울 이태원역장 정도만 있을 뿐 '윗선'은 없었다. 행안부가 법령을 위반한 조치를 했다는 언론 보도가 연일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 이상민 장관 등 행안부 관련자들이 입건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무리한 수사, 정권 눈치보기 수사라는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11.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초대형 재난’에도 장관 보고 누락
소방의 119, 경찰의 112처럼 행안부 안에도 24시간 운영되는 ‘재난 신고 처리’ 기구가 있다.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이하 중앙상황실)이다. 중앙상황실은 행안부 장관을 대신해 재난·사고 인지 및 상황 전파를 담당한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중앙상황실의 내부 전파체계는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참사 당일 오후 10시 48분, 중앙상황실은 소방청으로부터 ‘재난상황’을 처음 통보받았다. 이로부터 9분 뒤인 10시 57분 내부 매뉴얼인 ‘재난상황전파체계’에 근거해 ‘상황 1단계’를 발령하고 크로샷(내부 긴급문자)을 발송했다. 수신 대상은 소관 국·과장급 공무원으로 한정됐다. 이상민 장관에겐 전송되지 않았다. 내부 매뉴얼상 전파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앙상황실은 재난상황단계를 총 4단계(관심, 주의, 경계, 심각)로 구분하는데, 장·차관이 보고를 받으려면 ‘상황 3단계’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참사 당일 중앙상황실은 이태원 상황을 2단계로 판단했다.
이 장관이 늦게나마 보고를 받은 건 장관 비서실 소속 재난안전비서관을 통해서였다. 이날 오후 11시 19분이었다.
‘중앙상황실 운영 규정’ 11조는 “대규모 재난이 발생한 경우 또는 응급조치 및 신속한 수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주요 재난 상황에 대해서는 상황실장이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 및 대통령에게 보고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중앙상황실의 '2단계 발령' 판단이 적절했는지 여부가 행안부의 유무죄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행안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없는지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12. 중앙상황실 파견 경찰도 집회 관리만… 재난안전법 위반?
'중앙상황실 운영규정'이 부실하게 운영됐음을 보여주는 근거는 더 있다. ‘중앙상황실 파견 상황근무자 수행 업무 분장’(업무분장)이다. 중앙상황실은 15~20곳에 이르는 정부 부처 및 공공기관 등에서 파견 직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데 그 중엔 경찰청도 있다. 운영규정 제4조 5항에는 ‘파견근무자가 상황관리를 위해 상황실에 소속하여 소속기관과의 재난정보 수집·전파 및 상황실장이 별도로 정하는 업무를 수행한다’고 돼 있다. 말 그대로 상시적인 정보 수집 및 전파체계가 작동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앙상황실은 각종 신고가 빗발치던 이태원 상황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뭘까.
업무분장에 답이 있다. 중앙상황실이 경찰에 할당한 소관 업무는 ‘군중사고’가 아닌 ‘교통사고 및 집회시위 등에 관한 사항’이다. 결국 중앙상황실은 이번 ‘이태원 참사’처럼 국민 안전과 직결된 ‘다중 운집’ 상황의 경우, 정보 수집을 통한 재난 예방 업무를 하지 않았다. 반면 집회시위는 상시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했다.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진 국가, 그중에서도 정부조직법상 관련 권한을 위임받아 ‘필요한 행위’를 했어야 할 행안부가 법적 책임을 방기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재난안전법 4조와 6조)
참사 발생 이틀 후인 10월 31일 대통령실은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서 사전에 ‘필요한 행위’를 할 법적-제도적 권한이 없었다’는 식의 해명을 내놨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오히려 ‘정부 차원의 직무유기’에 대한 의심만 키운다. 군중사고의 위험을 몰랐다기엔 너무나 많은 ‘다중 운집’ 사례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연례행사인 크리스마스나 새해, 여의도 벚꽃축제나 교황 등 해외 저명인사의 방한 등에도 군중 사고의 위험은 늘상 있어 왔다. 그럼 그 동안 여러 ‘다중 운집’ 행사에서 재난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우연이었던 것인가.
다음 편에선 참사 당일 기동대 배치, 112 신고 접수에 따른 초동 대처 미숙, 혼잡경비 및 지역축제 매뉴얼, 경찰국 신설에 따른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지휘 문제, 재난 발생시 경찰의 지휘·보고 체계가 어떻게 작동해야 했는지 등을 다룬다.
제작진
취재 강현석
사진 정형민
디자인 이도현
출판 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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