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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비 지원 예산 자르더니, 총선 다가오자 ‘간병 지옥’이라는 윤 정부
윤 대통령 공약한 간병비 지원, 정부 예산안서 빠져…국회서 부활 조짐 보이자 뒤늦게 “지원 대책 마련하라”
조한무 기자 chm@vop.co.kr 발행 2023-12-22 18:59:42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3.12.19.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한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 사업이 정부 예산 편성 과정에서 사라졌다가, 국회 심의 과정에서 부활했다. 윤 대통령은 뒤늦게 관계부처에 간병비 지원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선거 국면에서 정부 국정 운영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새다.
22일 국회에 따르면, 전날 본회의에서 통과된 내년도 예산안에는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 예산이 85억원 편성됐다.
해당 사업은 요양병원 간병비 일부를 정부 재정으로 지원하는 내용이다.
현재 요양병원 간병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와 가족의 비용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의료서비스경험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간병인 비용은 10만 1,207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에 300만원이 넘는다.
요양병원 간병비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올해 들어 주무부인 보건복지부가 지원 제도 마련에 나섰다. 대한요양병원협회가 지난해 12월 복지부에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을 제안했고, 복지부는 해당 사업을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16억원을 편성했다.
정부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는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 예산이 담기지 않았다.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 예산요구서를 받아 최종적으로 정부 예산안을 짜는 과정에서 해당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은 ‘재정건전성’이라는 정부 원칙에 따라, 역대급 긴축 예산으로 편성됐다. 올해 대비 증액 규모는 2.8%에 그쳤다.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연구개발(R&D) 예산을 16.6%나 줄여 ‘미래 투자를 포기했다’는 원성을 샀는데,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 사업과 같은 민생 밀착형 예산도 기재부의 칼질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은 윤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0월, “요양병원 간병비를 절반 이하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대선 이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110대 국정과제에 ‘간병 지원 내실화’가 포함됐다.
국회에서의 예산안 논의 과정에서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의 불씨가 살아났다. 지난달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해당 사업 예산을 80억원으로 증액해 의결했다. 복지위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 예산안에서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 예산이 빠지자, 대한요양병원협회가 국회를 상대로 예산 증액 설득에 나섰던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예산이 삭감돼 국회 상임위의 예산 심사가 진행되는 10~11월에 복지위 위원을 만나러 다녔다”며 “여야 의원 모두 간병비 문제의 심각성에 동감하고 지원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8일 오후 서울 구로구 더세인트요양병원에서 열린 간병비 급여화 정책 현장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11.28.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은 요양병원 간병비 문제를 당 차원의 의제로 잡아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0일 “국가가 간병비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며 관련 예산을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데 이어, 같은달 28일에는 요양병원 간병비의 급여화(건강보험 적용)를 총선 1호 공약으로 제시했다. 당시 이개호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간병비의 건강보험 적용을 실현해 나가겠다”며 “당장 내년 예산에 80억원의 10개소 시범사업비를 먼저 확보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간병비 부담이 너무 커, 가정이 파탄 지경에 이르기도 하니까 국가가 책임을 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돌연 윤 대통령도 지난 19일 “간병 지옥”을 언급하며, “국민 간병 부담을 하루빨리 덜어드릴 수 있도록 복지부가 관계부처와 함께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지시했다. “선거에서 지더라도 재정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더니 내년 총선을 앞두고 180도 달라진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이틀 뒤 복지부는 여당과 당정협의를 갖고, ‘국민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을 내놨다. 국회에서 예산이 복원된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이 담겼다. 내년 7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1년 10개 요양병원, 환자 600명을 대상으로 1차 시범산업을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고도환자와 초고도환자 간병비를 최대 180일까지 지원한다. 본 사업 전환 시점은 2027년으로 제시했다.
대통령 공약 사업이 긴축재정 기조 속에 정부 예산안에서 사라졌다가, 선거가 다가오자 갑자기 부활한 것이다.
정부가 세심하게 설계해야 할 간병비 대책을 선거용으로 이용하면서, 정책에 구체적인 고민이 담기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복지부 발표에는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은 제기되지 않았다. 현재는 간병비에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는 요양원에 있다가, 의사가 필요해 요양병원에 가면 간병비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상황이다.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강보험 적용하면서 발생하는 소요 재원은 보험료 인상으로 일부를 충당할 수 있지만, 정부 재정을 통한 건강보험 지원금 확대 필요성도 수반한다. 윤 대통령 공약도 요양병원 간병비를 지원하기 위해 건강보험 적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간호돌봄시민행동 김원일 활동가는 “이번 정부 발표에는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얘기가 전혀 없다. 뭘 하겠다는 건지 불명확하다”며 “시범 사업은 중단하면 그만이다. 급여화를 해야 환자가 간병을 안정적인 보편 서비스로 제공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 전담 간호 인력이 환자를 돌보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방안도 제기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하면 간병인을 별도로 고용하지 않아도 돼, 환자 비용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이번 발표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요양병원으로 확대하는 계획은 담기지 않았다.
김 활동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시행한 지 15년째인데, 총선을 앞두고 생색만 내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이 간병비 국가 책임을 강조했는데, 정작 국가 책임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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