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보산성; 성구산성(下堡山城; 城溝山城)
동북아역사넷 > 고구려문화유산자료 > 중국 > 요녕성 본계시(遼寧省 本溪市) > 본계현(本溪縣)
하보산성 위성사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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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출토지)
요녕성 본계시 본계현 소시진 하보촌 (遼寧省 本溪市 本溪縣 小市鎭 下堡村)
랴오닝성 번시시 번시현 샤오시진 샤바오촌 (辽宁省 本溪市 本溪县 小市真 下堡村)
유형 : 성곽>산성
형태사항 : 둘레 900m(쑨진지/孫進己·펑용첸/馮永謙, 1989; 아즈마 우시오/東潮·다나카 도시아키/田中俊明, 1995; 펑용첸/馮永謙, 1997), 1,100m(왕몐허/王綿厚, 1994), 2리(里)(천따웨이/陈大为, 1995; 웨이춘청/魏存成, 2002)라는 기록이 있음. , 1점
구조특징
하보산성(下堡山城)은 성구산성(城溝山城)으로도 불림. 포곡식(簸箕型) 산성이고, 평면은 거의 의권형(椅圈形)임. 성벽, 성문, 각대 등이 남아 있고, 유물로는 토기편이 출토됨.
성벽을 산세를 따라 돌로 축조하였다는 기록(왕위랑/王禹浪·왕홍베이/王宏北, 2007)과 서벽만 돌로 쌓았고 나머지는 토축이라는 기록(쑨진지/孫進己·펑용첸/馮永謙, 1989; 첸다웨이/陈大为, 1995)이 있음.
산성 안에는 샘이 있는데, 샘이 모여서 이루어진 시내가 산골짜기로 흘러 나가서, 태자하로 유입됨.
유물로는 모래혼입 홍색토기편이 출토됨(펑용첸/馮永謙, 1997).
역사적 의미
지리적인 면에서 볼 때, 요동평원에서 태자하를 거슬러 고구려 초기 중심지인 압록강 중류일대로 진입하는 교통로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됨. 다만 태자하 양안이 험준한 절벽으로, 교통로가 발달할 만한 지형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주요루트로 사용되었는지는 의문임(여호규, 1999).
지명비정에 관해서는, 왕몐허/왕면후(王绵厚/王綿厚)(1994)는 려산성(黎山城)으로 비정함.
쑨진지/손진기(孙进己/孫進己)·馮永謙(1989)은, 〈광개토대왕릉비〉에는 “永樂五年歲在乙未(영락오년세재을미), 王以稗麗不歸不息躬率往討(왕이비리불귀불식궁률왕토), 過富山負山至鹽水上破其三部落六七百營(과부산부산지염수상파기삼부락육칠백영), 牛馬群羊不可稱數于是旋駕(우마군양불가칭수우시선가), 因過襄平道東來O城力城北豊王備獵游觀土境田獵而還(인과양평도동래O성력성북풍왕비렵유관토경전렵이환)”이라는 기록이 있음. 북풍(北豊)은 삼국시대 위 요동군(魏 遼東郡)의 속현이었음. 晉에 이르러서 요동군은 없어졌고, 북풍(北豊)은 고구려에 속하게 되었음. 광개토대왕릉비에 보이는 비리(陴離)는, 위치상 『진서(晉書)』에 보이는 비리와 다른 것으로 추정됨. 일부 학자는 『요사(遼史)』에 보이는 비리(陴離)와 동일하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함. 『요사(遼史)』지리지의 “集州懷衆軍下刺史古陴離郡地(집주회중군하자사고비리군지)…… 統縣一奉集縣(통현일봉집현)”이라는 기록, 『발해국지(渤海國志)』의 “集州古陴離國有渾河(집주고비리국유혼하)”라는 기록, 『성동통지(盛京通志)』의 “奉集遺址在撫順城南八十里(봉집유지재무순성남팔십리)”라는 기록 등을 볼 때, 당시 광개토대왕 출병은 서북쪽으로 푸순/무순(抚顺/撫順) 남쪽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음. 다만 염수(鹽水)는 漢의 염난수(鹽難水)로, 지금의 훈/혼강(浑江/渾江)이라고 추정된다는 점에서 지리위치가 일치하지 않음. 그러므로 그곳이 지금 혼강(渾江)를 가리키는 건지는 좀 더 고찰해보아야 함. 광개토대왕은 비리(陴離; 지금의 무순 남쪽)에 도착하고 난 후, 양평도(襄平道)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여 고구려 왕도로 돌아왔음. 양평도(襄平道)가 양평(襄平; 지금의 랴오양/辽阳/遼陽/요양)에서 고구려왕성(지금의 지안/集安/집안)으로 가는 교통로이므로, 태자하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해 갔다고 할 수 있음. 역성(力城)과 북풍(北豊)은 이 교통로 상에 있으므로, 지금의 타이즈허/태자하 근처에서 찾아야 함. 역성(力城)을 먼저 지났으므로 서쪽에 있어야 하고, 북풍(北豊)은 나중에 지나왔으므로, 당연히 동쪽에 있어야 함. 현재 유관산성(有官山城) 근처에 태자하가 흐르고 있음. 이로 볼 때 유관산성(有官山城)이 역성(力城)으로 추정. 그리고 하보산성(下堡山城)은 북풍성(北豊城)으로 추정됨.
왕몐허/王綿厚(2002)에 의해서는 마미성(磨米城)으로 비정됨.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지리지(地理志)에는 당에 항복한 고구려의 성 가운데 하나로 마미성(磨米城)이 보임. 『자치통감(資治通鑑)』권(卷)198 당기(唐紀)에도 정관(貞觀) 19년(645) 당이 요동원정에 나섰을 때, 당이 정벌한 10여성 가운데 하나로 그 이름이 보임. 당이 정벌한 10여성은 요동성과 개모성 사이에 있다고 할 수 있음. 성의 교통로상의 위치, 고고학적 발굴성과,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의 기록을 볼 때, 하보산성(下堡山城)이 마미성(磨米城)에 부합한다고 추정됨.
자연환경
번시/본계현 샤오시/소시진(本溪縣 小市鎭) 북쪽 타이쯔허/태자하(太子河) 북안의 샤바오/하보촌 동산(下堡村 東山) 위에 산성이 위치함. 본계(本溪)에서 태자하(太子河) 북안을 따라 상류로 나아가는 도로가 산성 남쪽을 지나고 있음. 이 도로를 따라 태자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즈허/소자하(苏子河/蘇子河)나 훈/혼강(浑江/渾江) 연안으로 진입할 수 있고, 반대로 태자하 하류를 따라 내려가면 본계를 거쳐 요동평원으로 나아갈 수 있음. 산성 북쪽으로 3㎞ 떨어진 지점에 야오양토/요양두산(要洋头山/要洋頭山)이 있는데, 요양두산(要洋頭山)은 해발 934m로, 이 일대의 여러 산들 가운데 주봉(主峰)임.
유관산성, 하보산성 위치도
하보산성 부근 지형도
참고문헌
· 孫進己·馮永謙, 『東北歷史地理』, 黑龍江人民出版社, 1989
· 王綿厚, 「鴨綠江右岸高句麗山城硏究」『遼海文物學刊』 1994-2, 1994
· 東潮·田中俊明, 『高句麗の歷史と遺跡』, 中央公論社, 1995
· 陳大爲, 「遼寧高句麗山城再探」『北方文物』 1995-3, 1995
· 馮永謙, 「高句麗城址輯要」『高句麗渤海硏究集成』 高句麗 卷(三), 哈爾濱出版社, 1997
· 余昊奎, 『高句麗 城』 Ⅱ(遼河流域篇), 國防軍史硏究所, 1999
·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 文物出版社, 2002
· 魏存成, 『高句麗遺跡』, 文物出版社, 2002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 (上), 哈爾濱出版社,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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