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없는 마을'에 전과자 300명이?
 명품바위 '구럼비'도 흉물로 변해가
[정욱식 칼럼] 제주 해군기지, 냉정하게 따져보자
12.03.01 20:15 ㅣ최종 업데이트 12.03.01 20:15  정욱식 (cnpk)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 입장을 강력히 천명하면서 이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해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입장 변화에 대해 "선거철이 돼 전략적으로 할 수 있지만, 매우 안타깝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자 관련 기관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국무총리실은 지난 22일과 23일 관계대책회의를 열어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 입장을 정리했다. 이어 29일 이를 공식 발표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외부 세력'의 개입을 문제삼았다. 국방부와 해군은 '대양 해군' 부활을 공식 선언했고, 15만 톤 규모의 크루즈 선박을 정박시키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범죄없는 마을'이 범죄자의 소굴로?
 
▲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경찰이 강제 해산시키고 있다. < Jam Docu 강정>의 한 장면 ⓒ 시네마달

이에 맞선 반대 주민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종교인들의 결사 저항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이미 71일 동안 단식을 한 바 있는 양윤모 영화평론가는 또 다시 옥중 단식에 돌입해 20여 일을 보낸 상태. 그는 특히 해군이 구럼비 바위 발파 수순에 돌입하면 물과 소금도 끊겠다고 선언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의 '국제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월 24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주평화대회'에 참석한 20여 명의 세계 평화운동가들은 강정마을 주민들의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저항에 적극적인 동참 의사를 밝혔다.
 
지난 26일에는 카약을 이용해 구럼비 바위에 들어갔다가 무더기로 연행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들 중에는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영국의 활동가 엔지 젤터도 포함돼 있다. 그는 3월 하순까지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주민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강정 주민들의 분노와 울분도 커지고 있다. '외부 세력은 물러나라'는 정부와 제주도 지사의 발언에 대해 주민들은 "외부 세력은 바로 해군과 공사 업체, 그리고 육지 경찰들"이라고 반박한다. 주민들은 특히 합리적인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중앙 정부와 도정이 주민들을 이간질시키고 활동가들에게 색깔론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범죄 없는 마을, 강정마을'이라는 팻말이 무색하게도 정부의 공권력 남발로 300명이 넘는 전과자가 생겼다며 가슴을 치기도 한다. '벌금' 폭탄을 맞아 생계를 걱정하는 주민들도 한 둘이 아니다.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반대한다

▲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담은 영화 <잼다큐강정> ⓒ 시네마달

이렇듯 '국가안보와 국민경제를 위한다'는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순박한 주민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있다. 이들을 돕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활동가들과 종교인들은 '종북좌파 세력'으로 매도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저 구럼비가 좋아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예술인들의 목숨마저 노리고 있다.
 
한때 절대 보존지역이었던 구럼비 바위는 하루가 다르게 흉물로 변하고 있고, 200개가 넘는 계 모임이 있었을 정도로 평화롭고 정겹던 마을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하여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국책사업이냐고. 이러한 희생을 대가로 얻게 되는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의 실체가 무엇이냐고.
 
혹자는 말한다. 이미 주민투표로 결정된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1900명의 주민 가운데 87명이 작전하듯 모여 박수로 통과한 것을 과연 납득할 수 있느냐고. 이미 들어간 돈이 아까워서라도 계속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MB 정권이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일 때 즐겨했던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치러왔던 고통의 비용은, 그리고 공사를 강행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날 사회적 비용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것이다.
 
'외부 세력'이 개입해 문제를 일으켰다는 주장도 맹위를 떨친다. 그런데 2007년 4월부터 시작된 강정마을 주민들의 반대 운동에 '외부 세력'은 4년 가까이 무관심했다. '외부 세력'의 한 사람으로 4년 동안 강정 주민들의 피맺힌 절규를 제대로 몰랐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국책사업'이라며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입으로, 지역 문제이니 '외부 세력'은 빠지라고 말하는 정부와 보수언론의 자가당착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해군기지는 대중, 대미 관계에 독이 될 것

▲ 국제평화운동가들이 2월 25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문정현 신부와 함께 '평화의 절'을 하고 있다. ⓒ 이주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많은 문제점들이 있고 강정마을의 사연도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제주해군기지는 국가안보를 위해 꼭 필요할 것 아니냐고. 통상국가로서 바다가 중요하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로 큰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은 군사적 위협이 있었던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의 가장 큰 명분은 '이어도 보호'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한중 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경제수역(EEZ), 즉 미합의 수역에 한국이 먼저 해군 함정을 보내면 한중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국방부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규정상 미군이 우리 시설을 활용하려면 관련 정부, 외교통상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SOFA에는 '(미국의) 선박과 항공기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나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쉽게 말해 제주해군기지를 사용할 것인가의 여부는 한국의 승인 여부가 아니라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제주해군기지를 사용하면 한중 관계는 어떻게 될까? 만약 한국이 미국의 사용을 불허하면 한미 관계는 어떻게 될까?
 
'우리도 국력에 걸맞은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북한보다는 10배 이상 많은, 그리고 GDP 대비로는 일본보다는 3배, 중국보다는 2배 많은 군사비를 쓰고 있다.
 
단언컨대,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국가안보에도 국민경제에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강정마을의 작은 안보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의 큰 평화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더 크다.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민이 신기루와 같은 국가안보 담론에 사로잡혀 강정마을 주민들의 피눈물을 나몰라라 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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