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 ‘김일성 명의 메달’ 받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해야 하나?
권혁철의 안 보이는 안보
권혁철 기자 수정 2024-11-29 11:10 등록 2024-11-29 08:05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대통령 관저인 마린스키궁에서 열린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 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누리집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을 대표로 한 우크라이나 특사단이 지난 27일 윤석열 대통령,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김용현 국방장관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가 무기 지원을 요청했을 것이란 보도가 쏟아졌지만,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구체적인 면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공동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한국에 무기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우리 대표단이 곧 한국을 방문하고, 무기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며 “포병, 방공 시스템 등을 (요구사항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한국의 동맹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당연한 권리행사처럼 무기 청구서를 들이미는 걸까. 국내에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주자는 쪽은 “한국이 6·25전쟁 때 자유 세계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한국이 어려운 처지의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야지 한반도 유사시에도 자유세계가 한국을 다시 도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냉전 당시 소련연방의 일원이었던 우크라이나는 한국전쟁 때 공산침략에 맞서 싸운 게 아니라 공산침략 세력의 일원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국내 여행블로그 등에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있는 전쟁박물관 대외전쟁실에 전시된 우크라이나인들의 한국전쟁 참전 기록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한국전쟁 때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은 소련 공군 소속으로 미그기를 몰고 미 공군 등과 전투를 벌였다. 키이우 전쟁박물관에는 당시 소련군으로 참전한 미그기 조종사들 사진과 한글로 된 북한 정부의 우크라이나 조종사에 대한 표창 결의서, 인공기와 북한 주민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물 중에는 1985년 8월1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 김일성’이 ‘조선해방 40돌 기념메달’을 우크라이나 출신 소련군 조종사 크라마렌꼬에 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메달증’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소련군으로 참전한 우크라이나 출신 군인에게 수여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이름의 공적확인 결의서가 키이우 전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국방일보 갈무리
소련이 망하고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이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이 우크라이나 무기 공장에서 유출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2017년 8월14일 뉴욕타임스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보고서와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 분석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드니프로에 있는 군수공장에서 생산된 로켓 엔진(RD-250 계열)을 암시장에서 구매한 뒤 이를 개량해 2017년 5월과 7월 각각 발사한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형’과 ‘화성-14형’에 장착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략전쟁을 비판하고 한국에 무기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한국이 피해를 입은 일본의 침략전쟁에는 몰역사적 태도를 보였다. 지난 9월3일 주일 우크라이나대사관은 엑스(X)를 통해 “세르기 코르슨스키 대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잃은 분들을 애도했다”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일본의 전쟁범죄를 옹호하는 행위란 논란이 일자 주일 우크라이나대사관은 하루 만에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지난 9월3일 세르기 코르슨스키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사진과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했다 삭제했다. 주일 우크라이나대사관 엑스
한국 안보에 전혀 기여한 바가 없는 우크라이나와 달리 러시아는 1990년대 한국이 신궁(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천궁(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같은 유도무기를 만드는데 도움을 줬다. 1991년 소련이 망한 뒤 러시아의 첨단 무기 연구개발 인력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들은 월급이 100달러 가량이었고 이 마저도 수년째 못 받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돈이 급한 러시아와 첨단 군사기술이 절실한 한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천궁과 신궁 개발 과정에서 한·러 군사기술협력이 이뤄졌다. 특히 천궁의 ‘콜드 런치’ 발사 방식 개발에 러시아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콜드 런치는 미사일이 발사된 뒤 일정 고도까지 압력으로 밀려 올라간 뒤 점화하는 방식으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도 적용되는 기술이다.
공교롭게도 천궁과 신궁은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방공무기이다. 러시아의 원천 기술이 들어가 있고 한·러 기술협력으로 개발된 무기체계여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이 무기들을 줄 경우 러시아가 한층 강하게 반발한 가능성이 있다.
‘천궁’은 공중공격으로부터 국가 주요시설과 산업시설을 지키는 한국형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다. 국방과학연구소 누리집
‘신궁’은 공중으로 침투하는 적 항공기 및 소형 헬기에 대한 대공 방어 임무를 수행하는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이다. 엘아이지(LIG)넥스원 누리집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안보상 빚진 게 없는데도 우크라이나가 마치 빚쟁이처럼 한국에 무기 청구서를 들이미는 자신감은 윤석열 정부의 오판에서 비롯됐다.
우크라이나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공동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지만 두 나라가 처한 안보 위협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우크라이나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 자체가 직접적 군사 위협이지만, 한국 입장에선 파병 이후 반대급부로 진행될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더 위협이다. 구체적으로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의 개입,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첨단무기와 군사기술 이전을 막는 게 한국의 과제다. 우크라이나 처지에서는 북한이 러시아를 돕는 게 문제지만, 한국 처지에서는 러시아가 북한을 돕는 게 문제인 것이다.
한국은 러시아에 간 북한군 동향을 세밀히 파악하고 이후 러시아가 북한한테 줄 반대급부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추적 감시하면서 북·러 밀착을 차단하는 데 외교적 노력을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지난달 국가정보원이 북한군 러시아 파병을 기정사실화하고 대통령실은 서둘러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검토 방침을 밝혔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북한군 러시아 파병의 본질을 ‘북한의 러시아 돕기’로 오판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놓치지 않고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공동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한국에 무기 지원을 압박하고 있다.
주요국 대사를 지낸 전직 외교관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북·러 밀착을 막을 한국 외교의 대러시아 협상 지렛대를 스스로 버리는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 러시아는 더 이상 한국을 신경쓰거나 의식하지 않고 북·러 군사협력에 한층 속도를 낼 수 있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북·러 밀착을 견제 차단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없고 북-러 군사협력를 막는 둑이 무너지는 부작용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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