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찍어달란 건 안 찍고, 유튜버는 불난 데 기름 끼얹고"
[취재수첩] 끔찍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더 끔찍하게 만든 언론-유튜버
24.12.30 10:18 l 최종 업데이트 24.12.30 11:43 l 임석규(rase21cc)
지난 28일 서울 향린교회에서 '남태령 대첩 뒤풀이 집담회'를 취재한 이후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 대열에 합류하고 평택으로 돌아왔다. 약 12시간 동안 찬 바람을 맞으며 카메라·캠코더 장비를 들다 보니 피곤이 밀려와 사진·영상 파일들을 백업한 뒤 '내일 하루 쉴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잠들었다.
29일 오전 9시, 짓누르는 피로감을 떨쳐내며 일어난 뒤 그간 신경 쓰지 못했던 집안 정리를 하며 뉴스를 보다가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착륙하던 여객기가 활주로 끝 외벽과 부딪혀 사상자가 발생했단 소식이었다.
▲29일 오전 9시 3분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공항에 모여 뉴스를 보면서 현장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 임석규
순간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오마이뉴스 내방에는 '노동·시민사회·사회적 참사·개신교계 등을 전담으로 취재하고 있다'는 소개글이 있다. 과거 경기도 한 일간지 사회부 기자였을 때 복지 사각지대로 인해 발생한 '수원 세 모녀 참사'를 비롯해, SPC그룹 계열사 SPL 평택공장 여성 노동자 산재 사망과 10·29 이태원 참사 및 아리셀 참사 등 적지 않은 사회적 참사 보도를 이어왔다. 사랑하는 가족·동료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오로지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정부·기업과 유가족·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던 언론의 모습을 현장에서 많이 마주했기에 '나라도 해야 겠다' 싶어 장비들을 차에 싣고 출발했다.
달려간 현장에서 마주했던 것들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이 1차 현장 보고 직후 참사 현장인 활주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찰 당국으로부터 가로막혔다. ⓒ 임석규
내비게이션은 오후 1시쯤에야 현장에 도착한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마냥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한 대의 스마트폰으로는 방송사들의 실시간 참사 관련 보도를 틀고 다른 한 대의 스마트폰으로는 이전에 발생했던 항공사고에 대한 정보들을 띄웠다. 승객·승무원 등 181명이 탑승한 비행기가 랜딩기어를 펴지도 못한 채 동체착륙을 하다 속도를 못 이기고 외벽에 충돌해 폭발한 장면을 보고 '대형 참사구나'라는 불안감에 빠졌다.
여러 가지 생각과 걱정 속에서 쉬지 않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무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규모는 확실히 인천국제공항과 청주국제공항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서 활주로와 주차장이 황량해 보일 정도였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장비를 내려 공항 청사로 향했다.
▲유가족들이 참사 현장을 방문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잠시 면담하며 요구사항을 전하고 있다. ⓒ 임석규
그때 관제탑 방향 활주로 담장 쪽에서 여러 사람의 울음과 날 선 분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으로 향했다. 오후 1시 진행된 1차 현장 보고 직후 유가족들은 참사 현장인 활주로에 들어가려 했지만, 경찰이 이를 막고 있었다. 경찰과 공항 관계자들의 설명과 만류도 사랑하는 가족이 불탄 기체 어딘가에 있으리라 생각하는 유가족들의 답답함을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이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현장을 방문해 잠시 유가족들과 면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ENG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한 방송사 촬영 기자들에게도 '제발 이 답답한 상황을 좀 생방송으로 송출해달라'고 하소연을 할 정도였겠는가.
그런데 이때 유가족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상황이 발생했다. 유가족들 사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당했으니 지금 이 사고를 제대로 조사·통제가 되겠느냐'라는 엉뚱한 발언이 나온 것이다. 그 발언을 한 사람은 긴 봉에 스마트폰을 매달고 촬영하고 있었다.
당시 모여있던 유가족들은 그에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 하는 거냐", "유가족들 사이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마라", "유튜버는 물러나라"고 외쳤다. 그는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에 떠밀려 현장을 도망치듯 떠났다. 이 과정에서 한 유가족의 목소리가 필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기자들은 찍어달라는 건 안 찍고, 유튜버들은 숨어들어와 불난 데 기름을 끼얹고 있다."
열악한 취재 환경 속 부재했던 '재난보도준칙'
▲29일 오후 2시 45분 쯤 2차 현장 보고가 진행될 공항 청사 1층 대기실에서 한 유가족이 정부 관계자에게 희생자 신원확인을 신속히 진행해달라고 호소했다. ⓒ 임석규
다시 공항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브리핑실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려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가 그나마 반영돼 30분 간격으로 현장 보고를 진행한다는 정보를 받고 간 브리핑실은 사고의 규모와 달리 너무 협소했다. 겨우 몇몇 언론사 기자들이 자리에 앉고 보고 하는 관계자들이 앞에 서면 그 공간은 꽉 찼다. 브리핑실로 사용됐던 중회의실이 그 정도였는데 옆에 마련된 기자실은 그보다 더 좁아 전국 곳곳에서 모여드는 기자들을 제대로 수용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이어지는 브리핑은 유가족 다수가 모인 공항 청사 1층 대기실에서 진행한다기에 다시 이동해보니 이미 대기실은 전국 곳곳에서 모인 유가족들로 만원이었다. 유가족들은 믿을 수 없는 소식과 현실을 눈물과 울음으로써 부정해 보기도 하고 다른 가족들과 통화하면서 현장의 최근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사회적 참사 보도를 지금까지 이어왔던 기자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한없이 무기력함과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촬영하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큰 슬픔을 어찌 다 담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정부·소방·지자체가 함께한 2차 현장 보고 시간에 이진철 국토교통부 부산지방항공청장이 사고 개요를 발표하고 있다. ⓒ 임석규
오후 2시 45분에서야 정부·소방·지자체(도) 당국의 합동 현장 보고가 유가족들 앞에서 진행됐다. 수많은 ENG 카메라들과 프레스바디 및 풀프레임 사진 카메라들 사이에서 이진철 국토교통부 부산지방항공청장의 사과와 함께 시작된 보고는 사고 개요까지 진행되다가 이후 준비한 음향 장비가 갑자기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발표자의 소리가 안 들린다는 일부 유가족들의 항의 속에 소방 관계자는 신원이 확인된 5명의 희생자 이름을 한 명씩 불렀다. 살아있을 것이라 믿은 유가족들의 절망에 찬 오열은 공항 청사를 가득 메웠다. 이후 오후 3시 30분쯤 다시 한 번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 22명의 이름이 불렸다. 비통함 속에서 유가족들은 두 번째 공지 속 희생자 명단이 앞서 공지한 것과 다름을 지적하면서 정부의 대응·소통 미흡을 질책했다.
피눈물과 통곡이 마르지 않는 공항 청사에서 카메라 셔터음도 끊이지 않았고 ENG 카메라들의 시선은 그러한 아비규환의 장면을 담아내기에 바빴다. 그리고 기자들은 관계자와 유가족들의 발언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들의 곁에 다가갔다.
기자의 본분이 현장을 담아내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라는 건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너무 과했다. 눈물과 통곡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기자들에게 유가족들은 "찍지 마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유가족들이 당국의 현장 보고와 후속 대처에 대응하기 위해 대표자를 선출하고자 회의를 열 때 기자들에게 내부적으로 논의를 하기 위해 철수를 요구하면서 한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기자분들, 정말 죄송한데 저희가 유가족입니다. 연예인들 아니에요. 딱 한 판만 찍고 더 이상 찍지 마시고 뒤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억누르고 있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저희가 동물원의 원숭이가 아니잖아요?"
현장을 떠나며
▲당국의 현장 보고와 후속 대처에 대응하기 위해 대표자를 선출하고자 회의를 열 때 한 유가족이 언론·미디어들의 과도한 취재를 자제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 임석규
이날 오후 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영상기자협회는 '무안공항 항공기 사고 취재·보도 유의사항'을 통해 "피해자 본인과 가족, 시청자들의 심리적 충격과 트라우마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참혹한 장면, 이를테면 폭발 장면이나 사망자의 시신 또는 그 일부, 부상자의 초상이 노출되거나 반복 사용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자·영상 편집자·보도 책임자들에게 권고했다.
또한 한국기자협회도 재난보도준칙을 긴급공지로 내면서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피해자 가족의 오열 등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상관없는 흥미 위주의 보도 등은 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고 당일 무안국제공항에서는 그 재난보도준칙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없었다. 유가족들의 피울음은 영상과 사진으로 유출됐고 참사 책임을 야당으로 떠넘기려는 듯한 논조의 언론 보도들 아래에 지역 비하 댓글들이 달리고 있으며, 심지어 조선일보는 승객 명단 공개했다 삭제하기도 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어질어질한데 소위 '조회수 상승'를 노리며 참사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는 유튜버들까지 등장한 것을 보니 '내가 이런 막장 속에서 언론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사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구나'라는 자조까지 들었다.
▲정부 관계자의 입장표명을 취재하기 위해 수십명의 기자들이 몰렸던 상황. ⓒ 임석규
오늘날 시민들이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곳은 바로 무안국제공항이었다. 수많은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이 자제하지 않는 언론·미디어들의 횡포에 시달렸음을 알게 된 제주항공 참사 피해자들은 무모하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유튜버들에게 확실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언론·미디어들이 이 신호를 제대로 읽어내고 반영하지 못한다면 향후 더욱 민주적 의식화가 진행될 미래사회에서 기자·유튜버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면 국민들은 빛 속에서 살 것이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면 어둠 속에서 살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윤석열 정권의 퇴진 과정을 누군가가 '빛의 혁명' 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이 명제는 널리 확산되고 있다. 언론·미디어 종사자들도 이 역사를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여 자신을 혁신해 시민들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려가야 하지 않을까. 그 까닭에 이 인사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들께 진심어린 위로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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