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캐비닛’은 통제 안되는 내사와 인지수사의 결과
기자명 박인호 서울 우신치과 원장   입력 2025.03.06 06:10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이대로 좋은가? ③]
검찰의 선택적 수사∙구속 등 막강 권력은 일제 식민 잔재
‘판사의 재판권 독점’이 권한 남용과 전관예우의 배경
개헌안에 ‘유죄협상, 배심제, 치안판사제’ 등 담아야
2심 재판 법률심으로 하고 사법의 민주적 통제 강화해야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2007년 12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명박의 주가조작,  BBK 및 다스 실소유 관련 의혹에 대해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2007년 12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명박의 주가조작,  BBK 및 다스 실소유 관련 의혹에 대해 모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검사와 판사의 자의적 판단이 많이 개입하면 어떻게 될까? 수사와 재판 대상자가 사법제도를 신뢰할 리 없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사법 불신 국가가 된 배경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사법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수사∙기소∙재판 분리를 기본적인 틀로 제도화했다. 일반적으로 수색 및 체포, 구속 등의 영장발부 제도는 수사 단계에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영장 발부는 영장판사 또는 수사판사가 수행한다. 이때 영장을 발부하거나 수사를 지휘한 판사는 해당 재판에서 배제해 객관적인 심리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수사 및 기소를 담당했던 검사와 재판에 임하는 공소 유지 공판검사를 분리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이렇듯 대다수 선진국은 검사의 전횡을 막기 위해 수사 단계에서 판사가 일정한 역할을 한다.  
 
유례없는 검찰의 수사 및 영장청구권 독점
 
선진국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수사, 기소, 공소를 모두 검사가 담당한다. 수사 과정의 영장 청구권이 검찰에게만 부여돼 있고 영장발부 여부만 판사가 심사한다. 선택적 수사, 선택적 구속의 기형적인 사법 관행이 이어지는 배경이다. 검찰을 통치 수단화한 일제잔재, 독재잔재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식민 통치권과 군사 독재가 사라진 지금,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은 바로 선택적 수사 및 구속을 가능하게 해주는 잘못된 사법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의적 수사권 남용의 증거 ‘검찰 캐비닛’
 
수사는 고소, 고발, 내사로 구분된다. 고소는 사건당사자의 신고로, 고발은 제3자의 신고로 이루어진다. 수사가 진행되고 결과가 나오면 기소∙불기소 결정을 피의자와 고소인, 고발인에게 통보한다. 그런데 우리 수사단계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게 통지 없는 내사와 인지 수사다. 내사와 인지 수사는 피의자 등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기소 여부를 통보해주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한국 검찰은 수사를 하다가 종결 처리 없이 캐비닛에 넣어두고는 필요할 때 다시 제기하는 관행을 이어오고 있다. 검찰 이익을 위해 권력의 사냥개 노릇을 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검찰권 남용을 상상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 검찰의 힘이 바로 비민주적이고 인권 침해적인 자의적 수사권 남용에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여러 정치적 사건에서 실감해왔다. 명백한 불법이자 청산해야 할 일제 잔재다. 
 
검찰, 정치적 사건 멋대로 불기소...수사권과 기소권 분리해야
 
미국은 기소 단계에서 대배심제가 원칙이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은 배심원단이 심사한다. 일본은 시민위원회가 검찰의 불기소사건을 판단한다. 독일은 기소법정주의라 검찰의 기소 재량권이 없다. 이렇듯 대다수 선진국은 검찰의 기소권 독점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검찰은 기소를 독점한다. 어떤 폐해가 나타날까? 고소와 고발 사건은 검찰 불기소 때 달리 처리된다. 고소 사건은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으나, 고발 사건은 법원의 재정신청이 아닌 고등검찰청에서 심사해 결정한다. 검찰의 오류를 검찰이 다시 판단하는 것이다. 이 제도의 문제점이 드러난 게 바로 이명박 BBK 고발 사건이다. 검찰이 시민단체의 고발 사건을 불기소 처리했고, 고등검찰청도 종결 처리해 완벽하게 권력자를 봐준 것이다.
 
선진국처럼 고발 사건도 재정신청이 가능해야 한다. 또한 기소 법정주의, 대배심제, 시민위원회 심의 등 검찰의 자의적 결정을 막을 수 있는 선진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헌법의 ‘법관의 재판권 독점’ 조항이 배심제 도입 막아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했다. 언뜻 보면 죄형 법정주의로 법치주의의 완결판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 조항은 역설적으로 법치를 가장해 시민 주권을 침해하는 반민주적 내용이다. 
 
선진국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치안판사제, 배심제, 참심제 등을 활용해 재판을 진행한다. 검사와 판사의 자의적 결정이 아닌 시민들의 집단지성과 상식이 투영된 재판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영국은 3,000만원 이하 벌금이나 6개월 미만 징역형에 해당하는 경미한 형사재판은 치안판사가 97%를 담당한다. 항소율은 불과 1%. 우리나라 형사사건 항소율이 60%에 육박하는 것과는 비교가 된다. 
 
미국은 민사∙형사 사건의 95%가 재판 없이 종결된다. 시민이 참여하는 배심제 재판은 3% 미만이다. 배심제에서 무죄 판결이 나면 검찰은 항소할 수 없어 사건은 종결된다. 배심제는 1심이 사실심, 2심은 법률심이다. 2심 재판관은 1심재판의 법률적 문제점만 검토하므로 우리나라처럼 권한이 크지 않다. 따라서 항소율도 낮고 당연히 전관예우도 발생하지 않는다.
 
독일은 참심제를 통해 검찰권 남용을 방지하고 사법권의 시민 참여를 보장한다. 참심제의 경우 2심에서도 사실심을 하기에 재판관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비토권을 가진 참심원과 판사가 같이 평결하기 때문에 판사의 자의적 권한 행사를 막을 수 있고 전관예우도 생기지 않는다. 
 
넘치는 대법원 사건과 막강한 주심 권한이 전관예우 토대
 
우리나라는 1심 지방법원과 2심 고등법원이 사실심으로 진행되니 연간 4만5,000여건이나 되는 많은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온다. 이 중 70%를 대법관 예하 재판연구관들이 ‘심리 불속행’으로 처리한다. 결국 70%의 사건은 2심이 최종심인 셈이다.
 
나머지 약 1만5,000건을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3개의 소부(小部)에 배당한다. 1부당 5,000건을 4명의 대법관에게 배분하면 1인당 약 1,250건을 주심으로 맡게 된다. 여기에서 합의가 안된 30건 정도의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돌린다. 사건이 워낙 많다 보니 5분정도 상의 후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합의는 날림이고 주심 대법관의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대법관 전관예우가 하늘을 찌르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배경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연간 올라오는 약 8,000건의 사건 중 판례심에 해당하는 80여건만 추려 재판한다. 독일은 연방대법원이 6개 분야로 나뉘어져 있고 대법관 수도 140명에 달한다. 일본은 2심을 사후심으로 운영해 대법원에 오는 사건을 많이 줄이고 있고, 대법관 구성도 전체 15명 중 5명은 학계에서 선발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배심제는 1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검찰의 항소 금지로 종결된다. 유죄 판결은 3분의 2 이상의 합의를 요구할 정도로 엄격하다. 독일 참심제는 2심에서 무죄면 역시 검찰 항소 금지로 종결된다. 결국 대법원에는 유죄사건만 올라가며, 소부에서 합의가 안되면 전원합의체에서 다수결로 무죄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우리나라는 검찰의 항소가 무제한 가능하다. 속히 없어져야 할 반민주적 제도다.
 
전관예우가 만든 ‘유전 무죄, 무전 유죄’
 
특수부장 출신의 변호사 홍만표는 1년에 100억원 이상 벌었다. 전직 판검사의 사건 수임료가 수십 억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는 국민 상식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사법 질서에 대한 국민 불신이 폭발 직전이다.
 
한국 검찰은 직접수사, 영장독점청구, 기소편의주의로 무장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전관예우가 횡행할 수밖에 없다. 실제 검찰 전관의 경우 수임료가 건당 5,000만원을 웃돈다. 전관 변호사 스스로 ‘허가 받은 도둑놈’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이승만 시절부터 법조계가 카르텔을 형성해 철저히 변호사 인력을 억제해온 게 전관예우 풍토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사법고시 제도는 이승만 시절 연간 30여명, 박정희 시절 80여명, 전두환 시절 100~200명을 선발、필요한 판검사 숫자만 채우고, 중도 퇴직하면 변호사를 개업하는 환경을 조성해 자연스레 전관예우 카르텔이 만들어졌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시절부터 법조인을 충분히 양성해 판검사가 정년퇴직을 하는 전통이 자리잡았다. 한국처럼 판검사 출신 변호인이 없고, 법조 카르텔도 전관예우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검찰은 내사 단계에서 정보를 흘려 전관들이 구속수사 무마로 엄청난 이권을 챙기는 풍토를 만들어준다. 기소편의주의 또한 전관들의 훌륭한 먹잇감이다. 검찰 선후배와 결탁해 사건 하나에 수억~수십억원을 챙기는 전관 변호사들은 현직 검사들의 미래 희망이기도 하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수사와 재판에 민주적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는 선진국형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피해자 배려 위한 ‘유죄협상’ 제도 도입 시급
 
우리나라 형사소송 과정에는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1심 재판 후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를 하는 구조여서, 가해자는 2심 재판에서 형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매달린다. 재판 지연과 법조인의 업무과중으로 이어지는 불합리한 제도다. 기소 단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와 보상이 이뤄지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려면 선진국처럼 ‘유죄협상’ 제도(플리바게닝)가 도입돼야 한다.
 
유죄협상을 통한 사법 처리는 피해자, 가해자 모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선 사건의 빠른 종결과 확실한 가해자 처벌을 기대할 수 있다. 가해자 역시 재판 없이 형량을 줄일 수 있고 사법당국은 사건의 빠른 처리로 인력과 시간이 절감된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빠른 사회복귀를 위한 최상의 제도이고 사회적으로도 사법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개헌 논의가 활발하다. ‘87년 체제’를 혁파할 제7공화국 헌법에는 검찰의 수사권∙기소권 남용과 법원의 독점적 재판권 행사에 따른 인권 침해와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다음의 사법 개혁안이 포함돼야 한다.
 
① ‘법관에 의한 재판’을 규정한 헌법 제27조 1항을 개정해 시민이 참여하는 배심원제 및 치안판사제를 도입한다. 이들에게 형량 6개월 미만 형사사건, 청소년사건, 소액사건을 맡기는 게 공정한 재판과 민주주의 공동체 회복에 도움이 된다.
 
②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되, 검경 수사인력을 흡수한 중대범죄수사청을 설치한다. 검찰의 내사나 인지수사도 기소 여부 결정 후 일사부재리 처리와 당사자 통보를 의무화한다.
 
③ 검찰 불기소 사건은 모두 재정신청을 허용한다. 사회적 영향이 큰 사건은 대배심제를 운용하며 유죄협상 제도를 도입해 회복적 사법시스템을 구축한다.
 
③ 2심 재판을 법률심으로 운용해 상고사건을 대폭 줄인다. 대법원을 엄격한 판례심으로 운영해 업무 과중과 부실 판결을 막는다.
 
④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해 재판관 구성을 다양화하고, 판사 재판에 대한 관리감독기능을 부여해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사법시스템을 구축한다.  
 
박인호는 경희대 치과대학을 나와 서울 우신치과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노사모 활동을 계기로 시민의 정치 참여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명숙 모해위증 사건을 보고 대한민국 사법제도를 독학했다. 2023년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제안으로 사단법인 희망래일이 운영하는 대륙학교에서 사법개혁을 강의하기도 했다. 사법개혁을 가로막는 법조 카르텔을 고발하고, 시민 참여 사법개혁의 방향을 알리는 활동으로 ‘시민 사법개혁 전사’라는 평가를 얻었다. 사법 질서가 바로 잡혀 진정한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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