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박정훈 대령 계속 모욕주는 해병대사령부
[김형남의 갑을, 병정] 15개월 황제연수 임성근, 18개월 면벽수행 박정훈
사회 김형남(khn8911) 25.01.23 16:20ㅣ최종 업데이트 25.01.23 16:54 
 
▲2024년 7월 19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국민동의 청원 관련 청문회에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남소연
 
군 장성들은 군인사법에 따라 국내외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에 연수 및 교육을 위하여 파견될 수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정책 연수를 간 장성은 총 57명이다.
 
연수는 통상 6개월 이내로 간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보직을 받고 임무 수행을 해야 하는 군인이 연구 목적으로 가는 연수를 이보다 더 길게 가기는 어렵다. 이외 보직을 받지 못해 전역을 앞둔 장성들에게 전역 준비 목적으로 3개월가량의 연수를 발령하기도 한다.
 
3년간 연수를 간 장성 중 1년 넘게 정책 연수를 간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해병대 전 1사단장 임성근 소장이다. 그는 2023년 11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13개월간 마땅한 현행 임무 보직 없이 정책 연수 기간을 가졌다. 그런데 2024년 11월 정기 장군 인사에서 새로운 보직을 받지 못해 또 3개월 기한의 정책연구관으로 발령되었다. 임 전 사단장은 도합 15개월 동안 소장 월급을 받으며 연구와 연수만 하고 있는 것이다.
 
해병대에는 소장 보직이 5개 있다. 임 전 사단장이 보직 없이 소장 계급을 차지하고 있는 통에 1년 넘게 소장이 보임되어야 할 해병대 부사령관 자리가 준장으로 메워져 있다. 3개월 기한의 정책연구관 보직이 만료되면 임 전 사단장은 전역하는 것이 수순인데, 해병대 일각에서는 임 사단장이 계속 보직을 요구하며 자진 전역을 거부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임 전 사단장이 13개월 간의 연수 동안 작성한 보고서가 결과적으로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한 자기변호나 다름없는 내용이라는 문제 제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임 전 사단장이 명받은 연수 장소는 육군사관학교 화랑연구소인데 출퇴근 길이 멀다며 실제 출근은 영등포 관사 근처에 있는 해군 재경대대로 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한 문제의 중심에 있는 임 전 사단장에게 윤석열 정권이 특혜에 특혜에 특혜를 더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사 준비에 전념하겠다며 정책연수를 자원했던 그는 별다른 현행 임무 없이 연수생, 연구관의 지위를 누리며 15개월째 검찰과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받고 있다.
 
정년 맞춰 전역시키려는 꼼수 아닌지 의심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항명과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군사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들어가기 전 시민들의 응원말을 듣고 있다.이정민
 
지난 9일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아무런 보직도 없이 18개월째 책상 하나 덜렁 놓인 사무실에서 면벽 수행을 하고 있다.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은 2023년 8월, 국방부검찰단의 항명죄 입건에 발맞춰 박 대령의 수사단장 및 병과장 보직을 모두 해임해 버렸다. 2023년 10월에는 기소를 빌미 삼아 강제로 휴직도 시키려 했는데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유야무야 되었다. 그러다 1심에서 무죄 선고가 난 것이다.
 
보통 형사 사건 피소 등으로 인사 조치가 취해진 경우 하급심 무죄 선고를 받으면 원대 복귀시키거나 복직시키는 경우가 있다. 3심에 이르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법원이 일차적으로 무죄를 선고한 마당에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불이익 상태로 두는 것이 부적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령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해병대사령부는 '박정훈 대령 인사 관련 조치는 확정판결 이후 검토하겠다'며 박 대령을 계속 무보직 상태에 두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대령이 보직 해임된 이유는 김계환 전 사령관에 대한 '항명'이다. 그런데 1심 군사법원이 김 전 사령관의 명령은 정당하지 않았다고 판시하여 죄를 덮어씌운 격이 된 해병대사령부가 박 대령을 계속 불이익 상태에 두겠다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장교를 장기간 무보직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군인사법상 보직 해임된 장교는 해임으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새롭게 보직을 받지 못하면 현역복무부적합심의를 받아야 하고, 심의 결과 복무 적합 판정을 받으면 지체없이 새로운 보직을 부여해야 한다.
 
박정훈 대령을 무보직 상태로 아무런 절차도 밟지 않고 18개월이나 방치하고 있는 것은 해병대사령관의 직무 유기다. 외압의 공범인 김계환 전 사령관은 그렇다 쳐도, 주일석 신임 사령관까지 위법 행위에 가담하는 까닭을 이해하기 어렵다. 박 대령이 국방부조사본부나 해병대수사단으로 복귀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탓에 상고심 판단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년에 맞춰 전역시키려는 꼼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윤석열의 격노로 시작된 채 상병 사망 사건으로 이미 보직 해임되어 군문을 나섰어야 할 한 사람은 전례 없는 장기간 황제 연수로 누릴 것 다 누리며 변론을 준비하고 있고, 정상적 임무 수행을 했다는 이유로 누명을 뒤집어쓴 다른 한 사람은 기약 없는 무보직 상태로 법과 규정의 테두리 밖에서 사실상의 감옥 생활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윤석열만 엮이면 모든 법과 절차가 깡그리 무시되는 세상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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