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93분간 의원 체포지시 6번…빨라지는 탄핵시계
CBS노컷뉴스 이재웅 논설위원 2025-02-19 06:00
조지호 경찰청장 진술조서 공개…"국회 들어가는 의원들 다 잡아"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해 변론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 처리를 전후한 1시간 33분 동안 총 6차례에 걸쳐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 내용이 공개됐다.
18일 오후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심판 9차 변론에서 국회 측이 공개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조 청장은 수사기관에서 "전화를 받았더니 대통령은 저에게 '조 청장! 국회에 들어가는 국회의원들 다 잡아, 체포해. 불법이야'라고 했다. 뒤의 5회 통화 역시 같은 내용이었다. 대통령이 굉장히 다급하다고 느꼈다"고 진술했다.
조 청장은 계엄 당일인 지난해 12월 3일 밤 11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 3분까지 윤 대통령으로부터 6차례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새벽 1시 1분쯤 결의안이 극적으로 통과됐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윤 대통령이 국회의 기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음을 짐작케한다. 조 청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도 통화했다. 여 전 사령관이 첫 번째 통화에서 이재명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김동현 판사를 포함해 체포자 명단 15명을 불러줬고, 두 번째 통화에서는 "한동훈 추가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은 군 검찰조사에서 명단을 특정해 체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비상계엄 직후 장관으로부터 처음 들은 게 맞지만 "(대통령이 평소에) 비상조치권을 사용하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진술했다. 조지호 청장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일 뿐아니라, 여 전 사령관의 진술이나 앞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차장의 진술까지 감안할 때 체포대상자 명단의 존재와 정치인 체포지시가 증거로 충분히 뒷받침된다는 국회측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의원이 아니라 요원을 빼내라고 했다'는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의 주장도 궁색해졌다.
조지호 청장의 조서 내용이 공개되자 윤 대통령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반대신문을 할 수 없는 진술조서에 대해 증거로 조사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에 위반된다는 것인데, 재판부는 증거채택 결정은 4차 기일에 이미 이뤄졌다고 일축했다. 헌재 심판정을 박차고 퇴장한 변호인은 비상계엄 선포가 '계몽령'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던 조대현 변호사다. 법조계에서는 증거와 논리로 반박해야 하는데 실패하니까 최후 선택은 문을 박차고 나간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헌재는 윤석열측 연기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10차 변론을 예정대로 오는 20일 열기로 해 탄핵심판 절차는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그동안 계엄군이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12월 4일 새벽 국회 본관의 전력 일부를 차단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야당에 대한 '경고용 계엄'이었다는 윤석열측 주장과 달리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되고 실행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은 지난해 6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국방장관과 주요 사령관들이 모인 회동에서 계엄을 암시한 것으로 보이고,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계엄 1달여 전부터 롯데리아 회동에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모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노상원 수첩에는 좌파세력 체포와 사살계획, 비상계엄 후속조치, 3선 집권 방안 등이 등장한다. 노 전 사령관이 수첩과 관련해 '김용현 전 장관이 불러주는대로 받아적었다'고 진술한 걸로 알려진 만큼 계엄세력 내에서 계엄모의와 하달이 치밀하게 이뤄졌음을 짐작케한다.

계엄이 선포된 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서 군인들이 국회 관계자들과 충돌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12.3 비상계엄 당시로 돌아가보자. 그날 국회의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 통과가 지체됐다면, 혹은 계엄군이 본관 2층 분전반을 일찍 발견해 새벽 1시 이전에 본회의장을 암흑천지로 만들었다면…, 노상원 수첩에 등장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었을 지 모른다. 끔찍한 상상이다. 다행스러운 건 온갖 법꾸라지 행태에도 불구하고 탄핵시계는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거짓과 궤변이 다수의 부하들에 의해 뒤집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단죄의 시간…깨어있는 시민의 힘 필요
우려스러운 건 탄핵심판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일부 정치권과 극우세력의 반헌법적 행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겨냥한 가짜뉴스가 넘친다. 헌재 흔들기는 반헌법의 연장이다. 전광훈 목사는 '목사와 스님이 선거를 감독하면 된다'며 부정선거음모론을 거리낌없이 내놓는다. 국민의힘은 보수정체성을 잃은 채 '극우세력에 먹혔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전체주의의 망령을 걷어내고 민주주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필요한 건 준엄한 심판을 통한 역사적 단죄 뿐이다. 반헌법적 모험은 반드시 실패하고 단죄된다는 경험이 누적돼야 한다. 지금은 단죄의 시간이다. 헌재는 신속한 심판으로 엄정하게 파면 여부를 결정하되, 시민들도 내란동조세력의 거짓선동에 맞서 파수꾼처럼 깨어있을 때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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