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 개입 해명할 차례다 
[표지이야기] 정부 관계자, <한겨레21>에 “최종석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 총리실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했다” 증언…단독 입수한 총리실 주무관 상고이유보충서 “검찰의 압수수색은 증거인멸 제대로 했는지 확인 차원” 나와
[2012.03.12 제901호]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2010년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의 폭로로 드러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의 불법사찰은 권력의 비열함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권력은 ‘친노’로 의심된다는 이유로 김종익씨의 재산을 빼앗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 했다. 그를 사찰한 사실이 알려지자 권력은 그 증거를 없애버렸고, 이 과정에서 시정잡배나 쓰는 대포폰까지 동원했다.

김씨 등을 사찰한 혐의(강요 등)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과 김충곤 전 점검1팀장은 지난해 4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원충연 전 조사관은 징역 8개월, 김화기 전 수사관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화기 전 수사관을 제외하고 구속 기소됐던 세 사람은 모두 형기가 끝났다. 증거인멸 혐의를 산 진경락 전 총괄지원과장은 2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장진수 주무관과 권중기 조사관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수사와 재판이 2년 가까이 진행된 지금까지도 사건의 ‘몸통’ 또는 ‘윗선’ 의혹을 받은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과 관련된 내용은 하나도 확인되지 않았다. 수사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법기관이 나설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진실을 찾아나서야 한다. <한겨레21>은 당시 지원관실 상황에 밝은 정부 관계자를 지난 2월29일 만나는 등 여러 차례 접촉했다. 또한 1만여 쪽에 이르는 수사·재판 기록을 입수해 검토했다. 관련자들의 진술과 증거자료에서, 조금이라도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를 찾으려고 했다. 재판 중인 이들과 ‘윗선’을 연결할 고리는 분명히 있었다. 또한 검찰 수사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주는 정황도 찾아냈다. 지원관실이 전방위적으로 불법사찰을 벌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도 발견했다. 이렇게 많은 퍼즐 조각을 맞추지 못하도록 막은 건 누구였을까?_편집자

≫ 사진 한겨레 이종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이 만천하에 드러난 직후, 관련자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다. 사찰 관련 자료를 모두 없애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검찰은 증거인멸을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지시해 장진수 전 주무관과 권중기 전 조사관이 실행했다고 밝혔다. 온전히 ‘지원관실 소행’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원관실뿐만 아니라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증거인멸에 나섰으며, 사전에 검찰과 수사를 조율했을 가능성까지 보여주는 주장이 나왔다.

청와대 행정관 “컴퓨터 강물에 버려도 좋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정부 관계자는 <한겨레21>에 “2010년 7월7일 오전 최종석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이 장진수 당시 주무관에게 ‘내일쯤 검찰에서 지원관실 압수수색을 들어온다고 한다. 오늘 중으로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점검1팀 컴퓨터 전체와 진경락 과장 컴퓨터를 물리적으로 조치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최종석 전 행정관은 지원관실이 증거인멸 과정에 이용한 ‘대포폰’을 만들어 건넨 인물이다. 지원관실 설립·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의 직속 부하다. 최 전 행정관이 대포폰을 만들어줬다는 사실이 드러나 청와대가 증거인멸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거세게 제기됐지만, 검찰은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서울시내의 한 호텔로 ‘출장조사’를 나갔다 온 검찰은 “대포폰을 빌려주며 범죄에 사용될 것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다”고 그에게 면죄부를 줬다. 청와대도 검찰의 결론을 근거로 그를 감쌌다. 최 전 행정관은 지난해 8월 주미 한국대사관 주재관으로 발령받아, 현재 미국 워싱턴에서 지내고 있다.

정부 관계자의 증언은 최 전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도운 수준을 넘어 직접 지시했다는 뜻으로, 검찰 수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또한 청와대와 검찰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손발을 맞췄다는 얘기도 된다. 이 관계자의 주장은 이렇다. 2010년 7월7일 오전 최 전 행정관은 장 전 주무관을 청와대로 불렀다. 청와대에서 국무총리 공관으로 향하는 길의 벤치에서 최 전 행정관은 “하드디스크를 망치로 깨부수든지, 컴퓨터를 강물에 갖다버려도 좋다. 민정수석실과 얘기가 다 됐다. 검찰에서도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며 증거인멸을 지시했다. 그러면서 “이건 극비 사항이니 아무 데도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미 장 전 주무관은 진 전 과장의 지시로 이틀 전 ‘이레이저’(Eraser)라는 파일삭제 프로그램을 이용해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파일을 지운 뒤였다. 하지만 최 전 행정관은 “검찰은 어떻게든 복구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물리적으로 조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정 쪽에서 우리한테 자료를 없애라고 요구하고 있고, 검찰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민정한테 약속했다”고 말했다. 지원관실 사무실로 돌아온 장 전 주무관은 디가우징(강한 자력으로 파일을 복구 불가능하게 파기하는 것) 업체를 수소문했다. 진 전 과장은 “최 행정관이 시킨 거 있지? 그거 빨리 해”라고 채근했다. 그날 오후 3시께 다시 최 전 행정관이 장 전 주무관을 청와대로 불렀다. 휴대전화 하나를 건넸다. “‘EB’(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가 오전까지 사용하던 거다. 그 안에 다른 번호가 하나 저장돼 있을 텐데 (증거인멸 상황을 보고하는) 통화는 그걸로만 하자”고 추가로 지시했다. 이 휴대전화가 바로 문제의 대포폰 가운데 하나였다.

실제 장 전 주무관은 그날 오후 경기도 수원의 한 업체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4개를 디가우징했다. 수원으로 가며, 또 ‘일’을 마친 뒤 여러 차례 이 대포폰으로 최 전 행정관 등과 통화를 했다. 검찰은 이틀 뒤인 7월9일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했다. 국무총리실이 수사를 의뢰하고, 특별수사팀을 꾸린 지 나흘이나 지나 이뤄진 늑장 압수수색은 불법사찰 관련자들이 증거를 모두 없애도록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난을 받았다.

≫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개요

이 관계자의 말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주장도 있다. 장 전 주무관이 지난해 6월 대법원에 낸 상고이유보충서가 그것이다. 장 전 주무관은 “최 전 행정관이 (대포폰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기 전, 청와대 김진모 민정2비서관을 찾아가 ‘내가 연루되어 들어간다면 민정수석실도 멀쩡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김 비서관이 (서울)중앙지검 수뇌부 누군가에게 전화해 ‘어떻게 사건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느냐’고 질책했다”고 썼다. 청와대가 여권 내부에서도 제기되는 불법사찰·증거인멸에 대한 청와대 연루 의혹을 극구 부인하고, 최 전 행정관이 이례적으로 검찰청사 바깥에서 조사받은 사실 등을 고려해보면, 이런 주장은 청와대와 검찰이 조율을 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김진모 전 비서관은 “말도 안 되는 얘기고, 사실무근”이라며 “사찰 문제가 터졌을 때 민정수석실은 지원관실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비판받았다.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관여를 하느냐”고 반박했다.

장진수 전 주무관은 “진 과장은 차 안에서 내게 전화를 했고, 최종석 행정관은 그때 차에 함께 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검사에게 설명 들었다. 최 행정관 본인도 직접 내게 진 과장이 전화로 그런 지시를 하는 것을 함께 차 안에서 들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최 행정관도 진 과장 지시 들었다고 진술”

장 전 주무관의 상고이유보충서에도 최 전 비서관이 증거인멸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점상으로는 최 전 행정관이 그에게 ‘확실한 증거인멸’을 직접 지시하기 사흘 전인 7월4일 벌어진 일이다. 그날 밤 11시23분께 진 전 과장은 장 전 주무관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었다. “점검1팀의 모든 컴퓨터 자료를 복구 불가능하도록 완전히 삭제하라”는 것이 진 전 과장의 지시였다. 장 전 주무관은 이때 “진 과장은 차 안에서 내게 전화를 했고, 최종석 행정관은 그때 차에 함께 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검사에게 설명 들었다. 최 행정관 본인도 직접 내게 진 과장이 전화로 그런 지시를 하는 것을 함께 차 안에서 들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검사의 설명과 최 전 행정관의 말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이 상고이유보충서에서 각별히 주목할 대목은, 그날 진 전 과장이 전화를 할 때 최 전 행정관과 함께 서울 방이동에서 일원동 쪽으로 이동하는 차에 함께 타고 있었다는 점이다. 방이동은 최 전 행정관의 직속 상관인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의 집이 있는 동네고, 일원동엔 불법사찰에 가담한 김충곤 전 점검1팀장의 집이 있다. 장 전 주무관은 “내가 지원관실에 근무하는 동안 이들은 무슨 은밀한 대책 같은 것을 논의할 때 이영호 비서관의 자택이나 그 근처에서 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지원관실 운전기사 역할을 많이 했던 내가 이 비서관 자택까지 차를 운전해 이동해드린 적이 몇 번 있어 알고 있다”고 썼다. 그렇다면 그날도 네 사람이 이 전 비서관의 집이나 그 근처에서 ‘대책회의’를 열었고, 나머지 세 사람이 집으로 이동하는 길에 장 전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어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장 전 주무관의 추론이다.

이런 추론이 가능한 것은 지원관실의 설치·운영 과정에 박영준 전 국무차장의 핵심 측근인 이영호 전 비서관이 깊숙이 개입했으며, 이들이 모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직제상 지원관실의 보고 라인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다. 공식적인 보고 라인과 무관한 이 전 비서관은 직접 면접을 봐서 지원관실 직원을 선발하고, 야유회나 회식 때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지원관실이 작성한 동향보고서·정보보고서 등을 비선으로 보고받았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행정고시 동기인 최 전 행정관과 진 전 과장은 같은 노동부 출신이며, 이명박 정권 들어 이 전 비서관과 함께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에서도 일했다. 진 전 과장은 이 전 비서관이 일을 쉽게 하려고 지원관실에 파견했다는 게 정치권과 관가의 ‘정설’이다. 김충곤 전 팀장은 이 전 비서관, 최 전 행정관과 같은 경북 포항 출신이다.

≫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증거인멸을 주도한 실체는 청와대라는 주장이 나왔다.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을 실행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자리한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창성동 별관. 한겨레 자료 사진

총리실 주무관 휴대폰에서 이영호 이니셜 나와

또한 진 전 과장이 전화를 건 7월4일은 총리실이 지원관실의 불법사찰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 하루 전이다. 총리실 내부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기 때문에, 불법사찰에 직접 관련됐거나 그 사실을 알았던 이들이 긴급히 손을 써야 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설령 이들이 이날 밤 대책회의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 전 행정관이 진 전 과장의 통화 내용을 들었다면 사안이 사안인 만큼 상관인 이 전 비서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미 이 전 비서관 등이 지원관실을 실질적으로 운영·관리했다는 의혹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진 전 과장의 전화를 받은 장 전 주무관은 이튿날인 7월5일 새벽 6시에 지원관실에 출근했다. 인터넷에서 ‘이레이저’라는 파일 영구삭제 프로그램을 검색해 내려받은 뒤 휴대용 USB 메모리에 저장했다. 그러곤 이 메모리를 점검1팀의 컴퓨터 9대에 꽂아 들어 있는 자료를 모두 지웠다. 이어 7월7일 디가우징을 실행했다.

기록에는 이영호 전 비서관과 지원관실이 ‘지시-복종’의 상하관계였음을 보여주는 정황도 나온다. 장 전 주무관의 상고이유보충서를 보면, 구속영장 실질심사 하루 전날 장 전 주무관이 진 전 과장에게 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그동안 시킨 대로 한 거밖에 없다. EB는 성격도 무난하지 않아서 모시기도 무척 힘들었는데 밤낮없이 호출되고, EB 때문에 매일같이 밤늦게 먹기 싫은 술도 그렇게 마셔가며 그렇게 힘들게 일을 했는데 왜 내가 이런 처지에 몰려야 하느냐?” 맥락을 맞추면, 이 전 비서관이 ‘시킨 대로’ 증거인멸을 했는데, ‘깃털’에 불과한 자신만 처벌을 받게 됐다는 하소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검찰이 장 전 주무관의 휴대전화 전화번호부를 복구한 내역엔 최 전 행정관의 휴대전화 번호와 별도로 ‘최종석(eb)’이라는 이름의 휴대전화 번호 두 개가 나온다. 검찰은 ‘eb’가 이영호 전 비서관을 지칭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최종석으로 적었지만 실제로는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이 사용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장 전 주무관은 답변을 거부했다. ‘업무상 관련’을 제외하면, 두 사람과 개인적인 친분도 없는 장 전 주무관이 이들의 휴대전화 번호를 저장해둔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런 내용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최 전 행정관에겐 서울시내의 한 호텔에서 ‘출장조사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전 비서관은 딱 한 번 불러 고작 6시간 동안 조사하고 돌려보낸 게 전부였다. 진 전 과장과 장 전 주무관 등을 기소할 때도 대포폰 관련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관련 내용을 조사한 장 전 주무관의 5회차 신문조서도 법원에 제출하지 았다. 이 때문에 장 전 주무관은 상고이유보충서에서 “검찰은 민간인 사찰을 수사하려고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증거인멸(이 제대로 됐는지)을 확인하려고 한 것”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지원관실이 증거를 없애버려 ‘윗선’을 확인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려 했다는 주장이다.

‘윗선’ 연결 고리, 대포폰 수사 다시 해야

장 전 주무관의 주장이 얼마나 진실에 부합하는지는 현재로선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사건에서 지원관실 실무자들과 ‘윗선’의 핵심 연결선인 대포폰 문제를 검찰이 외면한 사실은 이런 의혹을 부풀리기에 충분하다. <한겨레21>은 상고이유보충서 등의 내용을 확인하려고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과 진경락 전 과장을 접촉하려 했다. 하지만 최 전 행정관은 3월1일 “운전 중이라 통화하기 어렵다.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말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 진 전 과장은 “이야기하는 사람은 뭐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나중에 통화하자”며 답변을 거부했다.

검찰이 장 전 주무관의 휴대전화 전화번호부를 복구한 내역엔 최 전 행정관의 휴대전화 번호와 별도로 ‘최종석(eb)’이라는 이름의 휴대전화 번호 두 개가 나온다. 검찰은 ‘eb’가 이영호 전 비서관을 지칭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최종석으로 적었지만 실제로는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이 사용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요약
의혹의 말단만 건드린 진행형 사건

2008년 7월 국무총리실 직제가 개편돼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이 설치됐다. 같은 달 김충곤 지원관실 점검1팀장에게 ‘민간인’ 김종익씨가 이명박 대통령 비판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제보’가 들어간다(제보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9월에는 원충연 지원관실 행정사무관이 김씨가 근무했던 국민은행 쪽 관계자를 만나는 등 본격적인 내사에 착수하고, 곧이어 김씨에 대한 “적절한 조처”를 요구한다. 이어 지원관실 직원들이 김씨가 퇴직 뒤 운영하는 회사로 찾아가 불법적으로 회계자료 등을 압수해간다. 10월에는 김씨가 이광재 당시 민주당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했는지, 촛불집회 자금을 지원했는지,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관련성 등을 조사한다. 애초 김씨를 조사하게 된 ‘의도’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원관실은 11월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고, 경찰은 김씨를 소환해 조사한 뒤 2009년 2월 무혐의로 내사종결했다. 하지만 경찰은 담당 수사관을 교체한 뒤 대통령 비판 동영상과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다. 검찰은 그해 10월, 김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고, 김씨는 이에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한다.

2010년 6월, 헌법소원 청구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민주당은 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제기한다. 총리실은 뒤늦게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 등 직원 4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다. 검찰은 나흘이나 미적대다가 총리실 압수수색을 벌였고, 그사이 지원관실은 주요 증거를 인멸한다. 지원관실이 남경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 부인을 불법 사찰하고, 청와대가 ‘대포폰’을 만들어 증거인멸을 도운 사실, 청와대에 사찰 내용을 보고한 정황이 잇달아 드러났지만, 검찰 수사는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윗선’을 밝히지 못하고 지원관실 직원 일부만 기소한 검찰은, 반면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씨를 10개월씩이나 먼지털이 수사를 한 끝에 2011년 5월 횡령 혐의로 기소한다. 법원은 “범죄사실의 기재가 없다”며 대부분 공소기각 판결해 ‘정치적 보복’ 차원의 무리한 기소임을 증명한다.

검찰은 지난 2월 김씨를 ‘참여정부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해 고소당했던 새누리당 조전혁(인천 남동을)·김무성(부산 남을)·고흥길(경기 성남 분당갑)·조해진(경남 밀양·창녕) 의원을 모두 무혐의 처분한다.

김남일 기자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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