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3자 변제 지급건 수사
이춘식씨 의문의 판결금 수령 놓고 가족 분쟁... '판결금 지급 신청서' 등 서류 확보
25.03.06 19:23 l 최종 업데이트 25.03.07 08:39 l 김형호(demian81)

▲승소 판결에 눈물 흘리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오른쪽) 씨와 고 김규수 씨 부인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8. 10. 30 ⓒ 유성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전범기업 대신 우리 기업 기부금으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소위 제 3자 변제 판결금 지급 건과 관련해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지원재단)은 전범기업에 대한 위자료 채권 소멸을 목적으로 100세 안팎 고령의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하기 전 신청서를 받았는데, 이때 작성된 문서가 피해자 실제 의사에 따른 것인지를 놓고 자녀 간 분쟁이 생기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혐의 규명을 위해 최근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지원재단 측이 보관 중인 문제의 '판결금 지급 신청서' 등 서류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오마이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서부경찰서는 고(故) 이춘식(1920~2025) 할아버지 판결금 지급 건과 관련해 이 할아버지의 딸 A 씨 등 자녀 2명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장남 이창환씨가 A·B 씨 등 동생 2명을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 혐의로 경찰에 고발장을 내면서 올해 1월 수사가 시작됐다.
이 할아버지는 1940년대 일본제철 일본 사업장으로 강제 동원된 피해자로, 2018년 대법원 승소 확정 판결을 통해 해당 전범기업에 대한 위자료 채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 제3자 변제안 강행... '치매 투병' 이춘식, 지난해 10월 판결금 수령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씨 장남 이창환씨(가운데)가 30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이춘식 제3자 변제 수령’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춘식 할아버지의 법률대리인 임재성 변호사(오른쪽)는 "법적으로 채권자는 이춘식 할아버지"라면서 "자녀들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이 할아버지는 작년 3월 제3자 변제안 발표 후에 반대 의사를 밝혔기에 이것이 공식 확인된 의사"라고 강조했다. 2024. 10. 30 ⓒ 권우성
일본제철이 배상하지 않고 버티는 와중에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소위 '강제징용 관련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 해법'이라는 구실로 제 3자 변제를 밀어붙였는데, 이 할아버지의 경우 2024년 10월 지연이자를 포함해 약 3억 원의 판결금을 수령했다.
3자 변제 지급 등 실무는 지원재단이 맡았다.
취재 결과, 판결금 지급에 앞서 지원재단 직원 2명이 지난해 10월 광주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이 할아버지를 찾아 자녀들에게 판결금 지급 신청서 양식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직원은 병실에서 작성된 판결금 지급 신청서를 가지고 지원재단으로 돌아갔다. 신청서가 작성된 병실에는 이 할아버지와 자녀 A·B 씨 등 3명만 있었다고 한다.
장남 이씨는 동생 A씨 등 2명을 고발하면서 "동생 A가 '병원 관련 서류다'며 부친에게 서명을 요청했다. 재단 직원들은 작성된 서류(신청서)를 가지고 돌아갔다"며 "아버지 뜻과 무관하게 판결금 지급 신청서가 작성됐다. 수사를 통해 진실을 가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그는 "고령의 부친은 당시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이었다. 현장을 목격한 동생 B도 처벌을 감수하고, 있는 그대로 수사기관에 진술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동생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장남 이씨의 주장과 대체로 일치하는 진술을 했고, 반대로 또 다른 동생 A씨는 "신청서는 아버지 뜻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혐의 규명을 위해 최근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지원재단이 보관 중이던 판결금 지급 신청서 등 서류 일체를 확보했다.
지원재단은 장남 이씨의 정보공개청구는 물론 경찰의 임의제출 요구에도 버티다 경찰이 법원 영장을 제시하자 결국 관련 서류를 내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0월 작성된 문제의 1쪽 짜리 신청서에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신청인에 관해 적는 공간이 있었고 지급 금액과 지급 전 제출(구비) 서류 등을 안내하는 사항도 담겼다.
신청인이 적는 공간에는 이 할아버지 이름 석자가 한글로 적혀 있었고, 이 할아버지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서명 등이 일관된 필체로 비교적 또렷하게 작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서명란에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지원재단 측은 신청서 외에도 이 할아버지 자녀 6명 중 3명의 서명이 담긴 일종의 확인서도 당시 함께 받아 둔 것으로 파악됐다. 판결금 지급 신청서가 신청인(이춘식) 의사에 따라 작성됐다는 외관을 갖추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경찰은 이외에도 광주지역 병원 2곳에서 이 할아버지 의료 기록 등을 다수 확보했다. 이 할아버지를 담당했던 의료진을 상대로는 면담도 진행했다. 사문서위조 및 동행사 혐의 규명을 위해 신청서 작성 당시 이 할아버지가 의사능력을 갖췄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다. 경찰은 또한 지난 1월 27일 이 할아버지 사망에 앞서 병실을 찾아 방문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양금덕·이춘식, 판결금 수령 놓고 뒷말...지원재단, 개입 여부 규명 필요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측에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지급할 판결금을 법원에 공탁하겠다고 밝히면서 법적 효력과 현재 진행중인 재판에 대한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2023.7.4 ⓒ 연합뉴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단체에서는 지난해 10월 30일 이춘식 할아버지 측 판결금 수령 당시는 물론 이보다 일주일 앞선 양금덕(95) 할머니 판결금 수령 때 여러 뒷말이 나왔었다.
고령의 피해자 둘 모두 치매 증세가 심해지기 전에는 정부의 3자 변제 방안에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두 피해자는 정부의 3자 변제 방침 발표로부터 석달 여 흐른 2023년 6월 "굶어 죽어도 동냥한 돈은 받지 않겠다" "일본을 혼내야지 대통령이 왜 호응하느냐"는 취지로 정부를 매섭게 비판했다.
두 사람의 판결금 수령이 피해 당사자의 실제 뜻에 따른 것인지, 판결금 지급 과정에서 지원재단이 부당하게 개입한 건 없는지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원재단 관계자는 경찰 조사에서 "(경찰 수사는) 이춘식 할아버지 자녀들 사이의 문제로 직원들은 신청서 작성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필요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곤란하다"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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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 변제 발표 10일 뒤 한일 정상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보다 10일 앞선 3월 6일 강제동원 관련 소위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 2023. 3. 1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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