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이후의 헌법] ② 윤석열 석방과 검찰의 미래
이범준 2025년 03월 10일 17시 25분
 
윤석열이 주도해 일으킨 12‧3 내란은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파괴했다. 이 때문에 탄핵 소추되어 파면되게 됐지만, 그와 추종 세력은 지금도 헌법을 부정하고 있다. 이들이 무너뜨리고 있는 헌정 질서는 쉽게 회복되기 힘들다. 헌법과 국가가 어떻게 부정되고 있는지를 연속 보도 <윤석열 이후의 헌법>에서 점검한다.
 
② 윤석열 석방과 검찰의 미래
 
탄핵 피청구인과 형사 피고인이라는 이중 지위
 
헌법은 봉건주의를 혁파한 근대 시민혁명을 계기로 서구에서 발명한 새로운 규범이다. 그래서 이 헌법은 두 부분으로 이뤄진다. 국민의 인권을 국가가 보장하는 내용(권리장전), 그리고 개인의 인권을 짓밟는 국가를 통제하는 내용(정부구성)이다.
 
위헌적 비상계엄을 통해 내란을 벌인 혐의로 재판을 받는 윤석열은 이중 지위에 있다. 대통령으로서는 국민의 인권을 위협했기에 대통령직을 박탈할지를 정하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고, 개인으로서는 국가를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 했으므로 중형에 처할지 정하는 형사법원의 형사재판을 받는다.
 
이와 관련해 헌법은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국민을 배신한 대통령을 파면하는 탄핵심판 제도를 두고 있고, 다른 한편 피고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형사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피고인 보호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가운데도 핵심이다. 그래서 피고인 보호를 정한 제12조가 제7항까지 있는, 가장 길고 자세한 기본권 조항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두 사람의 윤석열이 있다. 탄핵소추 피청구인 윤석열이 있고, 내란죄 피고인 윤석열이 있다. 헌법은 두 사람을 구분하라고 정해놓았다. 헌법 조항 가운데 “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의하여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라는 제65조 제4항도 이를 보여준다.
 
8일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 (출처:연합)
 
강간범 미란다 판결과 내란범 윤석열 석방
 
헌법의 핵심인 피고인의 권리는 이른바 나쁜 사람들이 전진시켜 왔다. 이들 덕분에 죄 없는 사람이 잡혀가거나 고문받거나 사형당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5항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라는 내용은 1987년 개정 헌법에 처음 등장했는데, 이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미란다 판결(Miranda v. Arizona)에서 온 것이다.
 
에르네스토 미란다는 1963년 18세 여성 납치 및 강간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1966년 연방대법원이 변호인 선임권과 묵비권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 미란다는 다시 재판을 받아 유죄가 확정됐고 복역 중이던 1972년 가석방됐다. 하지만 미란다는 1976년 술집에서 싸움을 벌이다 칼에 찔려 숨졌다. 이것이 현대 세계인의 인권을 확장한 에르네스토 미란다의 삶이다.
 
한국에서 헌법에 걸맞은 형사절차를 주장해서 확인한 사람은 재벌과 권력자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직권남용 재판에서 피고인의 권리를 거듭해서 주장했고, 이는 재판 절차로 자리 잡았다. 제약회사 종근당은 검찰과 싸워 불법적인 전자정보 압수수색을 금지하는 기념비적 판례를 받아냈다. 이와 달리 보통 시민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쥔 무소불위 검사가 무서워 싸우지 못하기에 선처를 호소할 뿐이었다.
 
이번에 피고인 윤석열이 얻어낸 구속 취소도 마찬가지다. 검사 출신 윤석열은 검찰에 유리하게 해석되어 온 형사소송법에 정확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를 두고 하필 내란범이냐고 주장하는 이들은 미란다가 납치‧강간범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른바 국사범(國事犯)은 예외라고 주장하는 이들 역시, 윤석열이 하는 통치행위는 예외라는 주장과 뭐가 다른지 생각해야 한다.
 
윤석열 석방은 검찰 조직 보호 위한 극약 처방
 
윤석열 구속 취소라는 서울중앙지법 결정에 검찰이 즉시항고를 할 것이라고 많은 이가 예상했다. 이유는 검찰이 긴 세월 흔들림 없이 보여온 최우선의 논리, 즉 조직 보호 논리 때문이다. 조직을 위해서라면 검찰은 전직 검사장이든 누구든 살려두지 않았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검사가 기소돼 유죄를 받았고, 지난주에는 탄핵 파면도 면한 이정섭이 기소됐다. 따라서 파면을 눈앞에 두고 있는 전직 검찰총장에게 석방을 선물할 이유가 없었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충청권 정치인 심대평의 자제로 그 자신도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고 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그가 더는 조직을 보호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일 수 있다. 윤석열이 파면되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검찰은 수사권 없는 기소청이 되는 것이 정해진 미래였다. 그렇다면 순리대로 즉시항고를 하는 것은 아무런 선택이 되지 못한다. 그 대신 윤석열을 풀어주고 새로운 정치적 상황을 기대하는 극약을 삼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심우정 검찰총장이 윤석열은 윤석열대로 풀어주면서, 조만간 즉시항고나 보통항고를 하면서 판례를 받아보겠다고 할 수도 있다(대법원 97모26 결정 참조). 만약 그렇게 한다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진 최강의 권력 집단을 유지하는 고도의 정치적 방법이기에 하는 것이다. 앞으로 윤석열 이후에도 검찰청이 살아남는다면 제2의 윤석열에 이어, 제3의 윤석열까지 등장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함께 보고 깨달았듯이 윤석열 이후의 헌법에 검찰청은 없어야만 한다.
 
제작진
디자인  이도현
출판  허현재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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