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압수한 김영선 메모 “명태균 털면, 윤석열 판도라 열린다”
봉지욱 2025년 03월 09일 13시 37분
뉴스타파는 지난해 총선 당시 김건희 여사와 김영선 당시 의원이 최소 11차례 이상 연락한 사실이 담긴 검찰 수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이후 공천을 못 받은 김 전 의원이 김건희 여사가 약속한 공공기관 취업을 실행하기 위해, 이력서를 작성한 사실도 뉴스타파 보도로 드러났다.
그러나 김영선 전 의원은 명태균 씨의 '여론조사 조작',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등 일련의 의혹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뉴스타파는 검찰이 압수한 김 전 의원의 자필 문건을 추가로 입수했다. 문건에서 김 전 의원은 명태균 게이트를 미리 예측이나 한 듯, 그간 자신이 보고 겪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이 문건을 압수하고, 수사보고서를 작성했다. 공천 특혜의 당사자인 김 전 의원이 '명태균 게이트'의 실체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문건은 중요하다. 뉴스타파는 이 문건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할 중요한 증거라고 판단, 오늘(9일) 뉴스타파 홈페이지에 24쪽 전문을 공개한다.

▲김영선 자필 포함 '소명서' 1쪽.
김영선 자필 '소명서' 최초 공개...사건 발생 1년 전에 작성
문건의 제목은 ‘소명서’, 작성 일자는 2023년 10월 3일. A4 용지 24쪽 분량이다. 소명서가 작성될 당시는 선거관리위원회가 김영선의 불법 정치자금 내역을 포착하고, 조사를 하던 중이었다. 명태균 게이트가 언론에 보도되기 1년 전이다.
김영선은 2023년 8월 14일 선관위에 출석해 조사받았다. 조사 두 달 뒤,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소명서'를 만들고, 여기에 자필 메모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소명서' 1쪽에서 김영선은 "본인은 어떤 불법 자금을 수령하지도 지급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회계담당 직원(강혜경) 영수증 미비로 문제삼을 사건인데 의창구 선관위 또는 경남 선관위가 무엇을 의심하든 아무런 근거나 사실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선거를 앞둔 지금에 사건화하여 풍문이 퍼져나갈 수 있는 큰 위협에 처했습니다"라고 적었다.
'소명서' 2쪽에는 김영선이 직접 쓰고 거듭해서 고친 듯한 자필 메모가 빼곡하다. 여기에 난데없이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한다. 김영선은 "이 사건을 심각하다고 하는 실제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 지원 과정을 문제 삼고자 하는 정치적 타격의 의도가 있습니다"라면서 "이 사건에는 본인과 회계실무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C D E를 문제삼아 그 디딤돌로 G를 걸어서 아무 근거가 사실이 없으므로 수사기관에 보내어 털어보고자 하는 망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라고 썼다. 여기서 G는 명태균 씨를 뜻한다.
메모를 정리하면, 김영선은 '선관위가 명태균을 캐는 건 결국 윤석열 대통령을 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손수 적었다가 삭제한 대목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G가 나온다. "선거 회계 실무 처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G가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을 경남 부산 경북 대구에 걸쳐서 행하고, 윤석열 후보와 타 후보의 연결을 행한 바 있으므로 이를 문제삼고자 하는 것입니다"라는 내용인데, 이처럼 김영선은 소명서에서 끊임없이 명태균과 윤석열을 거론했다.

▲김영선 자필 포함 '소명서' 2쪽.
김영선이 적은 명태균(G)의 정체..."윤석열, 김종인, 오세훈, 홍준표, 이준석 도왔다"
'소명서' 20쪽에는 아예 '명태균' 카테고리를 별도로 만들고, 3쪽에 걸쳐 기술하고 있다. 김영선은 여기에서 ▲(선관위가) 뜬금없이 명태균을 묻는 것은 얼토당토 않습니다 ▲명태균은 청와대 비서실에서 내려와 경남도청에 주요 관찰자로 등록해 놓고 간 사람입니다. 선거의 구도, 선거 전략, 여론조사 판세 분석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라고 설명했는데, 이 문건 작성 두 달 전에 선관위가 김영선에게 '명태균' 관련 질문을 퍼부었음을 알 수 있다.
'소명서' 21쪽에는 윤석열을 비롯한 여러 국민의힘 전현직 정치인들의 실명이 등장한다. ▲명태균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잘 알아서 오세훈 시장의 선출 전략에 큰 도움을 주고, 이준석 대표의 당선에 여러 컨설팅을 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윤석열 대통령 후보에게 김종인 오세훈 이준석을 연결, 지지하게 하고 홍준표를 지지하지 않도록 하여 당선에 기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전에 본인 명태균이 당선에 도움을 준 국회의원들, 위원장들을 연결시켜 윤석열 대통령 후보 당선에 조직적으로도 기여했습니다 ▲그 후 윤석열 대통령 후보에게 홍준표를 승복시킵니다. 이는 명태균이 홍준표의 대구 국회의원 당선에 일조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내용들이다.
김영선은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홍준표 대구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 이준석 의원까지 모두 명태균의 도움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적으면서 특히 "홍준표 시장은 21대 총선 때도 명 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앞서 뉴스타파는 2020년 21대 총선 때도 명태균 씨가 홍준표 시장에 대한 '맞춤형 여론조사'를 벌인 정황을 확인해서 보도한 바 있다. 홍 시장은 당시 '경남 밀양→경남 양산을→대구 수성구을'로 출마지를 바꿨는데, 각 지역에 출마 선언을 하기 전에 명 씨가 미리 여론조사를 돌려줬고, 비용은 측근들이 대납했단 내용이다. 그런데 김영선도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선은 '소명서' 21쪽 하단에 자필로 "결국 경남 선관위가 개입하여 지속적으로 심각하다 라고 하는 망라적 투망식 의심은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선거 과정을 파헤치는 단서를 찾는 판도라의 상자 열기에 대한 집착 때문에 비약과 범주 일탈을 범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적었다. 명태균에 대한 선관위 조사가 결국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성 멘트로 풀이된다.
'소명서' 결론 부분에서도 김영선은 "선관위가 강혜경을 고리로 명태균으로 점핑해서, 이 사건을 수사기관으로 넘기고 명태균을 먼지털이 하다가 윤석열 대통령 선거 과정의 트집을 잡아내려 한다"고 마무리했다.

▲김영선 자필 포함 '소명서' 20-21쪽.
검찰, '소명서' 분석해 수사보고서 작성...또 하나의 유력 증거될 전망
검찰은 김영선 전 의원의 자택을 압수수색(2024.9.30.)한 뒤, 수사보고서(2024.10.22.)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검찰이 김영선의 휴대전화 2대와 USB, 작성 노트, 수첩 등을 압수한 것으로 나온다.
검찰은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이 사건 발생 후에 김영선과 명태균이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복원했다. 서로 미리 말을 맞췄을 가능성을 포착한 것이다. 검찰은 또 김영선 작성 소명서도 자세히 분석해서, "명태균이 김종인 오세훈 이준석 윤석열 후보 등 여러 선거에 컨설팅을 해준 사실을 적었다"고도 기록했다.

▲검찰 수사보고서(2024.10.22.)
검찰 수사보고서와 소명서 내용을 종합하면, 김영선은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거물 정치인들을 거론하면서, 선관위가 자신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수사 의뢰하지 못하게 막으려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김영성은 민감한 내용을 잔뜩 담은 이 소명서를 선관위에 제출하지 않은 채, 자택에서 출력물 상태로 보관해오다 검찰에 압수당했다.
'명태균 게이트'가 터진 건 지난해 9월. 소명서는 그보다 앞선 2023년 10월 작성됐다. 김영선의 수사기관 진술보다 소명서 내용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되는 이유다. 오염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특히 '윤석열 부부의 불법 공천개입 사건'의 당사자인 김영선 전 의원 본인이 자필로 적은 메모들은 '명태균 게이트'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선 자필 포함 '소명서' 다운로드
제작진
촬영 최형석
편집 김은
디자인 이도현
출판 허현재
리서치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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