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제주 사름이 사는 법 ㅣ 40화
100일 집회추적담... 교회 청년부가 태극기집회 나오는 이유
[제주 사름이 사는 법] '정치철학자' 조정환 갈무리 출판사 대표
사는이야기 황의봉(heb8610) 25.03.18 06:54ㅣ최종 업데이트 25.03.18 06:54

▲조정환 대표는 문학평론가이자 정치철학자로, 다중의 자율적인 운동을 연구하고 있다. 12.3 이후 열린 촛불집회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해 기록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황의봉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
3월도 절반이 훌쩍 지났음에도 국민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윤석열 파면 선고가 미뤄지고 있다. 모두가 기다리다 지치고, 답답해하고,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시간이 흘러가는 중이다. 문학평론가이자 정치철학자로 40여 권의 저서·번역서를 펴낸 조정환 갈무리 출판사 대표도 누구 못지않게 '그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2014년 제주로 이주해 12년 차에 접어든 조정환 대표는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전부터 윤석열 퇴진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래 지금까지 서울에 머물며 거의 모든 탄핵 관련 집회 현장을 찾고 있다. 윤석열 파면을 보아야만 제주도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다.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보고 듣고 느낀 탄핵집회 현장의 모습은 어땠을까.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갈무리 출판사로 찾아가 '제주 사람 조정환'을 만났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차이점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가 왜 모든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기록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저는 문학평론가이기도 합니다만, 요즘은 주로 정치철학, 그중에서도 아우또노미아(이탈리아어로 자율이라는 뜻)를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다중(多衆)이 자본, 국가, 당에서 독립적으로 정치적인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율주의라고 부릅니다. 한국의 촛불집회는 197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발흥했던 아우또노미아 운동과 매우 유사하고 질적으로도 일치합니다.
2008년 광우병 소고기를 계기로 한 한미FTA에 대한 항의나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항의, 2016년 박근혜 퇴진집회 등이 저의 연구 주제였고, 이번 윤석열 탄핵집회도 연구와 실천을 결합한다는 취지에서 거의 빠짐없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실 촛불집회(응원봉집회, 탄핵 찬성집회, 윤석열파면촉구집회 등을 촛불집회로 표기)는 윤석열 정부가 등장한 지 얼마 안 돼 시작됐어요. 그때는 굉장히 소규모였고, 저는 서울에 올 때마다 간간이 들르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명태균 사건(게이트)이 터지고 촛불집회에 모이는 사람들 숫자가 늘어나면서 탄핵이 가까웠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2024년 10월부터 좀 더 밀착해서 집회에 나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에 터를 잡고 민사네(민주주의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에 결합하여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여의도로 달려간 조정환 대표가 목격한 2024년 12월 4일 국회정문 일대의 상황.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 후 1시간이 지났음에도 엄청난 시민이 운집해 있다. 새벽 2시13분 촬영 조정환
비상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조정환 대표도 그날 밤 국회로 달려간 시민 중 한 사람이었다. 역사의 현장이 된 계엄 당일 밤의 국회에서 그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날 밤 11시 15분경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알았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상황판단을 해보니 심각했어요. 여의도 국회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2시경 저희 출판사 활동가들과 함께 서교동에서 여의도로 출발했는데, 여의도 입구부터 차가 밀려 20∼30분 지체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차에서 내려 걸었습니다. 국회 부근에 도착해 찍은 첫 번째 사진이 1시 9분으로 기록되어 있더군요.
국회 앞 일대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한 4000∼5000명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시민들이 국회 정문 앞에서 국회도서관 쪽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계엄해제' '윤석열 체포'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국회 안에도 시민들이 많았는데,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히 파악하기 힘들었어요.
저는 군인이 교문을 지키는 대학을 다녔고 대학원을 마칠 무렵 민중미학연구소 사건으로 안기부에 끌려가서 구속당한 바 있고, 월간 <노동해방문학> 사건으로 10년 이상 수배 생활을 한 적도 있습니다. 모두 군사정권 때의 일인데, 군사쿠데타로 군인이 다시 정치의 전면으로 나서는 것이 두렵고, 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국회 현장으로 달려가서 시민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계엄군, 경찰과 맞서다 보니 힘도 생기고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지난 2월 8일 ‘비상행동’이 서울 광화문에서 주최한 촛불집회에서 농악대와 깃발춤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조정환
윤석열 탄핵국면에서 상반된 두 찬반 집회, 즉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치열하게 맞서는 중이다. 두 종류의 집회는 풍경과 내용, 성격, 참가자 등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다. 조 대표는 이 두 종류의 집회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에 모이는 사람은 넓은 의미의 다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집회를 거치면서 이 다중이 다른 주체로 가공되어 나옵니다. 태극기집회를 통해서는 옛날 군주제 시대의 신민(臣民) 비슷한, 예속된 주체가 생산돼 나오지만, 촛불집회에서는 다양하고 특이한 주체들이 생산돼 나옵니다.
태극기집회는 전광훈의 독무대입니다. 자기와 가까운 몇 사람, 예를 들어 퇴역 군인이나 은퇴 교수들을 뒤에 줄 세워 놓고는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을 불러내 필요한 응답을 끌어내는 식입니다. 청중들은 '할렐루야', '아멘'으로 전광훈 말에 호응하는 종교집회 같은 모습이에요. 이때 '아멘'은 독재를 기획한 윤석열을 영웅화하고, 목사인 전광훈을 더 높이는 식으로 작동하는 후렴으로 사용됩니다. 집회의 목적은 위기에 빠진 권력을 일으켜 세우면서 돈을 버는 것이고 그 방법은 불안한 대중에게 신민적 소속감과 위안을 주는 것입니다.
반면 촛불집회는 자유발언이 주축을 이루고 있어요. 비상행동이나 촛불행동은 무대를 만들어 주지만 그것을 채우는 것은 시민들입니다. 발언 외에 다양한 가수들의 공연과 깃발춤, 가두행진, 피케팅, 노래 등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태극기집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지요. 발언대에 서는 사람들은 탄핵 문제 외에 각자 자신의 이슈를 들고나옵니다. 페미니즘, 트랜스젠더(성소수자 인권), 임금, 근로기준법 같은 문제들이 다중적으로 제기되고, 농민 청년 학생은 또 그들 나름의 이슈를 들고나와 윤석열 정권 및 내란 비판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두 집회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두 집회가 일종의 '정치 교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촛불집회에서는 생명·평화·연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주체가 나오지만, 태극기집회에서는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보여주듯이 혐오감에 가득한 폭력적 주체들이 생산돼 나온다는 겁니다."
다 같은 태극기집회가 아니다?

▲지난 2024년 12월 7일 당시 12.3내란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표결에 붙여질 예정인 가운데, 여의도 국회앞에 모인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권우성
탄핵국면이 100일 이상 진행되다 보니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연령대 등 청중 구성도 많이 달라졌던 것 같다. 시기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12월 3일 밤 국회에 모였던 시민들에는 40대와 50대 남성이 많았어요. 당시는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처럼 미리 조직된 집회가 아니었고 계엄군과 맞서는 아주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집회였죠. 이들은 광주항쟁이나 87년 6월항쟁에 대한 모종의 기억을 가진 분들이에요. 어떤 형태로든 군인이 등장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세대였습니다. 또 한 번의 기획되지 않은 자발적 집회 사례가 이른바 '남태령 대첩'이었는데, 여기에는 20~30대 여성들이 많았지요.
전반적으로 촛불집회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젊은 여성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게 12월 7일 국회에서 1차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되던 날이었어요. 이날부터 집회 참석자의 세대구성이 확 달라졌거든요. 응원봉을 들고나온 젊은 여성 세대에 대해 언론에서도 상찬하는 분위기가 나타났습니다.
태극기집회는 제가 오랫동안 조금씩 관찰해 왔는데, 대부분이 노인분들이었어요.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될 때까지만 해도 젊은 사람들이 태극기집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촛불집회에 응원봉이 등장해 젊고 밝은 분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자 태극기집회 쪽에서도 대응할 필요를 느꼈던 것 같아요.
태극기집회에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이면서 집회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오후 2시부터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한 전광훈 주도의 집회가 있고, 오후 늦게부터 밤까지는 신남성연대를 비롯한 극우 유튜버들이 진행하는 집회가 이어졌습니다. 무대 발언자들이 젊은이들로 바뀌고 참가자들 가운데도 청년층이 적지 않게 관찰되는 세대혼성적 집회로 바뀌더군요.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 이후에는 젊은 남성들이 더 늘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촛불집회가 초반 분위기를 주도했고 규모도 엄청났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든 양상을 보인 게 사실이다. 반면, 태극기집회는 규모가 커졌고, 갈수록 폭력성이 두드러졌던 것 같다. 시기별로 집회의 특징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촛불집회의 경우,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때 참가자가 가장 많았고, 가결 이후에는 한숨 돌리는 분위기였다고 봅니다. 헌법이라고 하는 준거 틀이 있으니까 헌법재판소가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심리가 일정하게 작동한 것 같아요. 윤석열 체포국면에서는 '키세스' 같은 극적 간절함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공수처와 경찰에 사태를 위임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내란세력과 태극기집회가 불법과 폭력 쪽으로 기울어가는 것과 대조적이었다고 할까요.
윤석열 체포 이후에는 한남동에서 다시 헌재가 있는 안국동과 광화문으로 돌아오면서 촛불행동(촛불승리전환행동)은 헌법재판소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데 주력하고, 비상행동(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기조는 같지만 좀 더 다양한 의제 제기를 통한 사회대개혁 쪽에 초점을 맞추는 집회를 이어갔기 때문에 소강상태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의 절차와 과정에 기대하고 의지했던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다가 헌재의 선고가 기대보다 늦어지면서 다시 집회 참가자가 엄청난 규모로 늘어나고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면 태극기집회의 경우는 윤석열이 헌법재판(탄핵심판)에 회부되고 체포된 데 이어 구속 기소까지 됐기 때문에 법 너머의 어떤 힘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국민저항권'을 끌어다 내세운 전광훈의 예외주의적이고 초헌법적인 행보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이 이때였고, 윤상현 등 국회의원이 여기에 결합해 내란을 내전으로 몰고 가서 국면을 전환하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 무렵 집회의 열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태극기집회에서 느껴지는 결기가 촛불집회보다도 더 격정적이고 뜨거웠어요. 단상에서부터 욕설이 난무했고, '부숴버리자', '파괴하자'는 식의 파괴적 충동들이 반복적으로 시현되는 그런 장소가 태극기집회였습니다."
집회를 주도하는 주체도 변화랄까, 분화가 있었던 것 같다. 탄핵 찬성 쪽에는 촛불행동과 비상행동이 있었고, 반대쪽에서도 전광훈파와 손현보파로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조 대표의 분석이다.
"촛불행동은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회원가입을 해서 활동하는 형식으로 하나의 행동체를 이뤄 이전까지의 촛불집회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비상행동은 민주노총을 비롯해 참여연대 민변 군인권센터 등 1549개 노동 및 시민사회단체의 연합체입니다. 촛불행동이 안국동 헌법재판소 입구에서 오후 2시에 집회를 하면 보통 3시 반이나 4시쯤에 끝납니다. 그러면 비상행동 집회가 4시경 경복궁 동십자각 쪽에서 시작해 이어받는 식으로 유기적으로 협조하며 집회를 연계하고 있는 것이지요.
태극기집회는 전광훈 주도로 광화문 태평로 일대에서 시작했습니다. 전광훈은 사실상 자유통일당 당수나 마찬가지입니다. 기독자유통일당이었다가 기독교를 떼 버리고 당명을 자유통일당으로 바꾼 것이 2022년이잖아요. 그러니까 종교를 통해 사람들을 모은 후에 그 동력을 정치 동력으로 바꾸는 것이지요. 전광훈은 2019년에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되었는데 그때 쌓은 인맥과 네트워크를 자유통일당의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들은 전광훈의 이런 거대 세력화를 좌시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돈이 그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도와 헌금을 둘러싼 영토전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죠. 그러다 보니 종교를 정치에서 독립적인 것으로 유지하려고 했던 그룹도 세력을 규합해 전광훈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와 손을 잡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게 손현보(부산 세계로교회 목사)-전한길(한국사 강사)을 앞세운 무리라고 볼 수 있죠."

▲‘100만 시민총집중의 날 -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15차 범시민대행진’이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앞에서 야당과 윤석열퇴진비상행동 소속 단체 및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권우성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한 가운데,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이끄는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김성욱
태극기집회 현장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등장하는가 하면, 촛불집회에서는 수많은 단체 혹은 개인의 깃발이 나부껴 대조적이었다. 이 상반된 깃발의 풍경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태극기집회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깃발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광훈이 조직한 자유마을 깃발을 제외하면 완전히 획일화된 하나의 깃발 즉 태극기-성조기만 있을 뿐입니다. 파쇼라는 말이 묶음(다발)을 의미하잖아요. 태극기-성조기가 사람들을 묶는 열광의 끈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노인분들은 한국전쟁을 경험한 분들이고, 이승만 치하에서 원조물자 혜택을 받은 분들입니다. 이들은 미국을 구원자로 바라보는 심성을 갖고 있어요. 미국을 한국의 혈맹으로 간주하면서 사실상 미국에 의지하는 마음을 성조기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래전 촛불집회에서는 깃발에 대한 부정적 감성이 컸습니다. 개개의 시민 다중이 보기에는 깃발을 든 사람들은 힘센 단체들이었거든요. 2008년 광우병 촛불 때만 해도 시민들은 깃발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땐 촛불이 깃발이었습니다. 박근혜 탄핵 때는 조금 양상이 달라졌어요. 시민들 자신이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깃발을 들고나온 겁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이 경향이 확대되어 웬만한 사람들은 거의 깃발을 하나씩 들고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깃발은 자신의 젠더적·계급적·취향적 특이성을 다중 앞에 공공연하게 드러내면서 동료들과 끼리끼리 만날 수 있는 표지판 역할을 하기도 하고, 집단적 깃발춤을 통해 분위기를 발랄하고 재미있게 만드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2024년 12월 21일 '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향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서울로 들어서는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경찰에 막힌 모습. 농민들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수백명이 합세해 함께 농성하고 있다. 권우성
2030 여성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탄핵집회 현장의 주력군으로 등장한 이들 2030 여성의 존재를 연구자의 시각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여성들의 대거 참여는 갑작스럽게 생긴 현상이 아닙니다. 이미 상당한 토대가 마련돼 있었는데 우리 사회가 크게 주목하지 못한 것이지요. 2015년 성폭력에 반대하는 해시태그 운동 이후에 2018년이 되면 미투를 비롯한 페미니즘 운동이 사회 전면으로 치고 올라옵니다. 또 그 여파로 2019년에는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하게 되면서 여성운동이 커다란 사회정치적 이슈로 부상하게 됩니다. 당시의 여성 세대들이 지금 촛불집회의 주력군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970∼199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우리 사회에서 마르크스 저작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습니까. 비슷한 현상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이 엄청 많이 읽혔습니다. 지금은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다른 책에 비하면 아직도 페미니즘 책들이 많이 읽히고 있어요. 예전에는 책 제목에 여성이나 혁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안 팔렸습니다. 그런데 2016∼2020년으로 넘어가면 여성을 주제로 한 책이 오히려 성공을 거둡니다. 여성들의 세미나 모임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도 이런 변화의 일부일 것입니다."
거의 모든 촛불집회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는 조정환 대표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집회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집회는 어떤 것이었을까.
"단연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지난해 12월 3일 밤 국회 현장과 12월 21∼22일 남태령 집회를 꼽고 싶습니다. 저는 21일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행진 중에 세미나 참석을 위해 돌아왔기 때문에 남태령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어요. 밤늦게 상황 파악을 위해 검색을 하다가 남태령 소식을 알게 돼 22일 아침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남태령이 사당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잖아요. 그날이 일요일이었고 출근 시간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지하철이 붐비는 겁니다. 승객들이 꽉 차서 몸을 부딪쳐야 할 정도였어요. 그때만 해도 이 많은 승객이 남태령을 간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남태령역에 도착하자 지하철에 탔던 사람들이 전부 내리는 겁니다. 아침 일찍이었는데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서로 몸을 부대끼면서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데 '참 아름답구나!' 하는 느낌이 온몸으로 전달돼 오는 것이었어요.
집회 현장을 둘러보니까 작은 트럭에 급조된 단상 그리고 소형 마이크로, 완전히 자생적 집회였어요.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를 때는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나가 율동을 선보였습니다. 전혀 지도부가 없는 연대집회였어요. 이런 집회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근본적 힘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와 파시즘

▲지난 15일 오후 보수 기독교단체인 세이브코리아 주최로 경북 구미시 구미역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전한길 한국사 강사. 조정훈
헌재 재판정이나 탄핵 찬반집회에서 수많은 언어가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감동적인 연설과 변론이 있었는가 하면, 저항권·계몽령 등 언어의 왜곡 현상도 두드러졌다. 언어를 다루는 전문가로서 이러한 언어의 왜곡 현상을 어떻게 보았을까.
"가장 크게 오염된 말이 '내란'인 것 같아요. 내란이 탄핵 사유로 제시되자마자 태극기집회는 12월 7일 전후부터 벌써 '탄핵이 내란이다'라는 식으로 뒤집기 시작했습니다. 태극기집회에 가보면 '조기대선X 조기총선O'라고 쓴 팻말을 들고 다니거든요. 조기총선이라는 건 윤석열이 헌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지금의 국회의원들이 가짜라는 의미잖아요. 이런 식으로 거울에 반사하듯 말을 뒤집는 미러링(mirroring)이 태극기집회의 주요한 담론전술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태극기집회에 참가하는 나이 드신 분들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상태에 있지 않거든요. 그러다 보니 전광훈이나, 세이브 코리아 집회에서 전한길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그냥 사실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미러링으로 뒤집힌 영상이나 이미지들이 그 사람들의 두뇌 속으로, 마음속으로 전파돼 갔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엄청났다고 생각합니다."
태극기집회에서 온갖 혐오의 표현들이 등장하고 폭력적인 언사와 행동이 표출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건 이러한 언동에 동조하는 세력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극우 혹은 파시즘이 우리 사회에서 세력을 불려 가고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 현실을 조 대표는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을 신식민지 파시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는 군사독재라는 의미였지요. 그런데 이번 12.3 내란은 군대를 동원한 쿠데타로 시작했으나 무위로 돌아가자 이제는 '국민저항권'이라는 말을 도용하여 시민들을 직접 움직임으로써 새로운 파시즘의 시간이 시작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히틀러 파시즘도 군사 파시즘이 아니라 대중행동, 즉 시민들의 움직임과 함께 시작된 것이었어요.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850년대 루이 나폴레옹의 3세인 보나파르트가 시민들을 움직여 집권하고, 시민들의 힘으로 자신의 통치권력을 공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유럽에서 파시즘은 시민운동과 결합하여 있었던 것이에요. 요즘 태극기집회에 나오는 시민들의 움직임들이 제가 보기에는 그렇게 가벼운 문제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확산해 가는 느낌입니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불만 세력이 상당 부분 참여하기 시작한 단계여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비화할 것으로 보여 걱정입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파시즘 현상의 원천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낳은 부정적 결과물이고, 그 조건은 87년 이후 확대된 민주화입니다. 파시즘은 아이로니컬하지만 민주주의 위에서 발흥합니다. 지난 40년간의 과정에서 자기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 시민 동력을 토대로 신자유주의의 희생자가 된 계급, 성별의 불만을 반중, 반공, 반여성, 반소수자 구호 속에 묶어내 권력화하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 파시즘입니다.
유럽에서 파시즘은 케인즈주의가 해결했다기보다 제2차 대전, 즉 전쟁으로 지하화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상기해 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작된 파시즘은 단기간에 끝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매우 장기적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우리가 예상하기 힘든 극단적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파시즘이 대두하는 환경 속에 여러 요소가 작용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교회'와 '남성'이라는 두 요소가 가장 크게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탄핵 반대 집회에서 크게 드러난 교회를 주목하고 있다. 그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았다.
"태극기집회에 가보면 '할렐루야' '아멘' 소리가 수시로 들리고, 젊은 사람들 대부분은 교회 청년부 소속이라고 해요. 교회가 태극기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건 너무나도 뚜렷합니다. 저는 교회가 자신들의 위기 극복의 기회로 태극기집회를 활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교회가 세속화돼 기업화하고 있고 교회 간 이권 경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에 닥쳐온 축적 위기를 권력에의 접근, 즉 정치화로 돌파해 나가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전광훈입니다. 신도들의 심성 구조는 파시즘적 선동에 취약합니다. 믿음과 열광은 교회와 파시즘이 모두 필요로 하는 심성 구조이니까요."
"헌재는 신속히, 정확하게 윤석열을 파면하라"

▲지난 9일, 헌재 선고가 늦어지면서 윤석열이 파면될 때까지 매일 밤 7시 파면촉구 집회를 하기로 한 첫날의 풍경. 촛불집회 참가자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조정환
조정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지 2시간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그가 제주로 오게 된 계기와 제주에서의 생활을 물어봤다.
"제가 '다중지성의 정원'과 갈무리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는데, 일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세미나와 강의를 진행해야 하고, 끝나면 밤늦은 시간까지 뒤풀이하느라 지쳐서 몸이 망가져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서울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 일단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겠다, 해서 이주할 곳을 찾다가 2014년에 제주도로 왔습니다. 이렇게 제주도에 살면서도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인터넷 덕분이었어요. 온라인으로 세미나 강의가 가능해졌고, 출판사 업무도 가능하거든요. 제주에서도 서울에 있을 때와 거의 똑같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는 곳이 조천읍 함덕 바닷가 부근 북촌인데, 제가 물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어릴 때 강가에서 살았기 때문에 수영하는 걸 좋아하고 패들보드 타는 것도 즐깁니다. 그러니까 함덕 바다가 제 놀이터입니다.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살아서인지 요즘은 건강도 많이 회복돼 제주로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곧 4·3 77주년 기념일이 다가온다. 올해에는 조기 대선과 맞물리면서 극우세력의 역사왜곡 발언과 4·3에 대한 폄훼 시도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 대표에게 4·3과 관련해 향후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일지 물었다.
"저는 역사를 제헌 활력의 자기운동을 중심으로 읽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헌이란 헌법제정, 즉 삶과 사회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하고 활력은 권력과는 달리 어떤 경직된 제도적 형태를 갖추기보다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힘을 의미합니다. 가령 12월 3일 밤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은 제헌 활력인 셈입니다. 제주4·3은 바로 이 제헌 활력이 아주 적극적으로 표출됐던 분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게 오랜 세월 군사정권과 독재정권 아래에 억눌려 왔다가 민주화 과정에서 지금 제 모습을 조금씩 회복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4·3과 관련해 지역화와 세계화의 두 가지 방향이 있다고 봅니다. 현재는 지역화 방향으로 힘이 쏠려 있는 것 같아요. 4·3의 제주 지역적 특수성은 많이 논의되고 있으나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공통화 측면에서의 논의는 아직 미약해 보입니다. 4·3은 예컨대 3.1 혁명, 여순항쟁, 4.19혁명, 광주항쟁, 6월항쟁, 오늘날의 촛불집회로 이어지는 제헌 활력의 역사적 표출 사례로 저는 읽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4·3항쟁은 2011년 북아프리카에서의 반란들, 미국에서의 오큐파이(월가 점령), 유럽에서의 실질 민주주의 투쟁 등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헌 활력이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제주4·3을 범세계적 민중항쟁 혹은 다중항쟁이라고 하는 틀 속에서 연결하고, 알리고, 결합하는 작업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3달 넘게 끌어온 윤석열 탄핵 심판이 마지막 고비를 넘고 있는 듯하다. 무너진 헌정질서가 바로잡히고, 시민들이 평온한 일상을 회복하는 날, 조정환 대표도 제주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헌재와 야당과 시민을 향해 강조한 한마디에서 진심 어린 간절함이 느껴졌다.
"오늘이 내란 104일째입니다. 헌재는 신속히, 정확하게 윤석열을 파면해야 합니다. 야당은 윤석열 각하 공작을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법률상의 방어조치를 취해야 하고요. 시민들은 파면 명령을 위한 직접 행동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불안을 이성적 희망으로 전환해 나가야 합니다."

▲‘100만 시민총집중의 날 -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15차 범시민대행진’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앞에서 야당과 윤석열퇴진비상행동 소속 단체 및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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